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지도안]제 7단원 문학과 사회 - 소단원(1) - 홍길동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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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학습지도안]제 7단원 문학과 사회 - 소단원(1) - 홍길동전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중학교 교재 1-1
제 7단원 문학과 사회
소단원(1) - 홍길동전

1. 제 7단원(대단원)

2. 대단원의 개관
1) 단원 설정 이유
2) 대단원 학습목표
3) 지도상의 유의점 (교사용 지도서)

3. 교과서 분석
1) 대단원표지
2) 단원의 길잡이
3) 학습활동 : 소단원(1) 홍길동전

4. 보충자료
1) 문학 작품의 해석 방법
2) '홍길동전'의 영웅 소설적 구조
3) 조선 시대의 신분 제도
4) 역사상의 홍길동과 활빈당
5) 홍길동전의 이본
6) 채수의 설공찬전

본문내용

)을 담당한 대다수의 농민과 상인(商人), 공장(工匠) 등이 이에 해당한다.
천민(賤民) : 가장 낮은 신분 계급. 노비, 역리(驛吏-역에서 일을 보던 사람), 진정(津丁-나루에서 일을 보던 사람), 백정(白丁-소, 돼지 따위를 도살하는 사람), 광대, 승려, 무당 등이 있다.
4) 역사상의 홍길동과 활빈당
'홍길동전'의 주인공 홍길동의 모델은 실재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연산군 6년(1500년)에 홍길동을 체포하였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보인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양반 집안의 서자인 듯한데, 가정 안의 심한 갈등으로 강상의 변 - 가족을 살해하거나 패륜하는 등 삼강 오륜에 어긋나는 일을 함 - 을 저지르고 도주하여 도적떼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충청도 지방에서 주로 활동한 듯하며, 대낮에 당상관 복장을 하고 무장한 부하를 거느리고 관청에 버젓이 출입하여 무뢰한 행동을 자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20세기 초(1899년경 ~ 1904년경) 금강 북부, 즉 충청남도 서부 연안의 내포 지방을 중심으로 한 '활빈당'의 활동도 있었다. 이는 19세기 말의 의병 운동 이후의 농민군 집단 투쟁의 하나로서, 인간의 평등, 사회적 빈부의 타파, 나라의 혁신을 지향하며 '홍길동전'의 세계를 되살린 것이다.
5) 홍길동전의 이본
현재 전하는 〈홍길동전〉에는 17세기 말에 실재했던 인물인 장길산(張吉山)이 언급되는 등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그대로의 모습이 아닐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홍길동전〉의 원본은 아직 발견된 바 없고, 세부적인 내용과 표현에서 상호간에 차이가 있는 후대적 이본(異本)이 많이 전해온다. 판각본·필사본·활자본이 다 있다.
판각본에는 경판본과 안성판본, 완판본이 있다. 경판으로는 야동본(30장)·한남서림본(24장)·어청교본(23장)·송동본(21장) 4종이 있으며, 안성판으로는 23장본·19장본 2종이 전한다. 이 외에 완판 36장본이 있다.
필사본으로는 89장본과 86장본, 52장본, 21장본이 있으며, 한문 필사본으로는 〈위도왕전 韋島王傳〉이 유일하다. 활자본으로는 회동서관·덕흥서림 등에서 간행한 것이 다수 전한다.
이들 이본은 다시 경판계열·완판계열·필사본계열로 나눌 수 있다. 경판계열에는 경판본 전부와 안성판본 및 필사 21장본이, 완판계열에는 완판본과 필사 52장본이, 필사본계열에는 한문본과 필사 89장본, 필사 86장본이 각각 속한다.
현전〈홍길동전〉 가운데 가장 오랜 최선본(最先本)은 경판 24장본의 제1장에서부터 제20장까지이며, 원래의 〈홍길동전〉의 전체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경판 30장본이다.
완판본은 후대적 부연의 성격이 강한 이본으로, 경판에서 서얼차별(庶孼差別)이라는 신분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것과 달리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고발과 비판의식을 더 부각시키고 있다. 필사 89장본은 내용이 가장 풍부한 이본이며, 한문본은 지금까지 발견된 유일본으로 국문본을 번역한 것이다. 〔형성 배경 및 원천〕 〈홍길동전〉이 형성된 배경으로 〈수호전 水滸傳〉·〈서유기 西遊記〉 등 중국소설과의 영향관계가 거론되어 왔다. 그러나 부분적인 삽화나 인물유형의 공통성은 인정되지만, 두 작품 사이의 전반적이고 직접적인 영향관계를 인정하는 것은 무리이다.
