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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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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개요

Ⅱ. 녹기연맹의 정의

Ⅲ. 녹기연맹의 성격

Ⅳ. 녹기연맹의 이념

Ⅴ. 녹기연맹의 활동

Ⅵ. 녹기연맹의 조선인참여

참고문헌

본문내용

불교 등과 더불어 배격의 대상으로 거론하기에 이른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내선일체가 실현되는 공간’으로서의 녹기연맹이다. 녹기연맹은 조선사회에서 내선일체를 구현하기 위한 실천을 할 뿐만 아니라, 조직 내에서 내선일체를 실현하고 있었다는 측면이 조선인 참가자들을 유인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구모 사토루는 이러한 측면에 대해, “조선인이 일본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진지하게 믿고서 綠旗의 활동에 모여든 사람들은, 일본인도 조선인도, 녹기연맹이란 하나의 공동체 속에서는, 정신과 정치가 융화되고, 민족을 넘어서는 평등, 평화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다”고 분석한 바 있다. 다음의 인용문은, 비록 녹기연맹 스스로에 의해 언명된 것이긴 하지만, 내선평등의 원칙이 관철되고 있는 녹기연맹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과연--재미있군. 잠깐, 약점을 찌르는 것 같네만, 연맹에는, 그러한 반도사람들과 다른 내지인과의 사이에, 예를 들면 급료라든가 그밖에 차별이 있는가? 어떤 상태로 하고 있는 건가?”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네. 급료는 다른 곳에 비교하면, 대학출신도, 전문학교 출신도, 모두 박봉으로 자랑이 될 수 없겠지만, 내선간의 차별 따위 절대로 없다네. 그래서 녹기연맹, 내선일체운동의 本據니까--”
거의 언제나 조선옷을 입고 다니는 쯔다 세쯔코나, 조선의 역사문화에 애정어린 시선을 보내는 모리타 요시오와 같은 일본인이 있었으며, 例會나 修養會 등의 자리에서 일본인 회원을 대상으로 ‘日本精神’이나 ‘國體論’을 강의하는 현영섭, 이영근 등의 조선인도 있었다. 이같은 모습을 통해 조선인 참가자들이 느꼈을 흥분과 감동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내선일체’의 슬로건 아래 차별이 상존하는 사회구조에서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조선인 참가자들은 녹기연맹의 각종 활동을 통해 민족적 차별에서 벗어난 한사람의 인격체로서 일본인들--그것도 재조일본인의 상층부--과 동등한 일본인으로서 만나는 경험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녹기연맹과 직간접의 관계를 맺었던 조선인 인사를 망라한다면 훨씬 더 많겠지만, 여기에서는 녹기연맹에 직접적으로 소속되어 있었거나, 녹기연맹을 내선일체운동의 주요한 공간으로서 삼고 있었던 인사들만을 정리하였다.
그렇다면, 녹기연맹에서 조선인 활동가들은 어떤 역할을 수행했을까? 현영섭의 등장과 활동이 녹기연맹이 내선일체운동으로 나아가게 된 계기가 되었음은 이미 앞에서도 살펴보았다. 綠旗日本文化硏究所에서 근무하던 현영섭이 國民精神總動員朝鮮聯盟으로 자리를 옮기자, 그의 뒤를 이어 이영근이, 그리고 이영근이 떠난 뒤에는 배상하가 이어가며 前任者의 자리를 채워 갔다.
이들 조선인 내선일체론자들은 녹기연맹의 두뇌라 할 녹기일본문화연구소의 이데올로그가 되어 활약하며, 단순한 ‘앞잡이’에 그치지 않고, 녹기연맹의 이론형성에 한 몫을 담당하며, 녹기연맹의 이념적 내용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조선인 참가자의 역할이 특히 두드러지는 부분은 ‘내선일체론의 구체화’란 면이었다. 하나의 당위적 구호에 지나지 않았던 ‘내선일체’가 이들 조선인 참가자들의 손에 의해 비로소 구체적 실천방안의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녹기연맹이 ‘내선일체의 本據’로서 자리할 수 있었던 것은, 선도적으로 내선일체론을 제기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정치권력이 하지 못하는 실천적인 부분의 구체적 방안을 마련해 줄 수 있었기 때문이며, 이것의 상당부분은 조선인 참가자들의 활동에 힘입은 바 크다. 이하에서 몇 가지 대표적인 사례를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國語常用’의 문제를 살펴보자. 현영섭이 부르짖은 ‘조선어 전폐론’은 일본어 습득을 위해 고통을 겪어야 했던 조선인 현영섭 자신의 경험에 바탕해 있었던 것이다. 그가 제기한 ‘국어상용’에 이르는 구체적인 방안과 같은 것은, 외국어로서 일본어를 배워본 경험이 없는 일본인들로서는 생각해 내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가 ‘국어상용’을 주장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일본인으로의 완전한 동화를 목표로 한 것이지만, 한편으로 조선인측의 ‘경쟁력’을 이유로 들고 있다. 실질적으로 일본어를 모르는 경우 생활하기 불편해져 버린 상황에서 언어 습득을 위한 이중부담을 벗어버리지 않고서는, 조선인은 결코 일본인과 동등해지거나 앞설 수 없다는 논리이다. 그는 이러한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정에서도 일본어를 常用할 것과, 학교교육에서 조선어를 전폐하고 일본어를 모르는 아동을 위해 豫科를 개설하여 교육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또한 조선어 신문의 일부를 점차 일본어지면으로 바꾸어 나갈 것, 일본인의 인명을 전부 일본어 발음으로 읽을 것 등의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였다. 나아가 일본어 자체의 변혁, 즉 國字改良, 로마자 사용과 같은 개혁안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일본어의 국자개량 논의는 이전부터 일본인 스스로에 의해 있어 왔던 것이지만, 그의 논의에는 복잡한 한자읽기나 철자법의 혼란이 조선인의 일본어 학습에도 대단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는 이유가 추가되어 있다.
녹기연맹 부인부가 중심사업으로 추진한 조선인의 ‘생활개선운동’에서도 조선인 여성지도자들에 의해 그 구체적인 개선의 지점이 포착될 수 있었다. 쯔다 세쯔코에 의해 주도된 婦人問題硏究會의 활동은, 손정규, 조기홍, 임숙재 등 조선의 대표적인 여성지도자들에 의해 도시와 농촌에서의 衣食住 및 冠婚喪祭를 망라하는 생활상의 개혁방안이 제출될 수 있었다. 연구성과를 결집하여 출간한 현대조선의 생활과 그의 개선(現代朝鮮の生活とその改善)에서는, 조선의복의 개량방안을 제안하면서 그 裁斷 설계도까지 싣는 등 구체적이고 상세한 실천방안을 내놓고 있다.
참고문헌
○ 박성진(1999), 일제말기 녹기연맹의 내선일체론, 한국역사연구회
○ 이혜진(2012), 내선일체의 차질 : 김성민의 녹기연맹을 중심으로, 국제어문학회
○ 이승엽(2000), 내선일체운동과 녹기연맹, 한국역사연구회
○ 이승엽(2000), 녹기연맹의 내선일체운동 : 조선인 참가자의 활동과 논리를 중심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
○ 오태영(2011), 내선일체의 균열들 : 김성민의 녹기연맹을 중심으로, 상허학회
○ 정혜경 외 1명(1999), 일제하 녹기연맹의 활동, 한국근현대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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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7.19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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