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학교의 역사
1. 외국의 학교 역사
2. 한국의 학교 역사
Ⅱ. 학교에 대한 학문이론적 관점
1. 조직이론적 관점
2. 체계이론적 관점
3. 인간학적 관점
4. 상호이론적 관점
Ⅲ. 성적에 대한 교육학적 문제
1. 외국의 학교 역사
2. 한국의 학교 역사
Ⅱ. 학교에 대한 학문이론적 관점
1. 조직이론적 관점
2. 체계이론적 관점
3. 인간학적 관점
4. 상호이론적 관점
Ⅲ. 성적에 대한 교육학적 문제
본문내용
하여금 만성적인 불안의 지속상태로 몰고 가서 오히려 학업성취의 정도를 저하시킬 가능성도 있다.
실패의 예측→불안→불안 해소를 위한 반응으로 연결되는 학습동기의 기제는 적어도 논리적으로 문제를 지니고 있다. 즉, 이와 같은 논리의 전제조건은 실패의 예측에 있다. 실패를 예측하기 때문에 그 실패를 모면하기 위해서만 학습행동이 강화되는 논리는 실패와는 전혀 관계없는 자발적인 노력이나 학습현상을 설명해 주지 못한다. 예술가는 흔히 실패가 두려워서도 아니고 타인과의 경쟁에 뒤쫓겨서도 아닌 보다 높은 수준의 미의 추구와 자기 완성을 위하여 장기간에 걸친 정진에 몸을 바치기도 하는 것이다. 결국 학교에서의 너무 잦은 시험과 불안의 강요는 시험이 아니면 자기 스스로는 공부할 줄 모르는 학생을 길러줄 위험이 있다는 점도 깊이 고려해야 한다.
3) 숫자는 언제나 정확하다는 믿음.
우리는 어떤 현상을 설명하고자 할 때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숫자로 나타내면 훨씬 더 정확하고 믿을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생각은 많은 경우 사실이지만, 숫자로만 표현되면 모든 것이 분명하고 확실해진다는 믿음은 언제나 진리만은 아니다. 이러한 믿음은 흔히 수학이나 숫자 자체가 갖는 논리적 완벽성에 기초하고 있는 것 같다. 수학은 그 성질상 경험적인 세계와는 관계없이 자체의 논리적인 관계에 의해 구성되는 학문이라 여겨진다. 수학의 한 명제는 그것이 경험적으로 사실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주어진 공리에 비추어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으면 언제나 진인 것이다. 수학의 세계에서는 100은 언제나 99보다 크며, 또한 정확히 50의 두 배가되는 것이다.
그러나 수학에서 숫자가 갖는 이러한 정확성과 완벽성이 곧 사실적인 경험세계의 정확성과 완전성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어느 학생의 신장을 재어보니 160cm라고 하면, 이때의 160이라는 숫자는 그 학생의 키가 정확히 160cm라는 것이 아니라, 통계적인 용어를 빌리면 160을 중심으로 일정한 정확한계 안에 있을 가능성을 말해 주는 것이다. 우리가 시험성적에서 흔히 쓰는 숫자를 생각해 보자. 예컨대, 영희가 국어시험에서 80점이라는 점수를 받았다고 할 때, 그 숫자가 실제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80점을 받은 영희는 79점을 받은 철수보다 국어에 있어서의 능력이 높다고 말할 수 있는가? 80점을 받은 영희는 40점을 받은 숙희보다 두 배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만일 80점의 국어점수가 60점의 수학점수를 더하여 70점이라는 평균을 얻었을 때, 70이라는 숫자는 어떤 능력을 의미하는가? 교육평가의 분야에서 사용되는 숫자라는 것이 얼핏 보더라도 수학에서 사용되는 숫자는 물론 자연과학에서 의미하는 숫자와도 상당히 다른 성질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육에서 사용되는 숫자는 그것이 갖는 수학적인 결함 때문에 일반적인 수학의 논리에 따라 조작하고 해석하는 데에는 상당한 제한점이 따른다. 교육의 모든 것이 숫자로 표현되어질 때, 사실상 의미없는 차이가 과장되어 나타날 수 있고, 서로 비교될 수 없는 다른 속성이 한 가지 척도 위에 서열지어 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결코 시험성적에서 숫자가 필요없다거나 교육통계의 무의미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험성적과 관련해서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숫자에 대한 지나친 맹신을 반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4) 객관식 시험만이 신뢰롭다는 믿음
