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한국 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과 위기) 최장집 명예교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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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한국 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과 위기) 최장집 명예교수 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제1부. 문제>
제1장 민주화 이후의 한국 민주주의
1.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2. 보수적 민주주의의 사회적 결과
3.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제2부. 보수적 민주주의의 기원과 갈등>
제2장. 냉전반공주의와 조숙한 민주주의
1.민중동원의 사회와 강력한 국가의 탄생
2. 이념적 양극화에 따른 정치적 대립축의 전치
3.권력의 중앙 집중화와 관료국가
4. 이념적으로 협애한 정당체제의 형성
5. 한국의 ‘세자리즘’과 일본의 ‘55년체제’
6. 조숙한 민주주의의 효과
7.냉전반공주의와 한국 민주주의

<제3장. 권위주의적 산업화와 운동에 의한 민주화>
1. 박정희식 발전모델의 특성은 무엇인가?
2.박정희 정권의 사회적지지 세력은 누구인가?
3.민주주의를 위한 공간을 여는 문제

<제4장, 민주화 이행의 보수적 종결과 지역정당체제>
1. 한국에서의 민주화 이행의 특징
2. ‘협약’에 의한 민주화와 지역정당체제의 형성
3. 민주화가 보수적으로 종결된 이유

본문내용

주주의의 원리와 가치를 부정했던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투쟁으로서 민주주의의 실천문제이다.
세 번째로 대규모의 비폭력적인 학생시위에 의해 정권이 붕괴되었다.
네 번째로 운동의 진행은 처음 학생에 의해서 민주화 이슈가 제기되고 뒤이어 운동이 확산, 고조되고 정치적 기회가 넓게 열리면서 교원노조가 선도하는 노동문제가 뒤따랐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서 분단과 통일이슈를 제기하면서 민족문제를 해결하고자하는 시도등장.
다섯 번째로 운동의 중심 세력이 학생과 조직노동자였기 때문에 이들은 정치적 소요와 혼란이 가라앉고 제도정치가 복원된 이후에는 중심행위자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여섯째로 운동 과정에서 제기된 개혁 이슈는 위로부터 포섭되지 않는 한 정책으로 전환안됨
일곱째로 정치적 민주화가 운동이 중심 이슈인 한 운동은 사회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는다
2. ‘협약’에 의한 민주화와 지역정당체제의 형성
*한국정당의 기원과 성격
한국의 민주주의 이행을 운동에 의한 민주화라고만 규정한다면 잘못 된 것이다. 그것은 운동에 의한 민주화와 협약에 의한 민주화 두과정이 결합한 것이기 때문이다. 구체제를 붕괴시킨 것은 전적으로 운동에 의한 민주화였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제도화한 것은 정치 엘리트간의 협약에 의한 것이었다. 한국 민주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구체제를 해체한 힘과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가져온 힘의 괴리라고 할 수 있다.
한국정당체제의 기원은 냉전반공체제의 산물이고 그렇기 때문에 정당 간 경쟁이 극히 협애한 이념적 스펙트럼 내에서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여야당을 포함한 한국정치의 대표체계계가 사회의 이익과 요구를 광범위하게 대변하지 못하고 사회의 가장 기득적인 보수층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체제가 가져온 흥미로운 현상은 권위주의 집권당이 야당보다 더 개혁적인 성격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해방 이후 이승만 정부에서 그러한데 여당과 야당은 다같이 광범위한 사회적 기반 위에 위치하지 못하고 대중정당과는 거리가 먼, 일종의 명사정당과 같은 엘리트 정당적 성격이 크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정당의 사회적 기반 변화
1950년~60년대의 정당은 사회적 기반을 갖는 대중정당일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태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한 것은 1970년대 유신체제에서 발생했고 1980년 광주항쟁으로 폭발한 지역분제였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 나타난 정당의 형태는 그 이전과는 달리 대중적 성격을 갖는 것으로 변화되었다는 사실이 강조되어야 한다. 즉 그 이전의 엘리트 중심의 명사정당이 민주화와 더불어 처음으로 대규모적으로 사회의 대중들과 만났기 때문에 분명 대중적 요소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역정당체제의 두 측면
