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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枝:훈독(갖) 良:(애) 出:훈독(나)
古:음독(고)
C. 힝딪 가지라 나고, 한 가지에 나고
枝: 훈독, '가지' 良: '라'
D. 힝딪 가자 나고 한 가지에서 나 가지고는
枝:훈독, 가지 良:'아'
E. 힝든 갖애 나고 한 가지에 나고
一: 훈독, '힝' 等: 약음독, '드' 隱: 약음독, 'ㄴ' 枝: 훈독, '갖'
良: '애' (갖+애→가재-'가지에'란 뜻)
A. 去奴隱處毛冬乎丁(거노은처모동호정)
B. 가논 곧 모딪온뎌 가는 곳 모르는구나
去:훈독(가) 奴:음독(노) 隱:음독(ㄴ) 處:훈독(곧) 毛:음독(모) 冬:음독(딪) 乎:(온) 丁:음독(뎌)
C. 가논 곧 모딪온뎌. 가는 곳 모르온져
毛冬: 모딪
D. 가논 곧 모딪론뎡 (어찌) 가는 곳을 (서로) 모른 둥?
乎:훈독, '온'
E. 가논 곧 모딪온뎌 간 곳을 모르옴이여
A. 阿也彌陀刹良逢乎吾(아야미타찰량봉호오)
B. 아으 彌 刹애 맛보올 내 아, 미타찰에서 만날 것이니 내
阿:음독(아) 也:음독(야) 彌陀刹:한자어음독(미타찰) 良:(애) 逢:훈독(맛보) 乎:(올) 吾:훈독(내)
C. 아야 미타찰아 맛보올 나 아아, 미타찰에서 만날 나
阿也: 음독, '아야' 良: 아
D. 아으 彌 刹아 마조 나 아아! 미타찰에서 맞이하도록 나
良:'아' 逢:훈독:'맞' 乎:'오'
E. 아- 彌 刹애 맛보온 나 아- 淨土에서 만날 나
彌 刹: 한자어, 아미타불의 정토 량: '애', 처격조사로 '에서'란 뜻 맛보다(만나보다)
A. 道修良待是古如(도수량대시고여)
B. 道 닷가 기드리고다. 도 닦아 기다리리라.
道: 한자어음독(도) 修: 훈독(닷ㄱ) 良: (아) 待: 훈독(기드리) 古: 음독(고)
如: 의훈독(다)
C. 道 닷가 기드리고다 도 닦아 기다리겠노라
D. 道 닷가 기드리고다 道 닦아 기다리겠다.
修:훈독, '아' 良:'아' 待:훈독, '기드리'
E. 道 닷가 기드리고다 道를 닦아 기다리고자 하노라.
'고다' →고자 하노라
<모죽지랑가>
□ 효소왕대 죽지랑(죽만 또는 지관이라고도 한다)
제 32대 효소왕대에 죽만랑이라는 무리 가운데에 득오실(혹은 곡이라고 한다.) 급간이 있었다. 풍류황권에 이름을 올려 놓고 날마다 나오고 있었는데, 한 번은 10일 동안 보이지를 아니하였다. 죽만랑이 어머니를 불러, 그대의 아들이 어디에 있는가를 물으니 그의 어머니가 말하기를 '당전 모량부의 익선아간이 내 아들을 부산성 창직으로 임명하였으므로 빨리 가느라고 미처 인사를 못하였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낭이 말하기를 '그대의 아들이 사사로이 그곳을 갔다면 찾아볼 필요가 없겠지만 이제 공사로 갔다니 마땅히 가서 대접해야겠소.'라고 하였다. 이에 떡 한 그릇과 술 한 병을 가지고 좌인(우리말에 개질지라고 하니 이는 노복을 말한다)거느리고 찾아가니 낭의 무리 백 삼십 칠인이 의를 갖추고 뒤따랐다. 부산성에 도착하여 문지기에게 득오실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니 문지기가 대답하기를 지금 익선의 밭에서 예에 따라 부역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낭이 밭으로 찾아가서 가지고 간 술과 떡을 배불리 먹이고 익선에게 휴가를 청하여 함께 돌아가고자 하였으나 익선은 굳이 반대하고 허락을 하지 아니하였다. 그 때 사리 간진이 추화군 능절의 조 30석을 거두어 성중으로 수송하다가 낭이 선비를 중히 여기는 풍미를 아름답게 여기고, 익선의 고집불통을 비루하게 여겨 가지고 가던 조30석을 익선에게 주면서 휴가를 주도록 청하였으나 그래도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또 진절 사지의 말안장을 주니 그 때야 허락을 하였다.
