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역사1>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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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부_이스라엘 사람들
2부_유대교

본문내용

나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와 동일한 중요성을 지닌 유대교의 또 다른 특징은 상대적으로 교리신학이 부재했다는 점이다. 기독교는 태생적으로 교리에 관한 수월치 않은 난제들을 갖고 있고 이것들은 많은 문제들을 초래하게 했는데 반해 유대교는 신학자들이 공허하게 만들어냈던 긍정적인 교리들을 피해나갔다. 예를 들어 그들은 결코 원죄의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 점은 수많은 문제들로부터 그들을 벗어나게 해 주었다. 유대인 최초의 신앙고백은 사아디아 가온(Saadiah Gaon)에 와서야 그 형식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유대교는 행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법전이 신앙고백보다 더 중요했다. 그러했기에 유일신론 다음으로 인간 삶의 보편적인 지침인 토라는 유대 신앙의 정수가 되었다.
기독교가 상당한 규모를 지닌 종교로 자리 잡게 되면서 유대인들은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되었다. 4세기 초부터 팔레스타인에서의 기독교화는 가속화되어 교회와 수도원들이 건립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4세기 말과 5세기 사이에 기독교 사회에서 거주하고 있었던 유대인들의 공공적인 권리와 특권들은 점차로 취소되었다. 이후 611년에는 페르시아의 팔레스타인 공격에 유대인들이 페르시아인들을 도왔다는 주장이 기독교인들로부터 제기되어 그들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그리고 헤라클리우스 황제가 예루살렘을 탈환했을 때 유대인들은 또다시 대량학살을 경험해야 했다. 하지만 무하마드(Muhammad)가 메카를 정복하고 모슬렘이 팔레스타인 지역과 시리아의 대부분을 장악하게 되면서 모두는 이슬람의 홍수 속으로 가라앉게 되었다. 무하마드가 만든 이슬람도 기독교처럼 유대교 내의 이질적인 운동으로 시작되었으나 결국 별개의 종교가 되었고 그 후 고유한 특징들을 바탕으로 급속하게 발전되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이슬람 세계의 확장 속에서도 자신들의 고유한 삶의 유지 장치인 탈무드와 ‘교권통치체제(Cathedocracy)’를 발전시켜나갔다.
2. 감상
유대인들처럼 ‘민족’이라는 공동체의 개념이 잘 어울리는 사람들은 없는 것 같다. 수천년에 걸친 유대인들에 대한 타민족의 압박으로부터 그들의 신앙을 고수하고 자손들에게 전수해왔고 현대 시온주의자들에 의해 다시금 약속의 땅을 탈환하게 되는 역사를 바라보게 된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유대인들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로 들어가게 되면 또다시 혼란을 초래하게 하기도 한다. 사실상 유대인들의 기원에서부터 그들을 살펴보았을 때, 그들은 떠돌던 이주자들 혹은 하층민들이 모인 그룹에서부터 시작되었고,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유일신 신앙은 다양한 생각들과 토론의 장이 가능하게 했지만 결국 그들 내부로 하나의 통합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해 외부의 침입에 무너져 전 세계로 흩어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들에게 과연 민족 혹은 공동체라는 말이 적합한 것일까. 하지만 유대인의 역사에서 초기의 야웨 신앙에서 유일신 신앙 좀 더 정확하게는 유대교로 발전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유대인들은 수천년에 걸쳐 한 집단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정립했다는 점에서 민족이라는 개념은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들은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가 밝혔던 저자 자신의 물음들에 어느 정도 답변이 되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고대의 유대인들이 믿었던 하나님이 하층민들을 대변하는, 그들을 위해 싸우는 신이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성경을 대하고 읽을 때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신앙의 출발이 모호하고 신비스러운 것이 아닌 현실적이고 사람들의 실생활과 관련이 있는 부분에서 시작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고대 근동의 지역을 일정한 국가가 없이 떠돌며 다른 국가에게 위협적인 존재였기에 일종의 욕설로 언급된 하피루(hapiru)의 지도자였던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야웨신앙은 당시 하층민들의 믿음이었던 것이다. 물론 여기에 신화적인 부분도 첨가되었겠지만 그들의 나그네와 같은 삶과, 더 나아가 이집트에서 노예생활 당시의 억압받고 지배받았던 삶에서 야웨 신은 그들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반면에 그러한 유일신 신앙에서 출발한 유대교를 믿는 이스라엘인들이 현대에는 약자가 아닌 권력을 지닌 자가 되어 타민족을 억압하고 있다는 사실이 모순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유대교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국가를 세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러한 신념으로 수세기에 걸쳐 디아스포라 생활을 청산했던 과거의 경험이 현대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있다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에 전환을 가져다주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라는 지극히 이상적인 생각도 들었다.
기독교와 유대교의 분리가 가져온 결과들. 힘을 가진 한쪽의 승리로 인한 다른 한쪽의 패배와 억압받았던 고통들. 이런 말들로 기독교와 유대교의 역사를 정리할 수 있을까. 결국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기독교인과의 차이에서 시작된 유대교와 기독교의 분리는 타협점을 찾을 수 없는 것일까. 이 책에서처럼 “만약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아니라면 기독교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며,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면 유대교는 거짓이 된다”는 그 어떤 타협도 불가능한 것일까. 나는 그 타협점을 예수의 가르침에서 찾고 싶다. 그가 당시 유대인들을 향해 꾸짖었던 주장들의 핵심이 유대 보편주의라는 점은 이 두 종교의 화해점을 찾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작고 볼품없는 팔레스타인에 관한 소유와 정착으로부터 시작된 유대인의 역사는 앗시리아나 페르시아, 로마, 몽고 등 그 어떤 제국보다도 질기고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현재까지 유지해오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역사의 배경에 유대교라는 신앙은 그러한 역사를 이어가는데 유대인들을 하나로 모으게 하는 힘이 되었다. 물론 역사를 이어나가는데 있어서 그러한 전통을 버리고 타민족에 동화되어 살아온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핍박받았던 그들의 역사 속에서 그들의 조상이 그러했던 것처럼, 약자를 위해 싸우고 결국에는 약속의 땅을 주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믿음은 실제적인 국가의 통치와 지배 속에서 유대인이라는 한 민족을 끊임없이 존속시키게 한 수많은 원인들 중 하나라는 결론을 내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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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12.22
  • 저작시기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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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29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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