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교재 『동서양 고전의 이해』 1~15장 각각 장의 마지막에는 ‘3. 원문 읽기’가 있다. 이 중 인상 깊게 읽은 고전 원문의 장과 제목을 밝히고, 자신이 ‘이 고전의 원문을 인상 깊게 읽은 이유와 감상’을 서술하시오.
목차
1, 저자 및 작품 소개
2, 이 고전의 원문을 인상 깊게 읽은 이유와 감상
참고문헌
목차
1, 저자 및 작품 소개
2, 이 고전의 원문을 인상 깊게 읽은 이유와 감상
참고문헌
본문내용
인간의 가능성을 역설하는 대목이다.
공자와 맹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는 인륜이 무너지고 도덕이 땅에 떨어진 시대였다. 종주국인 주나라가 유명무실하게 약화되고 주나라의 변방이 되어야 할 제후들은 앞 다투어 세력을 넓히며 서로 쟁투를 거듭하였다. 신하가 임금을 죽이고 임금이 자식을 죽이며 아버지를 자식들이 쫓아내는 그야 말로 말세의 징후가 역력한 혼란의 시기였다.
이러한 난맥상을 안타깝게 여기던 선각자 공자는 인과 의를 주창하며 제자들과 각 국을 누비면서 정치적으로는 요순우 삼황오제의 이상적 정치와 조카를 왕으로서 성실하게 보필한 주공 단의 정치 철학을 지향했다. 맹자는 이러한 공자의 사상을 본받아 인과 의, 도덕으로 나라를 다스리라고 열국의 제후들을 설득하고 나라의 근본은 백성들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맹자는 선왕이 흔종(鐘)을 위해 끌려가던 소를 풀어주라고 한 일을 들어, 그런 마음이면 충분히 올바른 임금 노릇을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이것이야말로 인(仁)을 하는 방법(仁術)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맹자는 이것이 왕으로서 갖추어야 하는 역할에 따른 의무라고 본 것이다. 맹자는 인(仁) 이외에도 개인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주어진 역할에서 따라야 할 의무들을 여러 가지의 도덕적 덕목들로 제시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인(仁), 의(義), 예(禮), 지(智)이다.
- 맹자 사상의 핵심, 도와 덕
공자가 주창한 유가사상은 현실에서 참된 인간의 道를 실현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유교의 인간관은 인간의 물질적 가치와 도덕적 가치가 조화되어 실현됨을 그 이상으로 삼고 있으며, 유교의 사회관(社會觀)은 인간이 개인과 사회의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이 균형을 유지하고자 하며, 유교의 자연관은 인간을 대자연의 일부로 자연의 질서 속에 있는 존재로 파악하여 조화를 중시하여 왔다. 그러므로 유교의 개인관, 사회관, 자연관에 담긴 가치의식의 특징은 정신과 물질, 개인과 사회, 인간과 자연의 조화에 중심을 둔 가치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논한 맹자의 경우는 유교사상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孟子는 춘추전국 시대라는 천하 혼란의 위기상황을 맞이하여 스스로 유학에 대한 강한 신념과 역사적 사명의식을 가지고 인의를 실현하는 왕도의 실현을 강조하였으며, 여러 제자백가의 학설에 대항하기 위하여 이론적 기반으로 성악설을 제시하였다. 이와 같은 맹자의 성선설로 인하여 인간의 도덕적 주체성의 기반과 왕도사상의 이상사회를 구현할 수 있는 가능 근거가 확립된 것이다.
더불어 덕이라는 개념은 맹자를 비롯한 유가사상가들에게서만 사용되는 전유물은 아니다. 하지만 어짊과 덕이라는 개념이 가장 중시된 학파는 역시 유가사상이라 할 수 있으며 그 중에서도 맹자의 공헌이 가장 크다고 하겠다.
작고 가난한 나라는 마치 가난한 집안에서 현모양처를 바라는 것처럼 현명한 지도자를 구하려고 한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성숙하지 못하고 사회문화적으로 세련되지 못한 국민들은 매번 자신이 바라는 지도자 상에 미달하는 지도자를 뽑을 수밖에 없고 고난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맹자는 덕과 현명한 정치사상을 가진 애민군주를 고대하며 대륙을 누비며 자신의 정치사상을 설파하였고 플라톤은 철인이 통치하는 나라를 꿈꿨다. 기대가 낮으면 실망도 작은 법이던가? 새 지도자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덕분에 반전의 성군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후세에 그들의 사상을 계승하고 본받겠다고 한 사람 중에 과연 몇이나 제대로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였을까? 최소한 한반도에는 아직까지도 없었던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
참고문헌
- 류종렬 외, 『동서양 고전의 이해』,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2021.