조정의 화주가 이 말을 듣고 사자를 보내어 익선을 잡아다가 그 추하고 더러움을 씻어 주려고 하니 익선이 도망하여 숨었으므로 대신 그의 맏아들을 잡아갔다. 때는 엄동의 가장 차가운 날인데 성내의 연못에서 목욕을 시켰는데 이내 얼어 죽었다. 효소왕이 그 말을 듣고 명령하기를 모량리 사람으로 벼슬을 한 사람은 모두 쫓아내어 다시는 관청에 붙이지 못하게 하고 검은 옷(승의)을 입지 못하게 하였으며(중이 되지 못하게 하였다), 만일 중이 된 자라도 종을 치고 북을 울리는 절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칙사가 간진의 자손을 올려서 평정호손으로 삼고 남달리 표창하였다. 이때 원측법사가 해동의 고승이었으나 모량리 사람인 까닭으로 승직을 주지 않았다.
처음에 술종공이 삭주도독사가 되어 그의 임지로 가는데, 이때에 삼한에 병란이 있었으므로 기병 삼천명으로 그를 호송하게 하였다. 행렬이 죽지령에 이르자 한 거사가 그 고개길을 닦고 있었다. 공이 그것을 보고 매우 탄미하자 거사 또한 공의 위세가 매우 놀라운 것을 보고 좋게 여겨 서로 감동한 바가 있었다. 공이 고을의 임소에 부임한지 한 달이 되었다. 꿈에 거사가 방에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의 아내도 같은 꿈을 꾸었으므로 더욱 놀라고 괴이하게 여겨 다음날 사람을 시켜 거사의 안부를 물으니 그곳 사람들이 "거사는 죽은 지 며칠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사자가 돌아와서 그 사실을 고하니 그가 죽은 날이 꿈을 꾸었던 날과 같은 날이었다. 공이 말하기를 '아마 거사는 우리집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하였다. 공은 다시 군사를 보내어 고개 위 북쪽 봉우리에 장사를 지내게 하고, 돌로 미륵을 하나 만들어 무덤 앞에 세워놓았다.
공의 아내는 꿈을 꾼 날로부터 태기가 있어 아이를 낳으니 그러한 이유로 이름을 죽지라고 하였다. 죽지랑이 커서 벼슬을 하게 되어 유신공과 함께 부수가 되어 삼한을 통일했다. 진덕,태종,문무,신문의 4대에 걸쳐 재상이 되어 이 나라를 안정시켰다. 처음에 득오곡이 죽만랑을 사모하여 노래를 지어 부르니 다음과 같다.