민주화 이후 새롭게 출현한 지역정당체제는 두 측면을 갖는다. 하나는 정당 체제적 특성으로서 선거경쟁에 들어온 그 어떤 정당도 보수적 이념이외의 것을 대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지역적 기반만 상이할 뿐 그들의 이념적 정향은 한결같이 보수적이다. 다른 하나는 이 정당 체제를 구성하는 정당 내부의 구조적 특성이다. 변화는 이 두 번째 수준에서 발견된다. 다시 말해 민주화로 인해 정당이 대중적 성격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면서 정당의 충원구조와 그로 인한 이념적 정향에 변화가 나타나게 되었다.
*민주화 이행과 제도화
민주화 이론가들은 성공적인 민주화를 위하여 집권 세력 내의 개량파와 민주화 진영의 온건파 간의 협약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만약 민주화운동 진영의 급진파가 주도권을 쥐고 사태를 혁명적으로 몰고 간다면 강권력을 소유하는 집권 세력 내에서 군의 강경파가 득세하여 급진화하는 민주화 과정에 개입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협약에 의한 민주화의 보수적 성격
1987년 6.29선언으로부터 10월 헌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가결될 때까지를 한국 민주화 과정에서 집권 세력과 민주주의 세력 간 ‘협약’의 기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양자간 협상은 당시 주요 정치 세력을 대표하여 여야대표가 참여한 정치회담의 형태를 띠었다. 그러나 이 제도협상을 위한 라운드테이블은 제도권 엘리트간의 정치게임이었지, 운동 세력이 참여한 협상테이블을 아니었다.
3. 민주화가 보수적으로 종결된 이유
한국에서 민주화가 왜 보수적 경로로 진행된 이유를 말하자면, 첫째 냉전반공주의와 성장 이데올로기를 구현하고 있는 국가의 강력함-국가 헤게모니는 기존의 보수적 질서가 유지될 수 있게 하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그것은 현상유지의 힘인 것이다.
둘째는 ‘2단계 민주화’라고 부르는 이행의 방법-한국의 민주주의 이행을 2단계 민주화로 특징짓는다고 말할 때 그것은 민주화가 1980년의 광주항쟁과 1987년 6월항쟁으로 구성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1980년의 광주항쟁이 민주화를 위한 첫 번째 계기였다면 1987년 6월항쟁은 그 두 번째 계기였다. 광주항쟁은 그 직접적인 결과로 민주화를 가져오지 못하고 반대로 실패한 운동으로서 5공정권의 성립으로 귀결되었기 때문에 정권은 그들의 집권과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여러 형태의 정치교육과 선전홍보수단을 동원하여 광주항쟁의 의미를 축소, 왜곡하고 민주화운동이 아닌 급진 좌파적 민중봉기로 채색, 반호남 지역감정을 부추겼다.
셋째는 민주화의 동력이 되는 두 세력, 즉 제도권의 야당과 운동이 서로 분리되고 약했다는 사실이다.-야당은 권위주의에 대한 대안적 정부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민주화는 조만간 야당의 집권을 가져오게 한다. 그리고 야당이 정부를 구성하게 되었을 때 이들 정당은 민주화 운동을 통해 제기되었던 폭발적인 요구의 증대를 정책을 통해 최대한 실현해야 할 임무를 진다. 하지만 이러한 야당의 세력이 약하다는 것이 문제이다.
*민주정부의 실패는 보수적 이데올로기의 헤게모니, 기득 이익의 강력함, 여소야대, 지역 기반의 소수자적 협애성 등과 같은 요인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민주적 리더쉽의 약함과 정부 운영 능력의 약함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민주정부의 실패를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기술 관료적 경영주의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 참여를 확대하고 이를 통한 민주적 국정수행능력을 확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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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5.05.05
  • 저작시기2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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