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의 건국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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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리 나라의 건국 신화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우리나라의 건국 신화
 1. 고조선 신화
 2. 고구려 신화
 3. 백제 신화
 4. 신라 신화
 5. 가야 신화
Ⅲ. 맺음말
※ 참고문헌

본문내용

데 이 12국과 《삼국유사》의 6가야의 관계는 현재로써 명확히 연계시켜 볼 수 없다. 단 그중 구야국(狗倻國)은 수로왕의 가락국에 비정되고 있을 뿐이다. 또 위의 책 한조의 내용을 보면 가야국의 성립 여건이 신라나 백제에 비하여 뒤 떨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하여 가야국은 여타의 나라와 같은 천강신화가 나타날 수 있었으며, 위의 나라 중 세력이 강하였던 5~6개의 나라가 존재한 후 이를 토대로 신화가 완성되었을 것이다. 논리적으로 생각해 볼 때, 하늘에서 김해에 내려온 나머지 다섯 개의 알에서 나온 사람들이 김해 이외의 다른 지방에 가서 통치에 필요한 신성성을 보장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두 번째로는 난생의 의미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다. 가야와 신라의 건국신화는 난생신화라는 것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고구려의 경우도 난생신화이나 신라와 가야의 경우는 난생 자체로도 숭배 받고 지도자가 되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또한 최초의 촌장들이 존재한 것과 왕비역시 신성성을 가진 점으로 비추어 볼 때 이는 같은 남방계로써 확고한 국가의 경계가 이루어지지 않고 그 지역에 널리 퍼진 신앙이나 사상에 아우른다고 할 수 있겠다. 신라의 건국은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통해 BC 57년으로 알려져 있다. 가야는 후한 세조 광무 18년 임인 3월이었다고 서술하고 있고 이 연대는 BC 42년으로써 신라의 건국에 비해 1세기 정도 늦다. 이는 신라가 건국신화로 내세우는데 사용한 난생을 자신들의 건국신화에도 차용함으로써 신라의 신화와 같은 신성성을 획득하였다. 실제로도 주촌면 양동리 토광묘에서 가야 건국전인 BC 1세기 말엽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나오면서 이전 단계의 지배자 보다 훨씬 강화된 새로운 권력의 지배자가 등장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어 신라와 대등한 국가의 지위를 얻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지막으로 구지봉에서 불리어진 구지가의 거북의 의미를 알아보도록 하겠다. 구지가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거북'은 무엇인가, '거북의 머리'는 무엇을 의미하는 가이다. 이에 따라, 거북이 머리를 내어놓도록 위협하는 이 노래의 주술적 기능이 다르게 파악될 것이다.
'거북'을 검, 곧 신(神)으로 풀이한다. 그래서 '神이여, 神이여, 우리에게 머리[(우두머리, 君主)]를 내어 놓으라'의 뜻이 된다는 것이다. 만약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라고 위협하고 있는 것은 주술적 기능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즉, 초자연적 존재와 때론 화해를, 때론 투쟁을, 때론 회유나 협박을 하여 적극적으로 결과를 성취시킨다는 주술적 사고가 잘 나타난 노래이다.
또 다른 해석은 '거북'은 예로부터 신령스런 동물, 장수의 동물로 알려져 왔고, '머리'는 생명의 상징이라는 것과 결부시켜, '거북의 머리'를 남성의 성기(性器)를 은유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이 노래의 제작 동기는 원시 사회에 있어서 여성이 남성을 유혹하는 수단이었고, 이 노래가 시대를 따라 내려오다가 그 주문적인 기능이 건국 신화에 끼어들었다고 해석한다.
Ⅲ. 맺음말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건국 신화 다섯 편을 살펴보았다. 신화는 기본적으로 원시ㆍ고대의 문학이다. 특히 건국신화는 고대국가의 건국과정을 반영한 것으로 문학이자 곧 역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건국신화는 단순히 문학적으로 감상하거나 이해하고 말 것은 아니며 역사 이해에까지 나아가야 한다. 우리 민족사의 초창기에 등장했던 나라들의 건국신화는 그 각각의 역사발전 단계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신화는 신성성을 그 생명으로 한다. 이것은 한 신화가 그것이 통용되는 공동체 내에서만 효력을 갖는다는 뜻이다. 중국 사람이 단군이나 주몽을 신성시할 이유가 없듯이 중국의 신화도 우리에게는 신성하지 않다. 그러니까 고대 신화는 다른 종족과 민족에 대한 자기 종족과 민족의 배타적 우월의식의 표현인 셈이다. 이러한 배타의식(排他意識)은 그 반대급부로 공동체 내부의 강고한 결속을 가능하게 한다. 고구려에서 주몽신화의 역할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건국신화는 이러한 속성을 지녔기 때문에 그 나라가 망하면 함께 소멸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 국가의 소멸은 그 지배층의 몰락일 뿐 일반 백성들은 다른 국가 또는 새로운 국가에 포섭되고, 건국신화 역시 민간전승의 형태로 남게 된다. 이렇게 민간에 전승되던 신화가 중세와 근대에 새롭게 재인식ㆍ재평가되면서 명실상부한 민족 신화로 부상하는 경우를 단군신화와 주몽신화에서 볼 수 있었다. 몽고의 침략에 따른 민족적 위기에 고려의 건국을 찬양한 일종의 건국신화 격인 『고려세계』대신 주몽신화와 단군신화가 부상한 사실에서 고대 건국신화의 민족 문학적 성격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단군신화는 근대에 들어와서 우리 민족의 신화로서 더욱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으니 고대의 건국신화가 거듭 부침을 겪고서 근대의 민족 신화로 정립된 셈이다. 이것은 우리 근대가 외세의 침략에 맞서 자주적인 근대 민족국가를 수립해야만 했던 역사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요컨대 민족 신화의 전승과정은 고대국가에서 처음 형성된 민족이 단일민족에 의한 단일국가의 과정을 거쳐 근대 민족국가로 나아가는 민족사의 전개과정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민족 신화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민족문학의 일원이다. 그러므로 민족 신화가 내포하고 있는바 신성성을 바탕으로 한 다른 민족에 대한 우월의식이나 민족 공동체의 일체감 및 동질성 강조는 오늘날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의 이념에 맞게 재해석되거나 재창조되어야 할 가치이다.
※참고 문헌
민족문화연구소,『민족문학사강좌-상』, 창작과비평사, 1995.
이지영, 『한국 건국신화의 실상과 이해』, 月印, 1998.
이복규, 『부여 고구려 건국신화 연구』, 집문당, 1998.
서대석, 『한국 신화의 연구』, 집문당, 2001.
이종욱, 『한국사의 1막1장 건국신화』, 휴머니스트, 2004.
손종흠, 『다시 읽는 한국 신화』, Human&Books, 2004.
나경수, 『한국의 신화』, 한얼미디어, 2005.
김문태, 『되새겨 보는 우리 건국신화』, 보고사, 2006.
일연/이가원,허경진,『삼국유사』, 한길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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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10.10
  • 저작시기2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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