去隱春皆理米
毛冬居叱沙哭屋尸以憂音
阿冬音乃叱好支賜烏隱
史年數就音墮支行齊
目煙廻於尸七史伊衣
逢烏支惡知作乎下是
郞也慕理尸心未 行乎尸道尸
蓬次叱巷中宿尸夜音有叱下是
<양주동 교수 풀이>
간봄 그리매
모딪 것힝 우리 시름
아링 나토샤온
즈힝 살쯔 디니져
눈 돌칠 싶이예
맛보잎디 지힝리
郞이여 그릴 밑힝밑녀올길
다봐 밑힝힝 잘밤 이시리
간 봄 그리워
모든 것은 울며 시름하는데
아름다움 나타내신
얼굴에 주름살이 지니
눈 돌이킬 사이에
만나뵙도록 되리라
낭이여 그리운 마음 가는 길
다복쑥 구렁에 잘 밤 있으랴
古:음독(고)
C. 힝딪 가지라 나고, 한 가지에 나고
枝: 훈독, '가지' 良: '라'
D. 힝딪 가자 나고 한 가지에서 나 가지고는
枝:훈독, 가지 良:'아'
E. 힝든 갖애 나고 한 가지에 나고
一: 훈독, '힝' 等: 약음독, '드' 隱: 약음독, 'ㄴ' 枝: 훈독, '갖'
良: '애' (갖+애→가재-'가지에'란 뜻)
A. 去奴隱處毛冬乎丁(거노은처모동호정)
B. 가논 곧 모딪온뎌 가는 곳 모르는구나
去:훈독(가) 奴:음독(노) 隱:음독(ㄴ) 處:훈독(곧) 毛:음독(모) 冬:음독(딪) 乎:(온) 丁:음독(뎌)
C. 가논 곧 모딪온뎌. 가는 곳 모르온져
毛冬: 모딪
D. 가논 곧 모딪론뎡 (어찌) 가는 곳을 (서로) 모른 둥?
乎:훈독, '온'
E. 가논 곧 모딪온뎌 간 곳을 모르옴이여
A. 阿也彌陀刹良逢乎吾(아야미타찰량봉호오)
B. 아으 彌 刹애 맛보올 내 아, 미타찰에서 만날 것이니 내
阿:음독(아) 也:음독(야) 彌陀刹:한자어음독(미타찰) 良:(애) 逢:훈독(맛보) 乎:(올) 吾:훈독(내)
C. 아야 미타찰아 맛보올 나 아아, 미타찰에서 만날 나
阿也: 음독, '아야' 良: 아
D. 아으 彌 刹아 마조 나 아아! 미타찰에서 맞이하도록 나
良:'아' 逢:훈독:'맞' 乎:'오'
E. 아- 彌 刹애 맛보온 나 아- 淨土에서 만날 나
彌 刹: 한자어, 아미타불의 정토 량: '애', 처격조사로 '에서'란 뜻 맛보다(만나보다)
A. 道修良待是古如(도수량대시고여)
B. 道 닷가 기드리고다. 도 닦아 기다리리라.
道: 한자어음독(도) 修: 훈독(닷ㄱ) 良: (아) 待: 훈독(기드리) 古: 음독(고)
如: 의훈독(다)
C. 道 닷가 기드리고다 도 닦아 기다리겠노라
D. 道 닷가 기드리고다 道 닦아 기다리겠다.
修:훈독, '아' 良:'아' 待:훈독, '기드리'
E. 道 닷가 기드리고다 道를 닦아 기다리고자 하노라.
'고다' →고자 하노라
<모죽지랑가>
□ 효소왕대 죽지랑(죽만 또는 지관이라고도 한다)
제 32대 효소왕대에 죽만랑이라는 무리 가운데에 득오실(혹은 곡이라고 한다.) 급간이 있었다. 풍류황권에 이름을 올려 놓고 날마다 나오고 있었는데, 한 번은 10일 동안 보이지를 아니하였다. 죽만랑이 어머니를 불러, 그대의 아들이 어디에 있는가를 물으니 그의 어머니가 말하기를 '당전 모량부의 익선아간이 내 아들을 부산성 창직으로 임명하였으므로 빨리 가느라고 미처 인사를 못하였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낭이 말하기를 '그대의 아들이 사사로이 그곳을 갔다면 찾아볼 필요가 없겠지만 이제 공사로 갔다니 마땅히 가서 대접해야겠소.'라고 하였다. 이에 떡 한 그릇과 술 한 병을 가지고 좌인(우리말에 개질지라고 하니 이는 노복을 말한다)거느리고 찾아가니 낭의 무리 백 삼십 칠인이 의를 갖추고 뒤따랐다. 부산성에 도착하여 문지기에게 득오실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니 문지기가 대답하기를 지금 익선의 밭에서 예에 따라 부역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낭이 밭으로 찾아가서 가지고 간 술과 떡을 배불리 먹이고 익선에게 휴가를 청하여 함께 돌아가고자 하였으나 익선은 굳이 반대하고 허락을 하지 아니하였다. 그 때 사리 간진이 추화군 능절의 조 30석을 거두어 성중으로 수송하다가 낭이 선비를 중히 여기는 풍미를 아름답게 여기고, 익선의 고집불통을 비루하게 여겨 가지고 가던 조30석을 익선에게 주면서 휴가를 주도록 청하였으나 그래도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또 진절 사지의 말안장을 주니 그 때야 허락을 하였다.