이에 따라 연산군(燕山君)대의 홍길동(洪吉同), 명종(明宗)대의 임꺽정(林巨正), 선조(宣祖)대의 이몽학(李夢鶴), 광해군(光海君)대의 칠서(七庶) 등 국내의 역사 사실에서 〈홍길동전〉의 사건, 인물 형성의 배경을 추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의 국내적 형성배경으로 가장 가능성이 큰 것은 실재 인물 홍길동의 전(傳)이라고 할 수 있다.
6) 채수의 설공찬전
①96년 가을,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실로부터 묵재(默齋) 이문건(李文楗)의 『묵재일기』(1535~1567년)의 탈초(脫草·초서를 정자로 바꾸는 것)작업과 함께 그 뒷장에 간간이 적힌 국문 기록이 무슨 내용인지 검토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충북 괴산에 있는 성주 이씨 문중에서 『묵재일기』를 빌려와 마이크로필름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뒷면에 적힌 국문기록이 발견되었는데 그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니 살펴달라는 요청이었다.
의뢰를 받고 『묵재일기』를 검토하던 중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제3책의 뒷장에서 조선 중종 때 왕명으로 수거돼 불태워진 후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져버린 줄 알았던 채수(蔡壽· 1449 ~ 1515년)의 한문소설 『설공찬전』 (薛公瓚傳)의 국문본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국문소설의 효시로 알려진 『홍길동전』의 원작이 국문본이었다는 증거가 없어 아직도 논란 중임을 고려할 때 이 작품이 지니는 비중은 대단하다. 비록 번역체 국문소설이지만 이 작품이 1511년 당대에 이미 국문으로 번역되어 유통되었다는 사실이 공식기록으로 나와 있어 국문표기 소설로는 최초의 것이기 때문이다.
- 월간중앙 1997년 6월호기사에서 이복규<서경대 교수·국문학>-
② 설공찬전」은 한글로 표기된 최고의 소설이다. 하지만 창작소설이 아니고 한문소설을 한글로 번역,표기한 것이기에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한글소설로 공인되고 있는 「홍길동전」보다 앞선 최고의 한글소설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국문학계는 지난 96년 10일 대전 한남대에서 열린 한국고소설학회 37차 연구발표회를 거치면서 「설공찬전」에 대해 대체로 이러한 잠정적 결론을 내리는 것 같다...
토론자로 나선 고려대 강사 소인호 박사는 『유일한 역사기록인 중종실록에 「설공찬전이 한문으로 베끼거나 국문으로 번역하여 전파됨으로써…」라고 되어있어 한문본을 국역했음이 분명하다』면서 『한글소설로 분류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글소설은 처음부터 한글로 창작된 것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교수도 이에 동의해 『「설공찬전」의 한글본 제목이 「셜공찬이」라고 되어있는 것은 한문원본의 제목으로 추정되는 「설공찬이」를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한문원본 「설공찬전」은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이자 한문소설인 김시습의 「금오신화」(1465∼1470)의 바로 뒤를 잇는 전기소설로 초기 고소설사의 80여년 공백을 메우는 중요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 대한매일신보 1997년 5 12일 기사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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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5.01.31
  • 저작시기2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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