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를 따라 살게 되면 영원한 멸망을 경험하게 될 것이고 성령을 따라 살아가면 영원한 생명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9-10절은 다시 공동체 내에서 상호간에 선한 일을 해야 할 책임을 거론한다. 신자 개인의 책임은 다른 사람들을 향한 그의 책임과 내면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왜냐하면 성령의 밭에다 뿌리고 그 결과를 거두는 신자 개인의 생활 속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는 삶에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10절에서 선한 일을 해야 할 대상들을 보편화 시킨다. 바울은 그 권면에 착한 일을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하라는 진술을 덧붙인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교회의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5:26-6;10의 다양한 경구들은 성령을 좇아 행하라는 핵심적 윤리 교훈을 구체적으로 예증하고 설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섹션의 주요 경구들은 성령의 주요 열매들을 구체적인 상황을 실례로 들어 실천적으로 예증하는 기능을 갖는다.
결론적 훈계와 축도(6:11-18)
갈라디아서의 결론 부분은 바울이 이전에 유대주의자들의 위협과 관련해서 논의할 세 까지 문제들을 부각시켜 준다. 첫째로, 유대주의자들이 갈라디아 인들에게 할례를 요구했던 실재의 내면적 동기들을 밝혀주고 둘째로, 바울이 전하는 십자가 복음의 중심성을 확립해 주며 셋째로, 그리스도인들이 취하여야 할 마땅한 삶의 유형들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에게 평강을 비는 축도문과 자신을 괴롭히는 유대주의자들에 대한 경고하는 진술과 갈라디아 독자들에게 은혜를 비는 축도가 뒤따른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는 바울 복음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이며 그것을 특징화 하는 지표이다. 십자가 사건은 할례와 율법이 지배하던 옛 세상 질서를 폐지시키고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존재 양식과 삶의 유형을 확립해 놓은 신적사건이었다.
바울 신학의 중심 메세지
갈라디아서 전반부에 등장하는 바울의 신학적 변증과 후반부의 바울의 윤리적 권면을 통해 독자들에게 신학적인 면과 윤리(실천)적인 면이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증거 한다.
사도바울은 그의 사도직을 변호하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언급해 했고, 그의 사도직은 인간에게서 받은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다메섹 도상에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친히 그에게 사도직을 수여하셨고 선포하셨다.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현은 그의 복음과 사도직의 출처의 기원이며, 후자와 전자는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계속해서 사도바울은 유대주의적 선동자들에 의해 평가 절하되고 있는 십자가 사건의 신적인 의미를 부각시킨다. 사도바울은 계속적으로 바울의 은총의 복음과, 구원을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는다는 유대주의자들의 신학과 대조한다. 선동자들에 의해 가중된 혼란을 겪게 된 갈라디아 교회의 위기는 바울로 하여금 다른 복음은 없고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 밖에 없음을 강조하도록 만들었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의 논지는 '율법의 행위'라는 것으로 분명히 드러나는데, 이것은 바울의 율법관을 이해하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통해 이야기하는 것은 이방인들에게 율법이 아무런 소용이 없는 무용지물이라는 것이 아니다.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 이전에 하나님이 주신 약속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이다. 율법의 행위는 유대인들을 언약 백성으로 확인시켜 주고, 여호와의 언약 안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고 그 속에는 음식법과 할례가 포함된다. 바울이 비난하는 것은 '율법' 자체가 아니라 율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율법의 행위'로만 의롭다함을 받으려고 하는 유대인들과 갈라디아 사람들이었다.
바울은 일관성과 통일성을 가지고 율법 본래의 의미와 목적을 설명하고 율법과 언약, 그리고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관계를 바로 규정하고 있다. 바울은 언약과 율법을 대조시키고 율법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밖으로 드러내고 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없음을 밝힌다. 이러한 바울의 주장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유대주의자들의 생각을 허물고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언약 안에 있는 모든 열방이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율법과 관계없이 약속에 근거하여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갈라디아 교회에 있는 이들이 하나님의 자손임을 말한다.
율법은 우리를 언약 안에 머물게 하고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그 역할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말미암아 종결되었다. 그러나 율법에는 하나님의 의와 뜻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지금도 우리에게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율법은 처음부터 이방인들을 울타리 밖으로 내몰지 않았다. 그리고 율법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율법이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주어졌으므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별한 것이지 이방인들에게 배타성을 준 것은 아니다. 이는 구약의 내용을 통해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 즉 보편적인 언약과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주신 언약, 즉 민족적 언약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 사건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는 바울 복음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이며 그것을 특징화하는 지표이다. 바로 십자가 사건은 아브라함의 가족의 재해석을 통하여 할례와 율법이 지배하던 시내 산 언약의 질서를 폐지시키고, 성령을 좇아 행하는 새로운 삶의 유형을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할례와 율법으로 특징짓는 옛 삶의 유형들이 아니라 믿음과 성령으로 특징지어진 새로운 삶의 유형들을 나타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영위하는 자유의 삶은 할례나 율법 준수와 같은 인간적인 종교적 행위 유형들에 의해 특징화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성령'의 신적인 행위 유형들에 의해 특징화된다. 믿음을 좇아 성령에 순종하는 삶이 참된 자유로 나아가는 삶인 것이다.
갈라디아서는 역사적으로 기독교사상과 선포 그리고 기독교적 삶의 행습을 이해할 수 있는 근본적인 기초 역할을 해 왔다. 따라서 오늘 우리 시대에도 갈라디아서의 메시지는 살아 숨쉬는 역동적인 메시지들이 될 수 있고, 그것을 이해할 때만 적어도 바울의 근본적인 정신을 이해했다고 할 수 있다.
