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상가(世運商街). 그리고 세운상가 키드 - 세운상가 키드 넌 누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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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세운상가(世運商街). 그리고 세운상가 키드 - 세운상가 키드 넌 누구니?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세운상가. 그리고 세운상가 키드

대중문화 1세대 = 세운상가 키드

세운상가?

불온한 곳 일 수밖에 없는 운명적 공간구조, 세운상가

무엇이 세운상가를 불온하게 만들었을까?

1980년 후반 세운상가의 운명과 세운상가 키드들의 문화 정체성 혼란

1990년 이후 추억으로 회부되는 세운상가키드의 문화, 그리고 세운상가

본문내용

당시에는 관심이 없었나보다... 라고 생각했으나, 훗날 박승하씨의 측근인 박미숙씨(4조 오혜진의 모친)의 증언을 들으니, 그 때 당시 필자(오혜진)의 삼촌인 박승하씨는 세운상가에서 엘피는 물론 각종 영화와 음란물을 포섭하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조카 앞에서 그런 점을 직접적으로 들어내기가 힘들어 인터뷰 중 감췄다고 생각 할 수 있으나, 이것은 위의 유하와 마찬가지로 세운상가키드들의 당시 경험을 부정하려는 하나의 경향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김홍기 교수의 지적처럼 세운상가 키드들에게 1970년-1980년대를 거쳐 오면서 한국이 겪게 되는 문화운동에서의 이념의 문제가 중요한 기제로 작용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 할 수 있는 부분이다.
1980년대 문화운동은 대중문화를 계급, 민족문화로 추상화시켰고 당시 시대상황과 결부되어 정치해방의 수단으로서 문화, 단일한 문화로 획일화시켜갔다.
민중이야말로 문화 신장의 총량이다. 이 민중에게 사회의 정당성을 이끌어갈 개방적이고 평화적인 역량 없이는 민중사회의 실현에 이르기 어려운 것이다. 확언컨대, 현재의 민중 그대로의 재래성으로는 우선 분단을 극복하는 민족세력으로 발전할 수 없는 것이다. 외세와 독재가 깨어질 때 민중 자신도 함께 깨어질 수 있어야 새로운 역사로 가는 개혁주의 노선을 확보할 터이다.
노동자, 농님, 도시비민, 학생, 지식인, 소시민계층과 중산층 내지 독접자본에 기생하는 모든 관리자, 국가권력에 속해 있는 모든 테크노크라트까지도 그들에게 민중적 삶의 개방에 참가하게 해야한다.
고은- 80년대 복판에 서서(-민중과 문화운동에 대한 단상)
1980년대 문화운동의 현장, 이론적 실천의 측면은 문화욕망의 무의식의 잔재들, 신체적 표현의 잠재적 욕구들을 배제하고 심지어 억압해 온 거이다. 결국 1980년대의 정치경제적 논리는 계급의식 속의 통일적 인간을 지향함으로써 1970년대 대중문화세례를 받은 1세대들은 문화적 갈등과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1970년대 대중문화를 섭렵한 세운상가 키드들이 1980년 청년기를 맞으며 직면한 것은 계급주의 속 일종의 검열기제였다. 그리고 이것은 대중문화의 욕망을 억압했다.
세운상가 키드들은 자신의 사춘기 시절 문화적 경험을 부끄러워하고 감춰야했다.
세운상가도 이들과 운명을 같이했다. 1970-80년대 초반까지 세운상가 키드들을 양상하며 소위 잘 나갔던 세운상가는 세운상가 키드들이 자신의 문화 정체성을 숨기는 1980년 청년시기가 오자, 1980년 후반 점점 쇠퇴의 길을 걸었다. 세운상가 키드들의 문화 생산소인 세운상가를 부정하는데, 세운상가가 그대로 있을 수 있었겠는가? 이와 더불어 용산이 복원되고, 새로운 전자상가로 떠오르면서 세운상가는 최고 전자상가라는 명칭도, 포르노 천국이라는 명칭도 모두 양보하였다.
1990년 이후 추억으로 회부되는 세운상가키드의 문화,
그리고 세운상가
억압되었던 1970년 세운상가 키드의 문화는 1990년대가 되자 그 기억을 복원하기 시작했다. 세운상가 키드들은 억압됐던 자신의 사춘기 기억들을 이제 그리움의 방식으로 불러온다. 1990년대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동물원의 <혜화역에서>, <시청앞 지하철 역에서>에서 우리는 세운상가 키드들을 만날 수 있다. 1970년 영상적 인간, 대중문화적 인간이 만들어졌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세운상가 키드들이 1990년 이후 자신의 문화를 추억하고 기억하는 것과 달리, 세운상가의 운명은 암담하다. 철거 위기에 놓인 것이다. 자신의 키드들은 자신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있는데, 자신은 세상의 흉물이 되어 철거 위기에 빠진 세운상가.
세운상가는 녹지가 된다는 이야기도 있고, 타워팰리스가 들어온다는 소문도 있다.
세운상가의 앞날은 알 수 없다.
다만 지금의 절반이상 닫힌 상점의 문이, 건물 여기저기에 붙여져 있는 철거 반대 현수막들이, 소송에 휩싸여 흉흉한 상가의 분위기가 운명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매일경제 5월 28일자 기사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남쪽의 남산과 북쪽의 종묘를 잇는 서울 종로구 종로3가동 175의 4 일대에 폭 90m,길이 1km에 이르는 대규모 녹지대가 본격적으로 조성된다.
서울시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세운상가 남북녹지축 조성사업의 1단계 구간(3798㎡)에 대한 실시계획인가를 지난 25일자로 고시하고 사업에 착수했다고 28일 발표했다.
세운상가 남북녹지축 조성사업은 1990년 마련된 도시기본계획에 처음으로 명시된 것으로 이번에 실시계획이 승인됨에 따라 기본계획이 입안된 지 18년 만에 사업에 착수하게 된 셈이다.
이번 사업은 세운상가를 포함한 종로와 을지로 등 일대 43만8585㎡(약 13만2000평) 규모의 재정비촉진지구를 관통하는 폭 90m,길이 1km(약 1만3000평)에 이르는 대규모 녹지대를 조성하는 것이다.
모두 3단계로 나뉘어 진행되는데,1단계는 재정비촉진구역인 세운 4구역과 세운상가의 절반이 포함된 종로~청계천 구간(폭 90m,연장 180m)으로 준공은 2008년 12월로 예정돼 있다.
2단계는 세운상가의 나머지 절반을 포함한 청계천~을지로 구간이다.
폭 90m,연장 290m이며 2012년 완공 예정이다.
3단계는 을지로~퇴계로 구간 폭 90m,연장 500m 구간으로 2015년 완공 목표다. 그러나 세운상가 남북녹지축 조성사업이 전임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 복원사업에 버금갈 정도로 어려운 사업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업예정지 내에 세운상가 584개 점포를 포함해 총 1229가구(또는 계좌)의 상가 및 주택이 포함돼 있어서다. 이 지역에서 영업 중인 상인들의 경우 공사 기간 중 영업할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을 서울시가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 측은 "서울시 송파구 동남권 유통단지에 입주 신청을 한 상인들을 제외한 나머지 상인에 대해서는 토지보상법에 따른 보상 절차를 진행하는 일 이외의 다른 생계대책은 마련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청계천 개발 때와 마찬가지로 이들 지역의 세입자 및 부동산 소유주를 설득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반발이 극심하더라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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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5.03.12
  • 저작시기2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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