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보예 지젝 까다로운 주체][라깡의 이론 - 소쉬르 언어학, 상상계(거울단계), 상징계를 통해 성립되는 불완전한 자아, 주체 형성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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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슬라보예 지젝 까다로운 주체][라깡의 이론 - 소쉬르 언어학, 상상계(거울단계), 상징계를 통해 성립되는 불완전한 자아, 주체 형성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I. 서론

II. 본론
라깡의 이론 - 소쉬르 언어학, 상상계(거울단계), 상징계를 통해 성립되는 불완전한 자아, 주체 형성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 소쉬르 언어학-기표와 기의
■ 주체성의 확립: 상상계(거울단계-소외)-상징계(분리)-실재계(환상)
■ 주체의 존재양식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 오이디푸스는 어디로?-왜 오이디푸스인가?

본문내용

. 모든 사회적 갈등이 동등한 권리를 지닌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런 논리를 거쳐 그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만난다. 요약하자면, 주체를 복원하고 그 주체를 통해 계급갈등이라는 근본모순을 해결하는 정치를 실천하는 길을 찾는 것이 지젝의 관심사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젝은, 이러한 주체의 결핍과 오이디푸스의 몰락이라고 표현되는 부성적 권위의 붕괴가 두 가지 측면을 갖는다고 말한다. 지젝은 사실상 대타자가 분열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수행적 유효성을 잃은 현실 속에서, 주체에게 전이의 영향을 미치는 두 판본의 안다고 가정된, 믿는다고 가정된 주체로서의 대타자가 단순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실재’속에서, 즐긴다고 가정된 주체로서의 세 번째 판본으로, 초자아의 모습으로 귀환한다고 설명한다. 이것이 만약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면 사실상 진보가 아닌 퇴보이다. 우리는 대타자의 비실존을 자신의 데리다적 서명, 내지는 고유명으로 인수하는 단독적 주체는 물론, 상상적 것 속에서 자유롭게 부유하는 주체로는 커녕, 오히려 강하게, (상상적 증오/애착의 대상으로서)실재적 타자에 사로잡혀 있는 원-정신증자들을 쉽게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열어놓은 근대적 주체의 곤궁은 콤플렉스와 더불어 사라졌다기 보다는 차라리 그것을 완화하는 지탱물만을 잃었는 것이 더 현사태에 가까운 것이다.
이러한 이른바 ‘후근대적’ 주체성은 고유한 상징적 금지의 결여에 의해 야기된, 일종의 상상적 이상의 직접적 초자아화를 내포한다. 이는 후근대적 주체성은 ‘후근대적 탈소외’의 역설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후근대 사회를 살고 있는 주체들은, 복장과 행동에 대한 사회적 규범들을 무시하고 저마다의 내밀한 개성을 따르라는 명령 아래에서 살아간다. 주체를 개성으로 인정하지도, 정상화시키려 분쇄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주체의 독특한 개성이 지닌 창조력은 주체를 괴짜로 만들고, 주체가 이것을 버리고 정상적인 성숙한 주체처럼 행동하기 시작하는 순간, 주체는 쓸모없는 놈이 되어버린다.
그리하여, 대타자의 물러남은 두 개의 대립되지만 상관적인 결과를 낳는다. 한편으로 이 상징적 허구의 실패는 우리로 하여금 점점 더 상상적 시뮬라크르에 달라붙도록 유도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신체 자체의 실재에서 폭력에 대한 필요를 격발한다. 지젝은 이러한 폭력의 대가 -신체의 상해를 보충하는 인공적 구조물- 를 남근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지젝은 기의로서의 남근(부성적, 상징적 질서 속으로 통합된 향유의 일부)과 기표로서의 남근(남성 주체가 남근의 기의를 떠맡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을 구분하며 ‘상상적 남근의 의미’와 조우하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의 삶이 실제로 관여되는 것이라 설명한다.
극단적 개체화는 궁극적인 정체성의 위기로 귀결된다. 주체들은 스스로를 근본적으로 불확실한 것으로서, 어떠한 고유의 얼굴도 없이 하나의 부과된 가면에서 또 다른 가면으로 변환하는 것으로 경험한다. 결국 가면 뒤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개인적 정체성을 강조할 의도로 점점 더 미친 듯이 채우려고 노력하는 끔찍한 ‘공백’이다. 지젝은 이것이야말로 상징적 연결망 속에서의 근본적 소외를 받아들임으로써만 최소한의 정체성을 획득할 수 있고, 즉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는 라깡의 통찰의 궁극적 확증이라 말한다. 내 눈을 믿지 않고, 타인의 말을 믿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직접적 경험에 대한 나의 느낌이 아닌, 타인이 말해주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궁극적인 개체화-타인에의 완벽한 의존을 통한-는 또다시 약물의존이라는 반대 결과를 낳으며, 끊임없이 악순환의 고리를 타고 돌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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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1.03
  • 저작시기2014.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27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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