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의 원리(윤리과학, 이상적 인간, 도리의 근원과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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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의 원리(윤리과학, 이상적 인간, 도리의 근원과 발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목차

윤리의 원리

I. 윤리과학

II. 이상적 인간

III. 도리의 근원

IV. 도리의 발견

본문내용

은 미덕이다. 남보다 빨리 생산해야 한다. 아이디어도 남보다 뒤 처지
면 쓸모 없게 된다. 컴퓨터도 정보처리 속도가 생명이다. 느린 컴퓨터
는 아무도 돌아보지 않게 된다. 아무튼 남보다 조금이라도 빨라야 경쟁
력이 있다. 자동차도 발라야 하고 기차도 빨라야 한다. 조금이라도 더
빠른 것을 원하기 때문에 엄청난 돈을 투자해서라도 고속전철을 건설
한다. 비행기도 조금이라도 빨라야 한다. 모든 것이 빨라야 가치가 있
고 빨라야 산다고 생각한다. 스피드는 현대사회의 중요한 미덕이며 생
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그럴까? 20세기는 스피드가 생명인 시대였
으며, 앞으로도 그런 경향은 이어질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획일적인
잣대는 또 다른 문제점을 낳는다. 빨라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다보면 느
린 것의 가치는 잊게 된다.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조금이라도 원가
에 발리 도달하려고 하다보니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을 잃어버리게 된
다. 스피드 존중은 자칫 인간성이나 인간의 존엄에 대해서 경시하는 풍
조를 낳게 된다. 인간을 기계화하고 인간을 하나의 부분품으로 예속하
게 된다. 사회조직의 스피드는 분업에서 오는 고로 분업은 인간을 하나
의 부속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스피드를 무시하거나 반대
하는 입장에서 일상을 한 번 볼 필요도 있다. 그리하면 새로운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일상 일어나는 현상인 양말 신기를 아주
천천히 해보았다고 한다. 양발의 질감을 느끼떤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해보았다고 한다. 찰나적으로 지나는 감촉들을 느끼며 과정상의 즐거움
을 느끼면 해보았다고 한다. 매우 즐거웠다고 한다. 데극권이란 무술이
있다. 동작을 천천히 부드럽게 한다. 매우 천천히 부드럽게 기운을 타
떤서 수련을 하다보면 천지의 기운과 느낌 나아가서는 무한한 힘과 즐
거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다 상황에 따라 격렬하게 노도처럼 몰아 가
기도 한다. 자연의 기운을 느끼는 동작들이야말로 인간에게 내재된 대
단한 힘과 감흥을 일깨워 준다. 이러한 반속도(일단 antispeed라고 명명
함)를 하나의 사회운동으로 전개한 곳도 있다. 스위스에 있는 알프스
'체르마트'란 마을에서는 탈시간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시계를 없
애고 인간을 제약하는 시간, 속도 등 모든 것을 없애고 자연에 따라 사
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것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 가능한 것이지만 시
사하는 바는 크다고 할 수 있다. 너무나 바쁘게 움직임으로서 시간의
노예가 된 현대인들에게 반속도(탈시간)의 시각은 잊었던 소중한 것들
을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도시의 바쁜 일상에 물기지만 때론 전원의
느긋함으로부터 진정 가치 있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다.
깨달음이란 이렇게도 단순하면서도 가치 없어 보이는 데서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일상을 반추하면서 의미를 찾아가는 것도 깨달음의 한
방편일 수가 있다. 이러한 깨달음의 과정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처지에
서 도리(원리)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발견된 원리는 선도 아니고 악
도 아니다. 다만 원리일 뿐이다. 예컨대 갈릴레이가 천동설을 지지하라
는 중세 교회의 위협에 일시 굴복했다 할지라도 '그래도 지구는 돈다'
고 하였다고 한다. 지구가 돈다는 지동설은 하나의 원리 내지 진리인
것이다. 여기에 인간이 좋아하고 싫어하고의 문제와는 관계가 없는 것
이다. 선(善)은 영어로 goodness'이다. 좋다는 것은 대다수의 사람이라
기보다 한시대의 주도세력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선(good)이 되
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조선 후기 기독교가 들어왔을 때 우리와 다른 관
습은 지배층을 긴장시키고 마침내 악으로 규정하여 극도의 탄압을 가
하였던 것이다. 그 시대에는 기독교를 믿는 자체가 악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예는 수없이 찾아볼 수 있다. 원리는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
고도 할 수 있는 바 진리는 선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이러한 원리를 깨닫고 체득을 하면 무한한 힘을 얻게 된다. 어떤 사
람이 과녁을 향해 활을 쓴다고 하자. 사람들의 관심은 화살이 어디를
맞힐까? 몇 점을 맞힐까? 에 집중될 것이다. 사실상 화살이 활시위를
떠나는 순간 그것은 결정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화살이 몇 점을 맞
힐까? 하는 것은 활을 쓰는 사람의 마음상태와 자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정작 그 마음과 자세에 관심을 갖기보다 결과에 몰두
하는 것이다. 활을 美는 사람이 결과에 몰두하여 자세를 흩으리거나 마
음이 흩어지면 화살은 엉뚱한 곳을 맞히고 말 것이다. 활을 쏘는 사람
이 활의 원리를 깨닫고 체득할 때 훌륭한 궁수가 될 것이다. 이순신 장
군이 임진왜란 때 수적인 열세에 있으면서도 제선을 격침시키고 번번
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지형을 이용한 전투의 원리를 깨달았
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형을 무시하고 먼바다에서 전쟁을 걸어 왔을 때
이순신 장군은 전쟁하기를 거부하여 조롱거리가 되고 파직되는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전쟁의 원리를 말고 있었기에 감수했던 것이다. 원리
를 지키는 것은 무한한 용기를 요구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한 러시아 장수 쿠투초프는 나폴레옹군이 러시아에 쳐들어 왔을 때 조
국을 지키기 위해 나아가 싸우지 않고 초토작전을 써서 도시를 불태우
면서 퇴각만 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무슨 전투인가 하면서 비웃
기도 하였다. 그러나 결론은 모든 식량과 잠자리를 불태우면서 내륙으
로 깊숙이 적을 끌어들인 후 겨울을 맞게 된 프랑스군을 거의 전별시킴
으로써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것이다. 섣불리 승부를 내고자하였다면
당시 상황에서 러시아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게 한다. 이렇
듯 원리를 깨닫고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때로는 개인이나 국가의
운명이 걸려있기도 하다.
이러한 원리를 체득하여 행동으로 옮길 때 인간은 내재된 힘을 발휘
하게 된다. 그러한 내재된 힘으로 개인이나 국가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위기극복을 통해 개인적으로는 자아실현이 가능해지며 국
가적으로는 국가와 민족의 번영을 꾀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힘은 자신의 기본적 욕구를 자제할 수 있는 능력이나 훈련으로부터 시
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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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6.03.16
  • 저작시기2016.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97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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