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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백제불상, 백제시대 불상, 백제시대, 불상]백제불상(백제시대 불상)의 종류, 백제불상(백제시대 불상)의 형성, 백제불상(백제시대 불상)의 비교, 백제불상(백제시대 불상)의 양식변천 분석(백제불상, 백제시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개요

Ⅱ. 백제불상(백제시대 불상)의 종류
1. 금동미륵 반가사유상
2. 백제관음

Ⅲ. 백제불상(백제시대 불상)의 형성
1. 존상의 형식
2. 배치구도형식
1) 독존식
2) 이불병존식
3) 삼존식
4) 사방불식
5) 군상식
3. 재료에 따른 형식
1) 마애불상
2) 석불상
3) 금동불상
4) 소불상

Ⅳ. 백제불상(백제시대 불상)의 비교
1. 불상
1) 고구려
2) 백제
3) 신라
4) 통일신라
5) 발해
2. 조각
1) 통일신라
2) 발해

Ⅴ. 백제불상(백제시대 불상)의 양식변천
1. 한성기 양식으로써 그 예가 바로 신리출토 금동불좌상이 아닐까한다
2. 웅진기는 중국양과의 외교관계를 통하여 불교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 문화를 꽃피웠을 뿐더러 이러한 발전된 문화를 일본에 전파(513년과 516년 등)하기도 하였다
3. 사비기는 다시 세분하여 제3기로 나눌 수 있다