공자와 맹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는 인륜이 무너지고 도덕이 땅에 떨어진 시대였다. 종주국인 주나라가 유명무실하게 약화되고 주나라의 변방이 되어야 할 제후들은 앞 다투어 세력을 넓히며 서로 쟁투를 거듭하였다. 신하가 임금을 죽이고 임금이 자식을 죽이며 아버지를 자식들이 쫓아내는 그야 말로 말세의 징후가 역력한 혼란의 시기였다.
이러한 난맥상을 안타깝게 여기던 선각자 공자는 인과 의를 주창하며 제자들과 각 국을 누비면서 정치적으로는 요순우 삼황오제의 이상적 정치와 조카를 왕으로서 성실하게 보필한 주공 단의 정치 철학을 지향했다. 맹자는 이러한 공자의 사상을 본받아 인과 의, 도덕으로 나라를 다스리라고 열국의 제후들을 설득하고 나라의 근본은 백성들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맹자는 선왕이 흔종(鐘)을 위해 끌려가던 소를 풀어주라고 한 일을 들어, 그런 마음이면 충분히 올바른 임금 노릇을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이것이야말로 인(仁)을 하는 방법(仁術)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맹자는 이것이 왕으로서 갖추어야 하는 역할에 따른 의무라고 본 것이다. 맹자는 인(仁) 이외에도 개인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주어진 역할에서 따라야 할 의무들을 여러 가지의 도덕적 덕목들로 제시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인(仁), 의(義), 예(禮), 지(智)이다.
- 맹자 사상의 핵심, 도와 덕
공자가 주창한 유가사상은 현실에서 참된 인간의 道를 실현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유교의 인간관은 인간의 물질적 가치와 도덕적 가치가 조화되어 실현됨을 그 이상으로 삼고 있으며, 유교의 사회관(社會觀)은 인간이 개인과 사회의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이 균형을 유지하고자 하며, 유교의 자연관은 인간을 대자연의 일부로 자연의 질서 속에 있는 존재로 파악하여 조화를 중시하여 왔다. 그러므로 유교의 개인관, 사회관, 자연관에 담긴 가치의식의 특징은 정신과 물질, 개인과 사회, 인간과 자연의 조화에 중심을 둔 가치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논한 맹자의 경우는 유교사상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孟子는 춘추전국 시대라는 천하 혼란의 위기상황을 맞이하여 스스로 유학에 대한 강한 신념과 역사적 사명의식을 가지고 인의를 실현하는 왕도의 실현을 강조하였으며, 여러 제자백가의 학설에 대항하기 위하여 이론적 기반으로 성악설을 제시하였다. 이와 같은 맹자의 성선설로 인하여 인간의 도덕적 주체성의 기반과 왕도사상의 이상사회를 구현할 수 있는 가능 근거가 확립된 것이다.
더불어 덕이라는 개념은 맹자를 비롯한 유가사상가들에게서만 사용되는 전유물은 아니다. 하지만 어짊과 덕이라는 개념이 가장 중시된 학파는 역시 유가사상이라 할 수 있으며 그 중에서도 맹자의 공헌이 가장 크다고 하겠다.
작고 가난한 나라는 마치 가난한 집안에서 현모양처를 바라는 것처럼 현명한 지도자를 구하려고 한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성숙하지 못하고 사회문화적으로 세련되지 못한 국민들은 매번 자신이 바라는 지도자 상에 미달하는 지도자를 뽑을 수밖에 없고 고난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맹자는 덕과 현명한 정치사상을 가진 애민군주를 고대하며 대륙을 누비며 자신의 정치사상을 설파하였고 플라톤은 철인이 통치하는 나라를 꿈꿨다. 기대가 낮으면 실망도 작은 법이던가? 새 지도자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덕분에 반전의 성군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후세에 그들의 사상을 계승하고 본받겠다고 한 사람 중에 과연 몇이나 제대로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였을까? 최소한 한반도에는 아직까지도 없었던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
참고문헌
- 류종렬 외, 『동서양 고전의 이해』,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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