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속장경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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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속장경

2. 의천
→교장도감
→속장경

3. 대장경 조조

4. 고려는 대장경을 왜 만들었을까?

본문내용

행한 것이다. 의천은 이 일에 일찍부터 뜻을 두어, 국내는 물론 송, 요, 일본에까지 널리 불서를 모았고, 그것들을 간행하기에 앞서 그 목록인 <신편제종교장총록>을 만들었다. 또, 그는 흥왕사에 교장도감을 설치하고, 4700 여권의 불서 목록에 따라 간행하여 숙종 6년에 속장경을 완성하였다. 이 속장경 역시 몽고군의 침입으로 인하여 흥왕사에서 소실되었다. 지금은 속장경의 인본이 역시 일부 전해지고 있다.
몽고의 침입을 당한 고려 조정은 강화도에서 다시 대장경을 제작하게 되는데, 이것이 오늘날 해인사에 남아 전해오는 8만 대장경이다. 이 8만 대장경의 판각 사업은 고종 23년(1236)에 착수하여 16년이 걸려 고종 38년(1251)에 완성되었다. 경판 수 81,000여 매에 달하는 이 대장경판은, 글자체의 아름다움과 목판 제작의 정교함과 내용의 정확성에서 대단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대장경의 조판은 불력(佛力)에 의해 국난을 극복하고자하여 호국의 염원과 이를 구심점으로 하여 백성들의 단합을 꾀하여 항몽 투쟁을 계속하고자 한 정치적 목적이 결부되어 이룩된 사업으로서, 고려인들의 높은 문화 의식과 민족 의식이 바탕이 되어 가능했던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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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4페이지
  • 등록일2004.06.12
  • 저작시기2004.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55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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