참고문헌

본문내용

발해
고구려 영향으로 힘찬 모습을 보임, 상경에 있는 석등이 특히 유명하다.
Ⅴ. 백제불상(백제시대 불상)의 양식변천
백제조각은 크게 3기로 나눌 수 있다. 제1기는 漢城期인데 불교가 수용되어 불상조각이 최초로 조성되면서 백제조각에 획기적인 변모를 일으킨 시기이며, 제2기는 熊津期로써 웅진에 수도를 정한 약 60년간인데 중국 南朝와 교류하면서 난숙한 불상조각을 수용하여 백제불상조각이 정착한 단계이고, 제3기는 사비기인데 백제의 불교조각이 활짝 꽃 핀 성기이다.
1. 한성기 양식으로써 그 예가 바로 신리출토 금동불좌상이 아닐까한다
이 불상은 워낙 작고 마멸되어서 정확한 세부형태를 알 수 없지만 사각형대좌 위에 선정인을 하고 몸을 약간 앞으로 숙이고 대좌나 옷 주름 등에서 형식화가 꽤 진전 되었으며 무릎도 세단이 진 것처럼 처리했는데 이것이 옷 주름의 표시임이 분명하다. 얼굴은 둥글하면서도 살이 붙어 구김살없이 웃고 있는 모습이어서 중국의 경우 460년경의 和平5年(464年)금동불좌상등에서부터 나타나 太和年間(北魏477~499년)에 유행하던 것과 비슷하며 특히 대좌나 무릎 신체 등의 세부 특징은 太和7年 동불좌상(478년, 산동성 출토)과 꽤 많이 닮아 있는데 여기서 더 진전된 510년경의 불상들과 어떤 친연성이 있는 것 같다.
2. 웅진기는 중국양과의 외교관계를 통하여 불교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 문화를 꽃피웠을 뿐더러 이러한 발전된 문화를 일본에 전파(513년과 516년 등)하기도 하였다
이점은 1971년 武寧王陵 발굴에 의하여 입증되었다. 熊津時期의 63년은 북방적인 요소를 상당히 없애고 유연한 문화를 정착 시키는 한편 중국南朝와의 교류에 의하여 우아한 남조문화를 수용하여 백제특유의 부드럽고 세련된 문화를 창조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공주 지역의 寺址 가운데 웅진기의 寺址가 정식으로 발굴되지 못했기 때문에 불교조각의 대표작들은 분명하게 밝혀진 적이 없다. 그러나 6세기 전반기 내지 중엽경으로 생각되는 몇몇 작품의 예(普願寺址 出土金銅佛立像, 禮山四方佛)로 보아 높은 육계, 앞으로 숙인 긴 얼굴, 세장한 신체, 시무외 여원인의 손 모양, 휘어 내려간 물결 옷 주름과 함께 귀족적인 얼굴과 佛衣 끝단의 과장적인 장식주름 등의 표현은 북위 후기 정광식 불상과 상통하고 있는 것이다. 北魏양식의 직접적인 영향인지는 알 수 없지만 6세기전반기의 중국南北朝에서 공통적으로 표현된 특징으로 생각할 수 있어서 梁나라 불상양식의 영향을 일단 고려할 수 있다.
3. 사비기는 다시 세분하여 제3기로 나눌 수 있다
제1기(538년~550년경)는 앞에서 살펴본 禮山四方佛像, 定林寺塑佛像 및 石造三尊佛像, 普願寺 金銅佛立像등은 중국북위양식의 전통이 상당히 남아 있으면서도 백제화된, 이른바 초기백제양식이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양식도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겠지만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좀더 강직한 특징과 세련되고 우아한 특징으로 대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반된 특징이 확연히 구분되어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동시에 표현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바로 禮山四方佛에서 나타나고 있다. 즉 본존격인 座佛상이 가장 강직한 편인데 비해서 다른 세면의 불상은 강직한 편 보다는 우아미, 세련미가 더 강하게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제2기(550년경~7C초)까지의 조각은 백제적인 특징이 완전히 정착한 것이다. 앞서 살펴본 불상양식에서 약간 진전되었는데, 東西魏末 양식과 北齊, 周양식의 영향을 받아들이는 한편 한국적인(백제적) 특징을 확연히 정립(예 : 軍守里 蠟石佛坐像, 군수리 금동보살입상, 신리 금동보살입상, 泰安磨崖佛像, 瑞山磨崖佛像, 납석제 반가사유상등)하였으며 백제의 얼굴과 백제적인 우아하고 세련된 아름다움이 정착된 백제적인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하겠다.
제3기(7C초~660년) 武王(600~640)대야말로 백제의 마지막을 장식하던 문화의 황금기였던것 같다. 통일제국이던 수와 당의 새로운 문화가 들어오고 그런 와중에서 이 시기 초기에는 옛 양식이 남아있는가 하면 새 양식이 등장하는 등 복잡한 양상을 보이다가 650년을 전후해서는 唐樣式의 영향을 받은 새양식이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것 같다.
서산마애불에 이어 완전 입체적인 석불이 출현한다. 이것이 유명한 익산 연동리 석불좌상이다. 가장중요한 머리부분이 없어져 완전한 양식은 알 수 없지만 신체와 함께 광배와 대좌가 거의 그대로 남아 있어 이 불상의 양식적 특징은 그런대로 잘 알 수 있다. 익산 연동리 석불좌상과 유사한 양식을 보이는 것으로 유명한 일본 法隆寺의 금동석가 삼존불(623)이 있는데, 아마도 이 작품은 法隆寺 불상의 선구적인 양식으로 대개 7세기의 초기 작품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말하자면 연동리 불상은 옛 양식이 남아 있으면서 새 양식이 등장하는 그러한 불상조각으로 7세기 초를 대표하는 걸작이라 생각된다. 정읍성 쌍불입상은 이런 경향을 잘 나타내주는데 童顔的얼굴, 사등신에 가까운 체구는 北齊周 내지 隋 초기 양식이 남아 있으면서도 우아하고 세련된 아름다움은 연동리 불상과 친연성을 가지고 있다. 이 연동리 석불을 전후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1907년에 부여에서 발견된 규암 금동보살입상을 들 수 있다. 세장해진 신체, 瓔珞을 배꼽 부근에서 교차시킨 것 등은 중국의 北齊 말 隋 초의 보살상에서 유행하던 양식이지만, 얼굴의 다문 입과 팽창된 뺨, 쾌활한 미소 등은 군수리 보살상등에서 보이는 옛 양식이 남아 있어서 이 상의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앞의 예에서 보듯이 이 시기의 불상들은 北齊周 후기 내지 隋唐초 영향을 보이면서 난숙한 백제조각의 진전된 양식이 여실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박진용(1996), 백제불상 연구 : 충남지역에서 발견된 작품을 중심으로, 한남대학교
박영환(1990), 백제 불상 조각의 조형성, 홍익대학교
이경우(2010), 백제의 불상조각 연구, 동방대학원대학교 출판부
정영호(1998), 백제불상의 원류시론, 한국사학회
진홍섭(1984), 백제불상의 새로운 주목,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황수영(1975), 백제의 불상조각,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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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7.19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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