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생애및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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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1.마르크스의 생애(1818 ∼1883)

Ⅱ. 본론

1.형성배경
(1) 시대적 배경
(2) 이론적 배경

2. 이념체계
(1). 자본주의의 붕괴
(2). 프롤레타리아 혁명
1) 사적 유물론
2) 계급 투쟁론
3) 전위당론 - 계급의식 중시
(3) 공산주의 도래
1) 과도기 단계
2) 완성된 공산주의 단계

3. 확산

Ⅲ. 결론
1. 마르크스 비판
(1)다른 분야에의 비판
(2)이념체계의 비판

본문내용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 물론 현대자본주의도 나름대로의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문제점이 공산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자본주의의 붕괴 조짐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1989-91년 동안에 동구와 소련의 공산주의가 도래할 것이라는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의 허구성을 역설적으로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과연 일어났는가? 공산주의는 단순히 과학을 지향하는 경제이론이 아니다. 그것을 항시 경제분석, 즉 변증법의 개관적 측면을 그것의 주체적 측면, 다시 말해서 인간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정치적으로 의식하고 공산주의의 산고를 단축시키는 계급과 당 그리고 혁명의 개념과 연결시켰다. 그러나 이미 지적했듯이 자본주의의 자기수정으로 말미암아 마르크스주의자들 중에서도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독일 사회민주주의자 베른슈타인을 비롯한 수정주의자들에 의해 자본주의 변질론이 통용되었고, 이에 따라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독재를 부정하고 의회를 통한 점진적 개혁의 길을 모색하는 수정주의적 해석을 낳게 되었다.
1848년 『공산당 선언』에서 마르크스는 만일 노동자가 잃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쇠사슬뿐이라고 공언했으나 이제 노동계급은 잃어버릴 것을 어느 정도 소유함으로써 더 이상 혁명계급이기를 거부한다. 또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동질성이 민족적 이질성을 초월할 것이라는 공산주의의 기대도 1차 대전 당시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보다는 조국수호를 선택함으로써 여지없이 무너진 것이다.
더욱이 자본축적의 결과는 마르크스가 예상한 산업예비군의 증가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서비스산업의 발전을 촉진시킴으로써 노동수요를 증대시켰다. 따라서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산업노동계급의 전체 인구에 대한 비율은 점차 감소하고 있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자본계급과 노동계급으로 사회계급이 양극화되어 간다는 마르크스의 주장과는 달리 중간계급의 증대를 의미하는 것이다. 특히 화이트칼라로 불리는 정신노동자들의 급속한 증가로 확대된 중간계급은 혁명적 사회 변혁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중요성을 가진다.
실제로 마르크스가 우선적으로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던 서구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성공한 경우는 전무하다. 오히려 그곳에서는 마르크스가 19세기에 목격했던 초기 자본주의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복지국가가 들어서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 한번의 혁명을 통해서 급격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민주적 개혁을 통해 점진적으로 실현 된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가 확립된 현대 자본주의국가에 대해서도 점진적 개혁의 가능성을 교조적으로 부정하려는 공산주의가 깊이 새겨야 할 역사적 교훈인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현대 자본주의국가에서 제도적 권력장치를 프롤레타리아가 폭력에 의해 전복시킨다는 것은 총선거에 의한 민주적 정권교체를 실현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더욱 근본적인 회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반드시 수반될 사회적 고통과 비용보다도 과연 혁명에 의해 얻게 될 공산주의사회에서의 궁극적 선이 더욱 큰 것인가를 확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혁명론은 레닌의 러시아혁명이래 후진국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도입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인 것은 그러한 곳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러시아에서는 레닌이 제일 먼저 직면했던 문제이다. 이런 문제는 중국에서도 제기되어 모택동은 프롤레타리아트보다도 농민을 혁명계급으로 내세웠다. 그런데도 프롤레타리아트는 가장 혁명적인 계급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만약 혁명이 중국에서처럼 프롤레타리아트가 없어도 성공할 수 있다면 혁명 이후 프롤레타리아트를 창출하는 데 많은 노력이 경주되어야한다. 물론 이것은 어디서나 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다수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없다면 산업화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혁명론이 프롤레타리아트가 존재하지 않은 곳에서도 도입되고 있지만 이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셋째로 공산주의 사회는 도래했는가? 공산주의 사회가 진정으로 계급 없는 사회가 될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왜냐하면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들에서의 역사적 경험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실질적으로 수행했던 당과 국가의 관료들이 그들의 권력을 남용할 새로운 지배계급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지배계급이 노동계급의 이름으로 실시한 사회전반에 대한 독재가 결국에는 노동계급에 대한 독재를 의미하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소멸하기는커녕 더욱 강력해졌다. 더욱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일시적 과도기에 그칠 것이라는 원래의 약속과는 달리 점차 장기화되고, 이에 따라 완성된 공산주의에 대한 약속은 더욱 멀어져 갔다. 더욱이 그 약속은 그것이 미처 실현되기도 전에 공산국가 중에서도 선진국이었던 소련과 동구의 공산주의가 자체적으로 붕괴함으로써 영원한 유토피아로 남게 되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가장한 당과 국가의 관료들에 의한 전체주의적 독재는 생산수단의 전면적 국유화와 계획경제를 실시함으로써 촉진되었다. 이로써 공산주의국가는 정치권력뿐만 아니라 경제권력까지 독전할 수 있었으나, 전면적 국유화와 계획경제는 자본주의의 병폐를 치유하기는커녕 오히려 시장원리의 부재로 인해 공산주의 경제의 효율성을 저하시켰다. 다시 말해 공산주의 국가는 시장실패를 치유하려다가 정치적 자유와 경제성 효율성을 감소시키는 국가의 실패를 초래함으로써 결국 개혁과 붕괴를 맞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공산주의의 비 과학성은 본시 그것이 마이어(A.G.Mayer)가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적절히 지적했듯이 단지 우주 또는 사회의 본질에 대한 일련의 과학적 명제들이 아니라, 과학적 포부와 급진적 현실비판 그리고 진보에 대한 신앙의 세 가지 요소를 결합하고 있는 혁명적 이데올로기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공산주의는 한편에서는 자본주의의 붕괴와 도래의 과학적 법칙을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실천을 촉구함으로써 이론과 실천의 통합을 시도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공산주의는 자신의 이념을 과학으로 신봉한 나머지 그와는 상이한 방향으로 전개된 역사의 흐름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데 장애를 일으켜 스스로 붕괴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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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07.19
  • 저작시기20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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