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국문학] 시인 정지용에 관해서 (정지용 시인 소개, 정지용 시인의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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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국어국문학] 시인 정지용에 관해서 (정지용 시인 소개, 정지용 시인의 작품세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정지용 시인 소개
1. 정지용 약력
2. 정지용 작품의 특징과 감수성

Ⅱ. 정지용 시인의 작품세계
1. 해방이전의 활동
2. 해방직후의 활동

참고문헌

본문내용

작품을 전혀 발표하지 않고 있다가 1950년부터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곡마단」(문예,1950.2)이라는 자유시와 6.25가 발발하던 달인 50년 6월호<문예>지에 극단적인 정형시「4.4조 5수」를 발표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말하자면 해방직후의 격동기의 와중에서 대학교수로 혹은 언론인으로 격무에 시달리다가 조용히 물러난 후 시작을 다시 시작한 셈이다.
정지용은 이 시기에 신작의 발표보다는 지금까지 발간한 시집의 재발간작업과 산문집 발간에 힘을 쏟았던 것이다.『정지용시집』의 재판은 1946년 5월 건설출판사에서 나왔고,『백록담』은 재판(백양당 동명출판사,1946.10)과 3판까지 나왔다. 『지용시선』(을유문화사,1946) 이 박두진의 편집으로 발간되었는데 여기에 수록된 25편의 시는 이미 해방전에 나온 두 시집에서 가려 뽑은 것들이었다.
산문집은 『지용문학독본』(박문출판사,1948)과『산문』(동지사,1949)두권으로 묶여지기도 했다. 한호로 종간되기는 했지만 <문장>(1948)을 속간하기도 하였다. 그의 신변도 해방과 더불어 많은 변화가 왔다. 16년 도안 재직하던 휘문고보를 사임하고 이화여자대학교로 옮겨(1945)문과과장으로 한국어와 영시, 나전어를 담당하였다. 1946년 8월 동교가 대학으로 개칭되면서 대학교수가 되어 1948년 2월 사임할 때까지 봉직하였으며, 서울대. 문리대 강사로 출강하여 시론 시간에 「詩經」을 강의하기도 하였다.
한편 창간된 <경향신문>(1946.10) 주간으로 취임하여 47년 8월까지 재임하였며, 1948년 2월 이대를 사임하고는 녹번리 초당에서 서예를 즐기면서 소일하다가 1950. 6. 25. 당시 납북되었던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는 피난하지 못하고 있다가 1950년 7월경 녹번리 초당을 찾아온 좌이계 제자들에 의하여 연행되어 납북되었다. 서울의 정치보위부에 구금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정인택, 김기림, 박영희 등과 같이 수용되었다. 그러다가 평양감옥으로 이감되었다.
이 사실은 납북되었다가 탈출한 계광순의 회고에 의하여 확실하게 밝혀져 있다. 그 당시 이광수, 계광순 등 33인이 수감되었다가 평양감옥이 유엔군의 폭격에 의하여 폭격된 후 정지용은 행방불명된 것이다. 따라서 정지용은 납북된 것이라고 보아도 틀린 주장은 아니다.
참고문헌
박덕규 저, 시인열전, 청동거울 2001
최동호 저, 정지용, 한길사 2008
이석우 저, 정지용 시의 연구, 한국문학도서관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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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6.04
  • 저작시기2013.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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