학생을 평가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객관성이며, 이러한 객관성은 검사의 문항을 객관식, 즉 선택형으로 출제함으로써만이 유지될 수 있다고 하는 생각은 학교 현장에 상당히 널리 퍼져 있는 믿음인 것 같다. 심지어는 주관과 객관에 대한 의미가 고착화되어 객관적인 것은 좋고 주관적인 것은 나쁜 것으로 일반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본다면, 객관적이라는 것이 항상 옳다거나 신뢰롭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객관적이면서 옳지 않을 수 있고, 주관적이지만 옳을 수도 있다. 또한 평가가 진정으로 객관적이냐 주관적이냐 하는 것은 문항의 형식이나 측정된 재수가 아니라 평가자가 가치판단에 있어 독단과 편견을 얼마나 극복하였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교육평가에 있어 객관성보다 더욱 주요한 것은 검사의 신뢰성과 타당성이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측정한다 하더라도 정말 재고자 하는 것을 정확히 잴 수 없다면 우리는 그 결과를 믿을 수 없다. 비록 주관적인 판단의 결과라 하더라도 평가하고자 하는 속성의 본질을 정확히 보았다면 그 평가의 결과는 모다 타당하고 신뢰로운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교사가 한 학생을 1년 간의 계속적인 관찰과 대화를 토대로 하여 내린 판단과 1시간에 이루어진 20~30문항의 객관식 검사 결과 얻어진 점수는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정보와 의미에 있어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험 성적을 낼 때, 객관식 검사만 실시하면 평가자의 주관이 완전히 배제될 정도로 엄정하고 신뢰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이것은 지나치게 소박한 그릇된 믿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5) 시험성적의 결과는 학생의 책임이라는 믿음.
시험의 결과 어느 학생이 기대했던 것보다 낮은 점수를 받게 되면, 우리는 그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음을 꾸짖는다. 즉, 학생이 시험에서 나쁜 점수를 받게 된 까닭은 오직 학생 자신이 열심히 노력하지 않은 탓으로 여기며, 결코 교사가 나쁜 점수를 받도록 가르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시험의 결과는 언제나 배우는 학생의 책임일 뿐 가르치는 교사의 책임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다. 간혹 자기 자녀의 학업성적을 제대로 올려주지 못하는 가정교사의 책임을 따지는 학부모들도 학교교육에 관한 한 자녀의 성적은 오직 자녀 자신만의 책임으로 여긴다. 교사야 어떻게 가르치든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면 평가에서 높은 성적을 얻게 되고, 자기가 공부를 안하면 나쁜 성적을 얻게 된다는 믿음은 결국 평가의 결과가 교사의 가르치는 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생각으로 발전되며, 이러한 평가를 통하여 가르치는 일을 반성하고 개선한다는 논리는 처음부터 성립되기 어렵다.
실패의 예측→불안→불안 해소를 위한 반응으로 연결되는 학습동기의 기제는 적어도 논리적으로 문제를 지니고 있다. 즉, 이와 같은 논리의 전제조건은 실패의 예측에 있다. 실패를 예측하기 때문에 그 실패를 모면하기 위해서만 학습행동이 강화되는 논리는 실패와는 전혀 관계없는 자발적인 노력이나 학습현상을 설명해 주지 못한다. 예술가는 흔히 실패가 두려워서도 아니고 타인과의 경쟁에 뒤쫓겨서도 아닌 보다 높은 수준의 미의 추구와 자기 완성을 위하여 장기간에 걸친 정진에 몸을 바치기도 하는 것이다. 결국 학교에서의 너무 잦은 시험과 불안의 강요는 시험이 아니면 자기 스스로는 공부할 줄 모르는 학생을 길러줄 위험이 있다는 점도 깊이 고려해야 한다.
3) 숫자는 언제나 정확하다는 믿음.
우리는 어떤 현상을 설명하고자 할 때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숫자로 나타내면 훨씬 더 정확하고 믿을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생각은 많은 경우 사실이지만, 숫자로만 표현되면 모든 것이 분명하고 확실해진다는 믿음은 언제나 진리만은 아니다. 이러한 믿음은 흔히 수학이나 숫자 자체가 갖는 논리적 완벽성에 기초하고 있는 것 같다. 수학은 그 성질상 경험적인 세계와는 관계없이 자체의 논리적인 관계에 의해 구성되는 학문이라 여겨진다. 수학의 한 명제는 그것이 경험적으로 사실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주어진 공리에 비추어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으면 언제나 진인 것이다. 수학의 세계에서는 100은 언제나 99보다 크며, 또한 정확히 50의 두 배가되는 것이다.
