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의 조선민족미술관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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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의 조선민족미술관 활동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일본근대미학특강>


시작하며
1. 야나기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
2. 조선민족미술관 건립동기
3. 조선민족미술관 활동과정
4. 야나기와 다쿠미의 우정
5. 미술관의 최후 운명
6. 문제점
마치며

본문내용

시작하며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 이하는 ‘야나기’로 약칭)는 매우 감동적인 인물이다. 한 외국인으로서 다른 나라에 애틋한 정을 품고 그 나라 예술에 관한 것이라면 성심성의껏 부축해 주었으며 또한 아무 보답도 요구하지 않았다. 야나기가 한국의 문화예술과 종교에 대해 적극적이고 정면적으로 이해하려 했다는 것은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것으로서, 더욱이 그 감정이 그토록 진지하고 순수하였다는 것에 더욱 큰 감동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글에서는 조선민족미술관 설립과 관련하여 많은 애로와 수고를 겪으면서 절대 포기를 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는 야나기의 모습과 그의 미술관 설립 계획을 지지했던 주변 사람들의 여러 활동과 반응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그리고 조선민족미술관 설립과 관련하여 일련의 문제점과 토론이 존재하였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간단히 살펴보려고 한다. 이러한 작업들은 그의 사상형성과 그 배후의 배경에 대해서 더 깊이 이해를 하는데 유익하다고 본다. 

1. 야나기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

金元龍은 <韓國美의 探究>란 책에서 야나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조선과 그 예술>이라는 저서와 그 밖의 많은 글을 통해 한국미의 진실한 애호가, 이해자’ 로서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던 일본의 야나기는 ‘도쿄대학 심리학과를 나온 후 1920년대부터 미술, 특히 민예의 이해, 진흥, 선전 등에 몰두하여 표면상으로는 방향을 전환한 것 같으나, 그 자신은 수미일관(首尾一貫)한 인생관,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모든 행동은 그러한 사상이 실천에 옮겨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평가가 비교적 전면적이고 객관적이라고 생각된다.
야나기는 일생 동안 미론과 한국예술에 대해서 이미 많은 주장과 이론을 제출했다. 초기의 신비도 종교철학이랑 그 후의 공예미론, 그리고 불교미학의 사상 등에 대해서 이미 앞에서 많이 언급했기에 나는 여기에서 이러한 면에 대해서는 더 상세히 말하지 않고 이번의 주제인 조선민족미술관을 위요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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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13.03.04
  • 저작시기2013.2
  • 파일형식기타(docx)
  • 자료번호#86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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