9-10절은 다시 공동체 내에서 상호간에 선한 일을 해야 할 책임을 거론한다. 신자 개인의 책임은 다른 사람들을 향한 그의 책임과 내면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왜냐하면 성령의 밭에다 뿌리고 그 결과를 거두는 신자 개인의 생활 속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는 삶에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10절에서 선한 일을 해야 할 대상들을 보편화 시킨다. 바울은 그 권면에 착한 일을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하라는 진술을 덧붙인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교회의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5:26-6;10의 다양한 경구들은 성령을 좇아 행하라는 핵심적 윤리 교훈을 구체적으로 예증하고 설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섹션의 주요 경구들은 성령의 주요 열매들을 구체적인 상황을 실례로 들어 실천적으로 예증하는 기능을 갖는다.
결론적 훈계와 축도(6:11-18)
갈라디아서의 결론 부분은 바울이 이전에 유대주의자들의 위협과 관련해서 논의할 세 까지 문제들을 부각시켜 준다. 첫째로, 유대주의자들이 갈라디아 인들에게 할례를 요구했던 실재의 내면적 동기들을 밝혀주고 둘째로, 바울이 전하는 십자가 복음의 중심성을 확립해 주며 셋째로, 그리스도인들이 취하여야 할 마땅한 삶의 유형들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에게 평강을 비는 축도문과 자신을 괴롭히는 유대주의자들에 대한 경고하는 진술과 갈라디아 독자들에게 은혜를 비는 축도가 뒤따른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는 바울 복음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이며 그것을 특징화 하는 지표이다. 십자가 사건은 할례와 율법이 지배하던 옛 세상 질서를 폐지시키고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존재 양식과 삶의 유형을 확립해 놓은 신적사건이었다.
바울 신학의 중심 메세지
갈라디아서 전반부에 등장하는 바울의 신학적 변증과 후반부의 바울의 윤리적 권면을 통해 독자들에게 신학적인 면과 윤리(실천)적인 면이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증거 한다.
사도바울은 그의 사도직을 변호하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언급해 했고, 그의 사도직은 인간에게서 받은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다메섹 도상에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친히 그에게 사도직을 수여하셨고 선포하셨다.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현은 그의 복음과 사도직의 출처의 기원이며, 후자와 전자는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계속해서 사도바울은 유대주의적 선동자들에 의해 평가 절하되고 있는 십자가 사건의 신적인 의미를 부각시킨다. 사도바울은 계속적으로 바울의 은총의 복음과, 구원을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는다는 유대주의자들의 신학과 대조한다. 선동자들에 의해 가중된 혼란을 겪게 된 갈라디아 교회의 위기는 바울로 하여금 다른 복음은 없고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 밖에 없음을 강조하도록 만들었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의 논지는 '율법의 행위'라는 것으로 분명히 드러나는데, 이것은 바울의 율법관을 이해하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통해 이야기하는 것은 이방인들에게 율법이 아무런 소용이 없는 무용지물이라는 것이 아니다.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 이전에 하나님이 주신 약속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이다. 율법의 행위는 유대인들을 언약 백성으로 확인시켜 주고, 여호와의 언약 안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고 그 속에는 음식법과 할례가 포함된다. 바울이 비난하는 것은 '율법' 자체가 아니라 율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율법의 행위'로만 의롭다함을 받으려고 하는 유대인들과 갈라디아 사람들이었다.
바울은 일관성과 통일성을 가지고 율법 본래의 의미와 목적을 설명하고 율법과 언약, 그리고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관계를 바로 규정하고 있다. 바울은 언약과 율법을 대조시키고 율법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밖으로 드러내고 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없음을 밝힌다. 이러한 바울의 주장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유대주의자들의 생각을 허물고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언약 안에 있는 모든 열방이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율법과 관계없이 약속에 근거하여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갈라디아 교회에 있는 이들이 하나님의 자손임을 말한다.
율법은 우리를 언약 안에 머물게 하고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그 역할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말미암아 종결되었다. 그러나 율법에는 하나님의 의와 뜻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지금도 우리에게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율법은 처음부터 이방인들을 울타리 밖으로 내몰지 않았다. 그리고 율법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율법이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주어졌으므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별한 것이지 이방인들에게 배타성을 준 것은 아니다. 이는 구약의 내용을 통해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 즉 보편적인 언약과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주신 언약, 즉 민족적 언약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 사건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는 바울 복음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이며 그것을 특징화하는 지표이다. 바로 십자가 사건은 아브라함의 가족의 재해석을 통하여 할례와 율법이 지배하던 시내 산 언약의 질서를 폐지시키고, 성령을 좇아 행하는 새로운 삶의 유형을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할례와 율법으로 특징짓는 옛 삶의 유형들이 아니라 믿음과 성령으로 특징지어진 새로운 삶의 유형들을 나타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영위하는 자유의 삶은 할례나 율법 준수와 같은 인간적인 종교적 행위 유형들에 의해 특징화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성령'의 신적인 행위 유형들에 의해 특징화된다. 믿음을 좇아 성령에 순종하는 삶이 참된 자유로 나아가는 삶인 것이다.
갈라디아서는 역사적으로 기독교사상과 선포 그리고 기독교적 삶의 행습을 이해할 수 있는 근본적인 기초 역할을 해 왔다. 따라서 오늘 우리 시대에도 갈라디아서의 메시지는 살아 숨쉬는 역동적인 메시지들이 될 수 있고, 그것을 이해할 때만 적어도 바울의 근본적인 정신을 이해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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