조정의 화주가 이 말을 듣고 사자를 보내어 익선을 잡아다가 그 추하고 더러움을 씻어 주려고 하니 익선이 도망하여 숨었으므로 대신 그의 맏아들을 잡아갔다. 때는 엄동의 가장 차가운 날인데 성내의 연못에서 목욕을 시켰는데 이내 얼어 죽었다. 효소왕이 그 말을 듣고 명령하기를 모량리 사람으로 벼슬을 한 사람은 모두 쫓아내어 다시는 관청에 붙이지 못하게 하고 검은 옷(승의)을 입지 못하게 하였으며(중이 되지 못하게 하였다), 만일 중이 된 자라도 종을 치고 북을 울리는 절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칙사가 간진의 자손을 올려서 평정호손으로 삼고 남달리 표창하였다. 이때 원측법사가 해동의 고승이었으나 모량리 사람인 까닭으로 승직을 주지 않았다.
처음에 술종공이 삭주도독사가 되어 그의 임지로 가는데, 이때에 삼한에 병란이 있었으므로 기병 삼천명으로 그를 호송하게 하였다. 행렬이 죽지령에 이르자 한 거사가 그 고개길을 닦고 있었다. 공이 그것을 보고 매우 탄미하자 거사 또한 공의 위세가 매우 놀라운 것을 보고 좋게 여겨 서로 감동한 바가 있었다. 공이 고을의 임소에 부임한지 한 달이 되었다. 꿈에 거사가 방에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의 아내도 같은 꿈을 꾸었으므로 더욱 놀라고 괴이하게 여겨 다음날 사람을 시켜 거사의 안부를 물으니 그곳 사람들이 "거사는 죽은 지 며칠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사자가 돌아와서 그 사실을 고하니 그가 죽은 날이 꿈을 꾸었던 날과 같은 날이었다. 공이 말하기를 '아마 거사는 우리집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하였다. 공은 다시 군사를 보내어 고개 위 북쪽 봉우리에 장사를 지내게 하고, 돌로 미륵을 하나 만들어 무덤 앞에 세워놓았다.
공의 아내는 꿈을 꾼 날로부터 태기가 있어 아이를 낳으니 그러한 이유로 이름을 죽지라고 하였다. 죽지랑이 커서 벼슬을 하게 되어 유신공과 함께 부수가 되어 삼한을 통일했다. 진덕,태종,문무,신문의 4대에 걸쳐 재상이 되어 이 나라를 안정시켰다. 처음에 득오곡이 죽만랑을 사모하여 노래를 지어 부르니 다음과 같다.
去隱春皆理米
毛冬居叱沙哭屋尸以憂音
阿冬音乃叱好支賜烏隱
史年數就音墮支行齊
目煙廻於尸七史伊衣
逢烏支惡知作乎下是
郞也慕理尸心未 行乎尸道尸
蓬次叱巷中宿尸夜音有叱下是
<양주동 교수 풀이>
간봄 그리매
모딪 것힝 우리 시름
아링 나토샤온
즈힝 살쯔 디니져
눈 돌칠 싶이예
맛보잎디 지힝리
郞이여 그릴 밑힝밑녀올길
다봐 밑힝힝 잘밤 이시리
간 봄 그리워
모든 것은 울며 시름하는데
아름다움 나타내신
얼굴에 주름살이 지니
눈 돌이킬 사이에
만나뵙도록 되리라
낭이여 그리운 마음 가는 길
다복쑥 구렁에 잘 밤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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