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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남북사회문화교류, 남북사회문화교류 중요성, 드라마공동제작]남북사회문화교류의 중요성, 남북사회문화교류의 이질성, 남북사회문화교류의 현황, 남북사회문화교류와 드라마공동제작, 남북사회문화교류의 평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개요

Ⅱ. 남북사회문화교류의 중요성

Ⅲ. 남북사회문화교류의 이질성
1. 북한의 문화예술개념과 정책의 기조
2. 이질화된 남북문화예술분야의 문제

Ⅳ. 남북사회문화교류의 현황

Ⅴ. 남북사회문화교류와 드라마공동제작

Ⅵ. 남북사회문화교류의 평가

참고문헌

본문내용

의 협력사업을 제외하고는 1997년 말까지 협력사업자 및 협력사업승인이 전무했다는 데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는 교류협력이 질적인 측면에서도 진전된 내용을 보이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전체적인 주민접촉 건수는 완만한 증가세를 보여 왔으나 남북교류에 있어서 중요한 계기가 마련되지는 못했다.
다섯째, 북한주민의 남한방문은 남한주민의 방북에 비해 극히 미미한 수준에 머물렀다는 점이다. 특히 1993년의 2건(6명) 이후로는 북한주민의 남한 방문은 1999년 12월 북한 농구선수단의 서울방문까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북한측이 공세적으로 남북 사회문화 교류협력에 응하는 것이 아니라 남한측의 제의나 요구에 대해 선별적으로 응하는 수동적 전략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1990년대 중반까지의 남북한 사회문화 교류협력의 특징은 대북포용정책이 실시된 1998년을 전후로 변화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북한의 잠수함침투사건에 대한 사과로 1997년 전반적으로 확대추세를 보인 남북한 사회문화 교류협력은 1998년 대북포용정책에 따라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과거에 비해 전향적인 대북정책이 유지됨으로써 금강산 관광사업으로 상징화되는 남북한 교류협력도 새로운 의미를 지니며, 양적질적으로 발전했다. 특히 중요한 점은 대북포용정책이 지속적으로 추진되면서 남북한간의 교류협력이 비로소 실질적 의미를 지니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남북한간의 사회문화 교류협력이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한반도 냉전체제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지만 민간차원의 사회문화 교류협력이 전반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점에서 대북포용정책 실시 이후의 사회문화 교류협력은 과거와는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
첫째, 남북한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협력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1998년의 경우 사회문화부문에서 남북한 주민접촉은 전년도에 비해 전반적으로 증가추세를 나타냈으며, 1999년에는 수치상으로는 감소추세를 나타내었으나 민노총 대표단의 평양 친선축구대회, 현대 농구단과 북한 농구선수단의 평양과 서울 상호방문을 통한 통일농구대회, 그리고 남한 대중가수들의 평양공연 등 과거에 비해 질적인 측면에서 진전된 교류협력이 이루어졌고, 유사한 사업이 추진 중에 있다. 따라서 사회문화 교류협력의 과거에 비해 양과 질에 있어서 확대추세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둘째, 제3국에서의 접촉이 지속되는 가운데 방북을 통한 교류협력추세로의 전환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남한주민의 방북이 대폭 증가하여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1999년 10월 말까지 7,836명의 방북이 이루어졌다. 이는 금강산 관광객을 제외한 수치로 1989년부터 1998년 2월까지의 방북자(2,582명)의 3배를 상회하는 수치이다. 1998년 사회문화분야의 방북은 238명으로 1997년에 비해 약 9배가 증가하였다. 1999년에는 북한방문 공연 및 시합이 성사됨으로써 과거에 비해 크게 진전된 왕래교류가 이루어졌다. 특히 1999년에는 문화예술분야와 체육분야에서의 공연과 시합 등 상징성이 큰 대형 교류협력이 남북한 왕래형태로 성사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셋째, 금강산관광사업의 성사와 이산가족상봉의 증가로 제한된 주민들에게 허용되던 남북 주민접촉 및 방북이 일반주민들에게 확대되었으며, 과거와 달리 수시방북이 가능한 형태로 전환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금강산 관광사업은 남한 주민들의 관광목적상 방북이 무제한 가능해졌다는 의의를 가지고 있다.
넷째, 협력사업자 및 협력사업 승인의 대부분이 1998년 이후에 이루어지는 등 사회문화분야에서의 협력사업이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대북포용정책의 구사와 이에 따른 지원에 기인한 바가 크지만 북한의 태도변화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북한의 경우 사회문화분야의 협력사업을 통해 경제적 이익 획득과 대외홍보 및 통일전선전술의 구사라는 다목적 실익추구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다섯째, 최근의 사회문화 교류협력은 과거와 달리 정치군사적 차원의 남북관계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금강산 관광사업은 서해에서의 무력충돌에도 불구하고 진행되었으며, 금강산관광객 억류사건도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빠르게 처리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점에도 불구하고 사회문화 교류협력의 자율적 토대형성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는 남북한간의 사회문화 교류협력이 주로 정부와 갈등관계에 있지 않은 단체들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이는 비제도권 혹은 정부와 입장이 다른 민간단체의 경우 정부로부터 북한주민접촉 승인을 받지 못한 경우가 있었고, 허가 없이 북한과의 공동행사에 참가한 민간단체의 관계자들이 구속되기도 했다. 또한 1999년 8월 평양에서 통일염원 남북노동자 축구대회에 참가했던 민주노총 관계자들의 방북행적에 대해 귀국 이후 검찰조사가 이루어진 바 있다. 이와 같은 점은 송두율 교수나 고 윤이상 선생 미망인의 남한 방문이 당국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이는 보안법으로 상징화되고 있는 분단 및 냉전문화가 아직도 우리 사회의 저변에 자리잡고 있으며, 냉전구조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국민의 정부 출범과 아울러 대북포용정책이 실시된 1998년을 전후로 남북 사회문화 교류협력은 과거에 비해 양적질적으로 한층 진전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하는 동시에 남북한 사회문화 교류협력에 대한 과감한 인식의 전환은 물론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조치와 방안들이 지속적으로 강구되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참고문헌
○ 김성윤(2010), 남북 사회문화교류에 관한 연구, 한국동북아학회
○ 박병석(1995), 남북한 사회문화교류의 현황과 전망, 아태평화재단
○ 양범진(2003), 남북 사회문화 교류협력에 관한 연구, 경기대학교
○ 조한범(1999), 남북 사회문화 교류·협력의 평가와 발전방향, 통일연구원
○ 최성(2005), 남북 사회문화교류 진흥을 위한 정책제언, 최성의원실
○ 통일원(1996), 사회문화분야 남북교류협력실무안내,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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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7.18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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