그러나 수학에서 숫자가 갖는 이러한 정확성과 완벽성이 곧 사실적인 경험세계의 정확성과 완전성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어느 학생의 신장을 재어보니 160cm라고 하면, 이때의 160이라는 숫자는 그 학생의 키가 정확히 160cm라는 것이 아니라, 통계적인 용어를 빌리면 160을 중심으로 일정한 정확한계 안에 있을 가능성을 말해 주는 것이다. 우리가 시험성적에서 흔히 쓰는 숫자를 생각해 보자. 예컨대, 영희가 국어시험에서 80점이라는 점수를 받았다고 할 때, 그 숫자가 실제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80점을 받은 영희는 79점을 받은 철수보다 국어에 있어서의 능력이 높다고 말할 수 있는가? 80점을 받은 영희는 40점을 받은 숙희보다 두 배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만일 80점의 국어점수가 60점의 수학점수를 더하여 70점이라는 평균을 얻었을 때, 70이라는 숫자는 어떤 능력을 의미하는가? 교육평가의 분야에서 사용되는 숫자라는 것이 얼핏 보더라도 수학에서 사용되는 숫자는 물론 자연과학에서 의미하는 숫자와도 상당히 다른 성질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육에서 사용되는 숫자는 그것이 갖는 수학적인 결함 때문에 일반적인 수학의 논리에 따라 조작하고 해석하는 데에는 상당한 제한점이 따른다. 교육의 모든 것이 숫자로 표현되어질 때, 사실상 의미없는 차이가 과장되어 나타날 수 있고, 서로 비교될 수 없는 다른 속성이 한 가지 척도 위에 서열지어 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결코 시험성적에서 숫자가 필요없다거나 교육통계의 무의미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험성적과 관련해서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숫자에 대한 지나친 맹신을 반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4) 객관식 시험만이 신뢰롭다는 믿음
학생을 평가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객관성이며, 이러한 객관성은 검사의 문항을 객관식, 즉 선택형으로 출제함으로써만이 유지될 수 있다고 하는 생각은 학교 현장에 상당히 널리 퍼져 있는 믿음인 것 같다. 심지어는 주관과 객관에 대한 의미가 고착화되어 객관적인 것은 좋고 주관적인 것은 나쁜 것으로 일반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본다면, 객관적이라는 것이 항상 옳다거나 신뢰롭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객관적이면서 옳지 않을 수 있고, 주관적이지만 옳을 수도 있다. 또한 평가가 진정으로 객관적이냐 주관적이냐 하는 것은 문항의 형식이나 측정된 재수가 아니라 평가자가 가치판단에 있어 독단과 편견을 얼마나 극복하였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교육평가에 있어 객관성보다 더욱 주요한 것은 검사의 신뢰성과 타당성이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측정한다 하더라도 정말 재고자 하는 것을 정확히 잴 수 없다면 우리는 그 결과를 믿을 수 없다. 비록 주관적인 판단의 결과라 하더라도 평가하고자 하는 속성의 본질을 정확히 보았다면 그 평가의 결과는 모다 타당하고 신뢰로운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교사가 한 학생을 1년 간의 계속적인 관찰과 대화를 토대로 하여 내린 판단과 1시간에 이루어진 20~30문항의 객관식 검사 결과 얻어진 점수는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정보와 의미에 있어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험 성적을 낼 때, 객관식 검사만 실시하면 평가자의 주관이 완전히 배제될 정도로 엄정하고 신뢰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이것은 지나치게 소박한 그릇된 믿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5) 시험성적의 결과는 학생의 책임이라는 믿음.
시험의 결과 어느 학생이 기대했던 것보다 낮은 점수를 받게 되면, 우리는 그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음을 꾸짖는다. 즉, 학생이 시험에서 나쁜 점수를 받게 된 까닭은 오직 학생 자신이 열심히 노력하지 않은 탓으로 여기며, 결코 교사가 나쁜 점수를 받도록 가르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시험의 결과는 언제나 배우는 학생의 책임일 뿐 가르치는 교사의 책임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다. 간혹 자기 자녀의 학업성적을 제대로 올려주지 못하는 가정교사의 책임을 따지는 학부모들도 학교교육에 관한 한 자녀의 성적은 오직 자녀 자신만의 책임으로 여긴다. 교사야 어떻게 가르치든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면 평가에서 높은 성적을 얻게 되고, 자기가 공부를 안하면 나쁜 성적을 얻게 된다는 믿음은 결국 평가의 결과가 교사의 가르치는 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생각으로 발전되며, 이러한 평가를 통하여 가르치는 일을 반성하고 개선한다는 논리는 처음부터 성립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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