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관람기] 한국 기독교 박물관을 다녀 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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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박물관 관람기] 한국 기독교 박물관을 다녀 오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한국기독교박물관>
<고고/미술실>
<한국기독교역사실>
<근대화와 민족운동사실>
<숭실역사실>

본문내용

eol (Explanation of Western Machines and Technology)
A.D 1627/요한 테렌스 著/24.8*16.5cm
예수교 선교사 요한 테렌스가 저술하고 중국인 왕징(王徵)이 번역하여 간행한 역학서이다. 모두 3권으로 되어 있으며, 이것은 그 제2권이다. 여기에는 (1) 천평(天平), (2) 등자(等子;저울), (3) 공간(杆;지렛대), (4) 활차(滑車;도르레), 윤반(輪盤;粗立滑車), 등선(藤線;나사) 등 운동에 관한 여러 가지 기계의 원리를 도해(圖解)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개항 이후 민족의 부침과 한국민의 역동성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개화문물 수용 및 개화사상 관련자료, 독립협회 및 애국계몽운동 관련자료, 국가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안중근의사의 친필 유묵 등을 통해 한말 민족운동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안중근의사유묵 安重根義士遺墨
Calligraphy by An Jung-geun
A.D 1910/안중근 作/38.6*96.7cm
의사의 민족적 기개를 엿볼 수 있는 글로 “第一江山”과 “丈夫雖死心如鐵 義士臨危氣似雲”(장부는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이 쇠와 같고 의사는 위태로움에 임할지라도 기운이 구름 같도다)이다.
일제의 강압적인 무단정치에 맞서 한국인들은 거족적인 3.1운동 등 항일민족운동을 꾸준히 전개하였고, 이러한 민족운동이 밑거름이 되어 감격스런 8.15해방을 맞이하게 되었다. 전시실에는 한국 교회와 기도교인들이 주도적 역할을 하였던 3.1운동과 임시정부 및 일제의 독립운동 탄압관계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일문독립선언서 日文獨立宣言書
The 1919 Declaration of Independence
Translate into Japanese
A.D 1919/일본경찰/27.7*21.3cm
1919년 2월 28일 저녁 3·1독립선언서를 손에 넣은 일본 경찰이 그날 밤으로 선언서를 번역하여 3월 1일 등사한 것이다.
<숭실역사실>
1987년 설립된 숭실은 1908년 한국 최초의 대학졸업생 배출을 시작으로 참다운 기독교인과 민족운동가 양성에 매진하였다. 숭실은 근대 지식체계를 습득하는 신지식의 요람으로, 항일민족운동의 중심지로서, 전도, 음악활동, 체육활동, 문예활동 등 신문화의 선구적 역할을 담당하면서 민족을 대표하는 고등교육기관으로 발전하였다. 105인 사건과 비밀결사 조선국민회, 3.1운동을 주동하였고, 마침내 신사참배 강요에 항거하여 폐교되는 비운을 겪고 말았다. 숭실역사실에는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기독교인 양성에 주력하였던 한국 최초 대학, 숭실의 역사적 변천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졸업증서 卒業證書 Diploma
A.D 1908/숭실중학/66.0*50.3cm
1908년 숭실중학에서 계원식(桂元植)에게 수여한 졸업증서이다. 당시 장로교와 감리교가 연합으로 운영하고 있었기에 교장이 장로교측의 베어드와 감리교측의 베터(A.L.Becker, 白雅悳) 두 명으로 표기되어 있다. 상단의 태극기와 중간의 숭실교기가 숭실의 교풍과 상징성을 잘 보여준다.
  • 가격1,800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13.03.03
  • 저작시기2011.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3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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