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이행기 유교의 역할과 이중변혁 - 막말 변혁운동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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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들어가며

Ⅱ. 막말 변혁운동과 그 특징

Ⅲ. 변혁운동에 있어 유교의 영향

Ⅳ. 변혁의 수단으로서 유교의 역할

Ⅴ. 청말 입헌 개혁론과 유교

Ⅵ. 이중변혁과 유교

Ⅶ. 결론

본문내용

이었다.
미조구치 유조 외,『中國思想文化事典』, pp. 542-545.
정치적 정당성을 공론과 공자가 아닌 국가와 민족, 자유와 인권, 그리고 과학과 계몽에서 찾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필자는 이 같은 이중변혁론을 토대로 근대이행 과정에서 유교가 행한 진정한 역할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싶다. 유교는 변혁세력을 결집시키고 새로운 사상을 전파하는 한편, 이들의 정치 참여와 개혁활동을 정당화함으로서 구체제를 안에서부터 붕괴시켰다. 전통시대 유교가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했다면, 근대이행기 유교는 자신이 만들었던 바로 그 질서의 붕괴를 촉진시키는 것으로 최후의 역사적 사명을 다했다 할 수 있다.
Ⅶ. 결론
19세기 이후 동아시아의 전통적 사회질서는 무너졌고, 각 지역은 근대화라는 새로운 과제에 부딪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유교 전통은 봉건적인 구체제나 계몽해야 할 구도덕과 동일시되며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반면 최근에는 유교를 보다 긍정적으로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근대사의 흐름 속에서 유교의 위상과 역할이 어떠하였는지에 대한 실증적이고 구체적인 연구는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 글을 통해, 막말 변혁운동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세계의 근대이행 과정에서 유교가 행한 역할을 대략적이나마 고찰해 보고자 하였다.
에도시대 말기 막부의 정치적 리더십 상실과 사회적 혼란, 대외 위기의식의 확산과 더불어 중하층 사무라이를 중심으로 하는 변혁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게 된다. 막말 변혁운동의 주된 특징은 다음과 같다. 먼저 급진적인 개혁 세력인 지사들이 등장했고, 이들의 정치적 참여를 보장하는 의론정치가 활성화되었다. 또한 존왕양이 사상의 확산은 막부의 권위를 동요시켰다. 그 결과 공무합체나 왕정복고와 같이 기존 막부체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 있는 논의가 성행하기에 이른다.
이 같은 막말 변혁운동에 있어 유교의 영향을 상당한 것이었다. 유교적 교양은 지사들의 정체성 형성과 참여의식 고양을 이끌었고, 공론정치는 유교적 정치문화와 상소라는 제도를 통해 이루어졌다. 존왕양이론을 이념적으로 뒷받침했던 미토학 역시 유학을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진 사상 체계였다. 주자학이 체제 교학으로서 막부의 지배를 정당화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번교와 사숙을 중심으로 한 유교 확산는 변혁운동의 토대가 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유교의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막말 변혁운동을 유교화 운동으로 볼 수는 없다. 지사들의 목적은 천황 존숭과 부국강병이었지, 유교국가 건설이 아니었다. 오히려 유교적 언어와 소통수단을 이용하여 비유교적 주장을 정당화한 것에 가까웠다. 미토학 또한 유교의 보편주의가 아닌 일본의 특수성과 우월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갔다. 유교적 정치 문화의 침투는 제한적이었고, 그마저도 일본화된 유교의 확산에 불과하였다. 유교는 개혁의 내용을 제공한 것이 아니라, 개혁의 수단으로서 변혁세력을 형성하고 그들의 사상을 공론화하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18세기 후반 이후 내우외란에 시달린 것은 청 왕조도 마찬가지였다. 아편전쟁의 패배는 중국의 근대세계 편입을 알렸으며, 태평천국 운동과 2차 아편전쟁을 통해 청조의 권위는 크게 실추되었다. 중체서용을 내세운 양무운동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한다. 이에 강유위를 비롯한 일련의 젊은 지식인들은 사회 전반의 근본적인 변혁을 주장하며 입헌 개혁 운동을 벌인다. 비록 무술변법은 백일천하로 막을 내렸지만, 입헌 개혁운동의 확산은 공화제 개혁론으로 나아가며 신해혁명의 사상적 배경이 된다.
초기 입헌 개혁 운동의 주도자였던 강유위의 논변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변법을 정당화했던 것은 전통적인 유교 관념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개혁론자들 역시 유교를 목표가 아닌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막말 지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도덕에서 부국강병으로 재빠르게 변화하였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장병린과 같이 유교 사상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움직임마저 나타났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필자는 중일 양국에서 근대이행기 유교가 변혁의 수단으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한 걸음 나아가 근대이행기 유교의 역할을 보다 명확하게 평가하기 위해 ‘이중변혁론’ 개념을 제시해 보았다. 이중변혁론은 한마디로 동아시아 각 지역의 근대이행을 구체제 붕괴와 근대국가 형성이라는 이중 변혁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구체제 붕괴기에서 가장 먼저 도태되는 것은 일체의 변화를 거부하는 완고한 보수파이며, 이어 체제유지를 위한 보수적 개혁운동과 체제전복을 주장하는 혁명적 개혁운동이 대립한다. 이 단계에서 유교는 구체제에 대항하는 세력을 결집시키고 새로운 사상을 확산시키는 변혁적 역할을 수행하지만, 동시에 유교적 사상 체계는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구체제의 해체와 함께 각국은 근대 국민국가 형성기라는 변혁의 둘째 단계에 접어든다. 일본의 경우 단기간에 근대국가를 건설하는 데 성공하지만, 중국의 통일된 국민국가 건설은 1948년까지 지연된다. 한편 식민화를 통한 구체제 붕괴가 일어났던 조선에서는 독립운동이 근대국가 성립 움직임을 대신했다. 이러한 사회 변화 속에서 유교는 개혁 수단으로서의 가치조차 잃어버린 채, 부정과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정치적 정당성이 과학과 민주주의에서 나오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같은 필자의 주장은 아직까지 가설이나 제안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 사실이다. 막말 변혁운동과 청말 입헌 개혁운동의 양상에 대한 실증적인 조사가 부족했으며, 이중변혁론 역시 본격적인 입론을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논증이 필요하다. 다만 ‘동아시아의 근대와 유교 전통의 관계’라는 거대한 주제를 다루기 위한 첫 걸음 정도의 의미는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동아시아 전통 사회에서 유교의 영향력이란 막대한 것이었고, 현대인들도 은연중에 그 영향을 받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교에 대한 맹목적인 비난이나 피상적인 예찬을 모두 극복할 수 있는 ‘합리적인 유교 비판’인 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유교 전통과 근대세계에 대한 역사적 연구야말로 합리적 비판의 토대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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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12.17
  • 저작시기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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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763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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