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이후의 브라질 현대정치사(1985-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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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군사정권이후의 브라질 현대정치사(1985-2004)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벗어나는데 브라질이 역할을 하겠다는 선언을 활발한 외교활동을 통해 보이고 있다.
당선자 시절부터 지구촌전역을 자신의 앞마당처럼 휘젓고 다니면서 화제를 뿌리는 바람에 세계 유수의 언론들은 이 사람의 역동적인 활동상황을 언제나 관심있게 보도하고 있으며, 특히 그가 내놓은 1년 동안의 성공적인 국가경영 성적표와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도 할 말은 하는 그의 거침없는 행보가 뉴스원(源)으로서 그의 상품성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룰라는 지난주 인도를 방문해 아탈 비하리 바지파이 총리와 미국주도의 세계 질서에 대한 대책 등 국제현안과 양국간 경제협력 등을 논의했고,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1월 25일 인도와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간에 체결한 특혜무역협정(PTA)을 체결한 것이다. 룰라가 메르코수르 대표격으로 바지파이와 체결한 PTA는 자유무역협정(FTA)의 전단계로 향후 인도-남미간의 5월26일 특혜무역협정(pta)채결한뒤 인도와 남아공 중국등 주요 개도국들간의 전략적 동맹을 제안하기도했다.
또 지난해 국가지도자로는 유일하게 세계사회포럼(WSF)와 세계경제포럼(WEF)에 참석해 못 가진자(Have nots)의 입장을 설파했던 룰라는, 아프리카(2003년 11월), 중동(2003년 12월), 서남아시아(2004년1월)에 이어 5월 중국을 방문해 그의 주장을 넓힐예정이다.
Ⅶ-3-3.룰라 브라질 대통령, 국제 외교무대 핵심인물 부상
그를 수행한 셀수 아모링 브라질외무장관은 "브라질 남아공 인도는 비공식 블록을 이미 구성했다"며 "세계경제가 미국중심에서 벗어나 세계무역기구(WTO)틀 안에서 국가 간 관계를 개선 할 수 있는 조정역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룰라대통령은 이미 조지 W 부시 미대통령을 견제 할수 있는 몇안되는 세계적 지도자중 한명이 됐다. 그는 이달 중순 미주정상회담에 앞서 부시대통령으로부터 "무역문제를 다루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나서야 회담에 참석했다. 이 때문에 부시대통령은 이 회담에서 자신의 최대관심사인 미주자유무역지대 창설문제를 꺼내지도 못했다. 앞서 작년 9월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WTO각료회담에서는 개도국 압력단체인 G22 결성을 주도해 미국등 선진국의 독주를 견제하는데 일조를 했다. 이후 그는 한달이 멀다하고 아프리카,중동,서남아시아등 대륙을 넘나드는 외교력을 펼치며 남-남경제협력의 새로운 교역지도를 그리고 있다. 2003 11월 8일간 남아공등 남아프리카 5개국을 순방하며 남아공과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간 무역협정체결을 논의했으며,12월에는 브라질 최고지도자로서는1백33년만에 처음으로 레바논과 아랍에미리트(UAE)등 중동지역도 찾았다. 2004 5월에는 중국을 방문,브릭스로 대표되는 신흥시장들과의 외교및 경제협력행보에 화룡점정할 계획이다.
Ⅶ-3-4.룰라의 변신 '급진좌파에서 사랑과 평화의 전도사로'
룰라는 사회주의국가인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을 '이상(理想)'으로 여겼으며 브라질의 무토지 농민노동자운동(MTST)을 콜롬비아의 좌익 반군단체에 비유하고 지주와 자본가들의 착취에 대항하는 이들의 활동을 공개적으로 비호해 왔다. 올해 57세인 룰라가 40대 후반까지 텁수룩한 구레나룻과 턱수염을 즐겨 기른 이유도 사상뿐 아니라 외모까지도 카스트로 의장을 닮아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었다고 한다.
가난했던 가정환경으로 인해 초등학교만을 졸업하며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룰라는 천부적인 선동가 기질을 발휘해 노동자와 농민, 빈민층의 가슴을 파고드는 연설과 대중적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지지기반을 착실하게 다져왔다.
노동자와 농민 등 빈민층과 서민층에만 지지기반을 두었던 룰라는 3차례의 낙선 끝에 그들의 지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가 이번 대선부터 '평화와 사랑의 룰라'로 변신하며 노조와 농민뿐 아니라 정치인과 기업인, 지주계층까지도 포용하겠다는 정책과 이미지를 내세운 배경이다. 룰라는 변신을 시도했고, 보기 좋게 성공했다.
룰라는 먼저 강경투쟁을 연상케 하는 카스트로식 구레나룻과 턱수염에 변화를 줘 '인자한 아저씨'로 이미지를 연출했고 투쟁 일변도였던 연설내용을 온건 개혁 쪽으로 바꾸었다. 미국을 라틴 아메리카의 자본과 인민을 수탈하는 신제국주의의 상징으로 몰아붙이며 미국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해온 룰라는 이번 대선에서 미국은 '협상의 상대'로 간주하는 등 비판의 톤을 낮췄다.
룰라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등 다국적 금융기관에 대해서도 개발도상국을 착취하기 위한 선진공업국들의 '꼭두각시 기관'으로 간주하고, 채무 불이행 등을 공공연하게 선언해 IMF뿐 아니라 브라질 내 금융인과 기업인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아왔다. 그러나 룰라는 이번 대선에서는 IMF와 세계은행 등에 대한 비판수위를 크게 낮추며 "그들과 브라질은 동반자 관계"라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룰라는 또 지난 대선 때까지만 하더라도 공식석상에 자신의 부인을 동반하는 예가 거의 없었고 미소 대신 항상 경계하거나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번 선거유세에는 시종일관 부인을 동반했고 파안대소하는 모습도 자주 보여 브라질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당연히 룰라의 변화에 대해 지금까지 그와 이념을 같이하던 순수 좌파 일각에서는 "변해도 너무 변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룰라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나는 '영원한 야당'으로 남기 위해 대선에 출마한 것이 아니라 정권을 잡고 우리의 뜻을 펼쳐보이기 위해 출마했다"며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나는 분명히 야당이지만 반대자라고 해서 반드시 '추악한 얼굴'을 지닐 필요는 없다"고 해명했다.
룰라의 경제정책 참모인 기도 만테가는 "우리는 70-80년대가 아닌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다"며 "노동자당의 정강이나 이념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상황에 맞춰 변신할 줄도 알아야 하며, 그것은 때로는 '성숙'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참고문헌★
1. 브라질의선택 룰라 -금속노동자에서 대통령으로-, 박원복 옮김,가산출판사,2003
2. 콜럼버스에서 룰라까지-중남미의 재발견-, 송기도 지음, 개마고원, 2003
3. 한국경제일보, 한겨례신문, 인터넷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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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9.29
  • 저작시기2014.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83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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