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립과 일치, 그리고 조화 (율법과 복음의 관계성에 대한 소고, 루터와 칼빈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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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대립과 일치, 그리고 조화 (율법과 복음의 관계성에 대한 소고, 루터와 칼빈을 중심으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I. 서 론
II. 본 론
1. 루터에 있어서 율법과 복음
2. 칼빈에 있어서 율법과 복음
결 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라짐과 같은 틈바구니 속에서 진리의 빛은 환하게 비추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또한 율법의 폐기를 주장하는 자들에게 율법은 복음을 예비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으로, 죄의 거울로 반드시 필요한 안내자임을 분명히 하고, 복음과 율법은 결코 대치되거나 혼동되거나 나뉘어져서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루터는 율법과 복음의 대립과 일치를 부정하는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으나, 그는 확실히 율법과 복음의 불연속성을 강조하였고 율법과 복음의 차이점을 기술하는데 초점을 둠으로 율법과 복음의 대립적인 요소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인상을 주고 있으며 오해를 받기도 하였다.
이러한 인상과 오해로 인해, 루터가 멜랑히톤과 칼빈이 말했던 율법의 제 3용례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으나 위에서의 짧은 고찰을 통하여 우리는 그가 직접, 그의 입으로 율법의 제 3기능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용법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살펴 볼 수 있었다.
루터가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논증하는데 일생을 보냈다고 한다면 칼빈은 복음과 율법과의 관계를 논증하는데 일생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전자는 율법이 복음의 예비적 단계임을 지시하는 관계라면, 후자는 복음이 율법의 예비적 단계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형기, “‘율법과 복음’ 그리고 ‘복음과 율법’-루터와 칼빈을 중심하여,” 『장신논단』제6집(1990년): 264쪽.
이는 루터가 복음에 초점을 두었다면, 칼빈은 성화에 초점을 두었다고 말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루터는 기독론에 초점을 둔 이해를 했다면 칼빈은 성령론까지도 포함한 이해를 함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 말할 수 있다. 칼빈도 오직 믿음으로서의 구원의 복음을 강조하지만, 칼빈의 2세대 개혁가로서 이미 세워진 개혁교회를 체계화시키고, 기준과 뼈대를 세우는 일에 일생을 보냈기에 복음을 창조로부터 종말에 이르는 계시의 전체의 관점에서 위치시키기고 복음 이후의 교회의 삶에서 적용되어질 복음의 정신을 강조한 것이다. 그 결과 오히려 율법의 완성이 복음이 아니라, 복음이 율법의 완성으로 강조되어지며, 복음은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만들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율법)속에 있는 것이 되고 말았다. 칼빈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율법의 제 3의 용법인 것이다. 이 율법의 제 3용법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 안에 부어주신 하나님의 형상으로의 회복을 촉발하며, 끊임없이 살아서 육신 속에 갇힌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과 의지를 만나게 하는 것이다. 칼빈에게 있어서 율법은 전적으로 선한 것이다. 복음 안에서의 율법의 기능과 역할을 강조한 칼빈은 율법의 불연속성과 연속성을 함께 이야기하기 위하여 율법에 영적해석을 가했다고 말할 수 있고, 이를 방델은 “율법의 영적인 변화(spiritualization)\"라고 하였다. F. Wendel, 같은 책, 244쪽. Kolfhaus, chistusgemeinschaft bei Calvin, 79쪽 참고: “칼빈은 율법과 복음을 하나님의 불가분의 말씀으로 이해하였다”
이로 인하여 칼빈이 율법주의자로 오해 받기도 하나 이는 부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 3편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말하면서 끝까지 율법에서의 자유를 말했기 때문이다. 칼빈은 복음에 율법을 동화시켰다고 말 할 수 있다. 칼빈의 논리의 형식이 지시하는 바는 율법은 창조의 원상태가 지시하고, 화해의 은총에서 조명되고, 이제 성화의 생활에서 해방과 해결이 이루어져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사명을 다한다는 것이다. 전경연, “율법론,” 『칼빈의 생애와 사상』(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2), 125쪽.
루터와 칼빈을 중심으로 한 율법과 복음, 혹은 복음과 율법 이해가 주는 의미는 2가지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복음”의 재발견이다. 그 어떤 인간의 율법적 공로가 개입될 수 없는 철저한 하나님의 은총으로서의 은혜로운 하나님을 발견하게 하는 “복음”이 긴 시간 잊혀져 왔고, 무시되어져 왔다가 이 종교개혁의 시기에 그 빛을 찬란하게 발한 것이다. 이 복음의 힘 있는 역동성은 끊임없는 개혁의 의지가 되고, 그 엄청난 폭발력은 모든 인간의 바벨탑을 무너뜨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둘째는 “율법”의 재조명이다. 율법은 결코 악하거나 무용한 것일 수 없다. 그리고 전적으로 폐기되어져야 할 것도 아니다. 단지 율법은 자기 자리를 벗어나서 잘못된 자리에서 잘못된 역할을 해 왔을 뿐이다. 종교개혁의 빛 하에서 율법은 제 자리로 돌아왔고,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바울이 말했던 “율법은 선한 것이다”라는 명제가 다시 한번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모세의 수건에 가려져 있던 율법이 복음의 빛 하에서 자기 모습을 당당히 드러내었으며 그 본래적이고 선한 기능과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율법과 복음은 끊임없는 긴장 관계 안에서 변증법적인 구조를 가져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면 한쪽으로 기울기가 쉽기 때문이다. 대립도 일치도 아닌 조화의 아름다운 하모니의 관계가 오늘의 교회에 정립되기를 바래본다.
※ 참고문헌
A. E. 맥그래스. 박종숙 역. 『종교개혁 사상입문』. 서울: 성광문화사, 1992.
Bernhard Lohse. 이형기 역. 『루터 연구 입문』. 서울: 크리스찬다이제스트, 19972.
. 정병식 역. 『마틴 루터의 신학: 역사적이며 조직신학적으로 본 루터 신학』.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2002.
F. Wendel. 김재성역. 『칼빈; 그의 신학사상의 근원과 발전』. 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1.
Jean Calvin. 원광연 역. 『기독교강요(상)』. 고양 :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3.
. . 『기독교강요(중)』. 고양 :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3.
. . 『기독교강요(하)』. 고양 :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3.
전경연. 『칼빈의 생애와 사상』.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2.
박종숙. “‘율법의 제3용법’ 논쟁에서 본 루터의 율법 이해.” 서울: 연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1.
이형기. “‘율법과 복음’ 그리고 ‘복음과 율법’-루터와 칼빈을 중심하여.” 『장신논단』제6집(1990년): 240-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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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6.03.13
  • 저작시기20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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