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근대화론’ 비판 국제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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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식민지 근대화론’ 비판 국제정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서론……………………………………………………………………………1


Ⅱ본론……………………………………………………………………………2
 1‘식민지 근대화론’이란?…………………………………………………2
 2‘식민지 근대화론’의 등장과 전개과정……………………………… 2
 3식민지 근대화론의 내용과 그 비판………………………………………4
  1) 식민지 근대화론과 식민지 수탈론의 이념적 대립(정체론 VS 내제적 발전론)
  2) 식민지공업화
  3) 토지조사사업
  4) 산미증식계획

Ⅲ결론……………………………………………………………………………9


■ 참고문헌 ■…………………………………………………………………10

본문내용

경제사회적 질서를 보호하려는 것이었음에 비하여 후자는 일제가 자본축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기존의 향촌질서를 파괴해 버렸다는 것 등의 차이가 있다. 이 말은 ‘식민지 근대화론자’들 일제 토지조사사업 연고에 대해 펼친 여러 주장에 비판을 가한 것이고, 대한제국이 벌인 일련의 사업을 일제가 왜 방해하였는가 하는 점도 확연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4) 산미증식계획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또한 산미증식계획(1920-34)이 산업자금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크게 기여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 계획은 농지와 토지개량사업으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토지개량사업이 수리시설의 확보가 중심 내용이므로 농업기반 구축사업이었고, 농사개량사업은 품종개량과 시비방법의 개선 및 농사기술의 개량 등이 그 내용이므로 소농경영의 합리화를 도모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산미증식계획은 미곡의 대일 반출이 기본목표였음에도 불구하고, 농업기반을 구축하고 농사방법을 크게 개선함으로써 한국 농업을 한 단계 발전시킨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식민지 수탈론자들에 의하면, 산미증식계획은 식민지적 이익을 극대화시켜 나간 사업이었다. 모두 3차에 걸쳐 추진된 이 계획은 생산량에서 증대를 가져와서 1930년대 초의 미곡 생산량은 1910년대 초반보다 1.5배로 증가하였다. 그렇지만 같은 기간 동안 일본으로 유출된 미곡의 양은 9.4배나 되었으니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이다. 일본으로 유출된 미곡은 1910년대 초반에 총생산량의 7.1%에 불과했으나, 1930년대 초에는 45.6%로 6.4배나 되었다. 생산량은 일본인들이 말한 것처럼 증가하기는 했지만, 생산량의 절반이 일본으로 유출되는 상황은 한국인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1920년에 39.8%이던 순 소작인의 비율이 이 계획이 마무리되던 1932년에는 52.8%로 늘어났다. 전 국민의 반 이상이 경작지를 한 평도 가지지 못하는 순 소작인이었다는 말이다. 일제가 만주를 침공하던 1930대 초에 많은 한국인들이 만주로 향했던 원인에는 이러한 조건이 중요하게 작용되었던 것이다.
Ⅲ. 결론
우리는 지금까지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고찰해 보았다. 글의 끝머리에서 논자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한 학자의 다음과 같은 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한다.
“식민지 역사의 두 축이 ‘수탈과 개발’이므로 식민지사에 관한 수탈사적 연구도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수탈사 일변도는 역사의 실상을 왜곡하는 것이며, 민족주의적 의식을 고취한다는 의의는 있지만, 사회경제사 연구의 본래 목적인 사회경제 변화의 역동성에 관한 연구는 찾아볼 수 없게 한다. 따라서 수탈론으로는 사회경제사적 연구가 부진해질 수밖에 없고, 일제시대사에 관한 연구가 주로 독립운동사에 관한 연구로 경도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내재적 발전론은 일국사적 시각이었다. 한국근현대사를 올바르게 연구하기 위해서는 일국사적 시각과 더불어 세계 체제론적 시각을 가져야하며, 이러한 두 가지 시각을 가지고 행해진 연구결과를 종합함으로써 한국근현대사의 전체상을 구성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주장을 또 ‘망언’의 한 형태로 치부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이것을 심각하게 받아드려야 할 것인가? 논자는 감히 후자를 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논자가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고 분석하는 가운데서 발견한 것은 이에 대한 거의 대부분의 논문과 글들이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식민지 근대화론을 바라보는 데 있어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했던 논자의 노력도 실패로 이어진 듯하다. 이는 어쩌면 한국 사회에서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식민지배를 받은 나라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사실 논자 역시도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주장에 분노했던 사람들 중 한 명이다. 그러나 위의 글처럼 우리는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이는 우리가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논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론 = 망언’이라는 공식의 틀 속에서 우리가 역사를 바라본다면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바라봄에 있어 넓은 시각과 다양한 접근방법으로 다가갈 때 그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고 평가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글의 끝머리에서 논자는 감히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끝임 없는 대화’라는 어느 유명한 학자의 역사에 대한 정의를 떠올려 본다. 이와 같은 역사에 대한 정의는 과거에 있었던 그 자체로서의 역사에 어떤 해석을 다느냐에 따라 역사는 다양하게 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가 과거의 그 자체로서의 역사를 올바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화법을 가지고 그것과 대화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역사의 참모습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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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3.03
  • 저작시기20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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