중국과 티베트의 분쟁에 대한 총체적 조사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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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중국과 티베트 소개

2. 중국 vs 티베트

3. 고강도 논쟁과 저강도 분쟁

4. 상부상조 ‘최왼’ 관계

5. 청대에는 피정복자 위치로 전락

6. 영국과 두 차례 전쟁 끝에 문호 개방

7. 티베트 주도권 놓고 중·영 갈등

8. 독립국 vs 자치구

9. 국민당 정부와 세 차례 국경분쟁

10. 중국의 한 ‘지방’으로 규정한 17조 협의

11. 80년대 이후 국제사회의 관심 고조

12. 티베트의 높은 가치

13. 결론

본문내용

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 달라이 라마는 미의회에서 연설하고 조지 부시 현직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을 만나 티베트 문제에 대해 의논했다.
한편 지난 6월말 인도 총리가 중국을 방문했다. 인도는 1962년 티베트와 대대적인 국경분쟁을 벌인 바 있다. 인도의 바지파이 총리는 처음으로 ‘티베트는 중국영토’라고 인정하고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티베트를 둘러싼 주변국의 입장은 자국의 이익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국내에서 뜨거운 논란거리가 된 14대 달라이 라마의 방한 문제는 그 대표적 사례다. 한국의 기성세대는 주권을 잃은 티베트에 대해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중국과의 관계 등을 고려한 국가 이익 앞에서 티베트에 대한 애틋한 감정은 무시되고 말았고 결국 달라이 라마의 방한은 이뤄지지 않았다. 아무리 달라이 라마를 비롯한 티베트 독립운동가들이 노력한다고 해도,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지금 티베트 독립이 쉽게 이뤄질 것 같지는 않다.
12. 티베트의 높은 가치
세계의 지붕
티베트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원에 위치해 '세계의 지붕'으로 불린다. 티베트어로 '신의 땅'이라는 뜻인 수도 라싸(拉薩)도 해발 3700m에 자리잡고 있으며 티베트 자치구의 평균 해발은 4000m가 넘는다.
광대한 영토와 풍부한 광물자원
험준하고 황량한 땅이 대부분인 티베트는 그러나 중국에는 '복덩어리'이다. 면적은 한반도의 약 6배인 123만㎢. 천연자원도 금강석·마그네슘·철·석탄·크롬 등 70종이 넘게 매장돼 있어 경제적 가치가 엄청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6년 7월 칭짱(靑藏·칭하이성 시닝~티베트 라싸) 철도 개통 이후 1년 동안 철도 주변에서 대규모 구리·납·아연 매장지 16곳이 추가로 발견됐다. 이 중 5곳은 2000만t의 구리와 1000만t의 납·아연을 매장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여기에다 방대한 삼림·목재와 수자원 및 태양열 자원 등이 미개척 상태로 남아있고, 초대형 우라늄 광산도 여럿 있다. 자원 안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중국에 알짜배기 '보고(寶庫)'인 셈이다.
높은 군사전략적 가치
고원 지대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티베트는 무기 배치와 개발에 이상적이다. 중국의 원자력 연구중심지로 기능해온 '제9 아카데미'가 수년 동안 티베트 북동부에 주둔했었다. 티베트는 특히 인도와의 충돌을 막는 완충지대로서 군사전략적으로도 중국 정부가 포기할 수 없는 지역이다.
13. 결론
1959년 민중봉기 이후 1970년대 말까지 중국정부와 달라이 라마의 티베트 망명정부 사이에 대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 사이 중국 전역에는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휘몰아쳤고 그 와중에서 종교에서 정체성을 찾는 티베트인들은 심각한 인명 손실을 당했고 상당수 문화재가 파괴됐다. 문화대혁명 이후 티베트 6000여 개의 사원 중에 남은 것은 불과 10개 미만이었을 정도다.
1980년대에 들어 중국에 몰아친 개혁·개방 물결은 티베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티베트 여러 도시에서 티베트인들보다는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경제권을 장악했다. 이런 와중에서 티베트어는 쓸모없는 언어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편 중국이 개혁·개방 정책을 채택하기 이전에 티베트 문제에 대한 국제 사회의 관심은 매우 저조한 편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미국이 티베트에 큰 관심을 보였다. 1980년대는 중국이 개혁·개방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중국의 민족문제도 새로운 양상을 띠기 시작할 때였다. 1987∼88년에 티베트에서는 여러 차례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가 있었지만 중국정부는 이를 철저히 탄압했다. 국제사회는 중국정부의 인권탄압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고, 중국 정부는 이를 내정 간섭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티베트 문제가 국제적으로 부각된 데에는 미국이 티베트의 전략적 가치를 인식한 데서 온 측면도 있다.
미국은 1987년 망명중인 14대 달라이 라마의 방미를 허용하고 그해 9월21일에는 하원 인권소위원회에서 달라이 라마가 ‘5개항 평화 제안’이란 제목의 연설을 하도록 했다. 그 내용은 티베트를 평화지대로 바꾸어 중·인 양국 사이의 완충국으로 할 것, 중국은 티베트에 대한 이주정책을 중지할 것 티베트인의 기본인권과 민주자유를 존중할 것 등이다.
같은 해 10월13일 미 국무장관 슐츠는 하원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티베트의 인권 문제’를 우려하는 발언을 했다. 1991년 4월16일에는 부시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14대 달라이 라마를 접견했다. 미국은 ‘티베트는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중국이 티베트 인권을 침해한다는 명분으로 티베트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인도는 1962년 티베트와 대대적인 국경분쟁을 벌인 바 있다. 인도의 바지파이 총리는 ‘티베트는 중국영토’라고 인정하고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말한바 있다.
이처럼 티베트를 둘러싼 주변국의 입장은 자국의 이익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14대 달라이 라마의 방한 문제는 그 대표적 사례다.
한국의 기성세대는 주권을 잃은 티베트에 대해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중국과의 관계 등을 고려한 국가 이익 앞에서 티베트에 대한 애틋한 감정은 무시되고 말았고 여러 차례 논의된 바 있던 달라이 라마의 방한은 결국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아무리 달라이 라마를 비롯한 티베트 독립 운동가들이 노력한다고 해도,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지금 티베트 독립이 쉽게 이뤄질 것 같지는 않다.
중국은 1949년 동투르키스탄과 1950년 티베트를 합병함으로써 영토를 두 배로 늘렸다. 티베트 하나가 중국 영토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인구를 지탱할 땅이 필요한 중국으로선 이런 티베트의 광대한 영역이 소중하다. 한족들은 지금도 끊임없이 티베트로 유입되고 있다. 이런 인구의 대이동은 지난해 칭짱철도가 개통하면서 가속화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대체로 "티베트의 경제·군사적 가치가 높은데다 위구르족 등 다른 50여개 소수 민족의 분리 독립 요구가 분출할 수 있기 때문에 중국 정부로서는 독립이나 자치 요구를 결코 쉽게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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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12.01
  • 저작시기20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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