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과 베트남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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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1. 베트남 전쟁의 성격과 미국의 개입

2. 베트남 전쟁에 대한 한국의 시각
(. 박정희 정권과 베트남전쟁의 의미)

3. 한국군의 베트남 전쟁 개입

4. 베트남 전쟁의 결과

5. 전쟁의 참혹함과 그늘
네이팜탄, 고엽제, 양민학살 사건

본문내용

사람의 참전군인을 소개합니다. 베트남전 당시 해병 중대장으로 1년간 최일선에서 전투를 지휘했던 김기태(65)씨. 그는 자신이 작전과정에서 체험했던 일들을 숨김없이 털어놓았습니다. 베트남전 양민학살의 진실을 추적해온 <한겨레21> 취재팀조차 의심했던 바로 그 사실들- “정말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집단사살했을까.” “설마 무고한 젖먹이나 부녀자들까지 무방비 상태에서 쏘아죽였을까.” 예비역 대령 김기태씨는 담담하게, 그리고 아주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살인교사자이자 집행관이었다.” <한겨레21>은 베트남전 종전25돌을 앞두고, 한 참전군인의 용기있는 증언을 공개합니다.
( 중략....)
<파월한국군전사>나 <해병전투사 월남편>에는 7중대가 이날 공격목표13과 14를 공격하고 5중대의 공격을 돕는 차단작전을 한 다음, 오후에 빈록(2)(Vinh Loc2) 마을쪽으로 옮겨가 치열한 야간전투를 한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김씨는 차단작전을 하기 전에 서쪽에 있는 마을 하나를 더 공격했을 거라며 기억을 더듬었다.
마을 바로 앞에 한곳으로 모여 있는 주민들, 그리고 그 옆에 우거진 사탕수수밭. 이전 마을에서 “그만 좀 죽이라”고 고함친 탓에 앞서가던 2소대와 3소대원들이 이번에는 주민들을 모아 앉혀놓은 것이다. 40∼50명쯤 됐을까. 그 주위를 부하들이 빙 둘러싸고 있었다. 이름을 물으며 아이들한테 사탕을 주거나 담배를 건네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대부분 아이들과 여자들, 노인들이었다.
“야, 그냥 보내!” 김기태 중대장은 중대본부를 뒤따라오던 화기소대에 주민들을 살려주라고 지시했다. 그리고는 소대들을 지휘하며 전진했다. 몇 걸음이나 옮겼을까. 탕!탕!탕! 드르르륵! 드르르륵! 뒤에서 총성이 요란했다. “야, 새끼들아 뭐야!” 고개를 돌리며 고함쳤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계속 이어지는 수류탄 굉음. 쾅! 쾅! 쾅! “자식들아, 뭐야?” 대답은 같았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비명소리와 신음소리가 섞여나왔다. 이미 엎어진 물. “야, 새끼들, 확실히 해!” 그가 소리쳤다. 사탕수수밭으로 달아나는 사람들도 얼핏 보였다. 중대원들은 “라 라이!”(이리와!) 하면서 달아나는 이들을 쫓아가 총을 쏘았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그냥 갈 수 없습니다. 누군가 살아 남아서 증언하게 되면 골치아픕니다. 중대장으로서는 전쟁터에서 양민학살을 하는 것이 되니까, ‘확실히 하라’고 하지요. 확인사살을 하라는 뜻입니다. 이후에 그 일에 대한 증언이나 보고가 없어 모두 죽은 걸로 압니다.”
전쟁은 모든 행위를 정당화하는가
이 증언은 중요하다. 지금까지 <한겨레21>이 만난 많은 참전군인들은 마을 주민을 ‘모아놓고’ 죽인 일은 없다고 부인해왔기 때문이다. “마을에서 저격이 날아오면 무차별 포격과 총격을 가했다”거나 “마을에서 작전중에 뛰어 달아나는 사람을 쐈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와중에 민간인도 희생됐을 것이라는 모호한 추측이었다. 그러나 김기태씨는 모아놓은 마을 주민들을 집단사살한 것이 사실임을 시인했다. “마을에 들어가 수색할 때 주민들을 한군데 모아놓습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중대장이 어떤 지시를 하느냐에 죽고 살고 합니다. ‘야, 귀찮게, 왜 모아놨어!’ 그러면 부하들이 한쪽으로 끌고 가 갈겨버리지요.” 특히 아군에 부상자나 전사자가 생겼을 때 그랬다고 했다. 꼭 “죽이라”고 명령하는 게 아니라 “귀찮다”는 중대장의 말 한마디, 얼굴 표정 하나로 부하들이 끌고 가 쏘아 죽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존자가 혹시 있을지 몰라 확인사살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디, 디’(가라) 하면서 살려 보내준 경우가 더 많았지만.
베트남전 전투현장에 갓 투입된 신병들은, 고참들이 베트콩 용의자를 잡아와 쏘라고 하면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신병도 서서히 전쟁에 익숙해진다. “대여섯살 꼬마들한테 시레이션을 까서 사탕이나 담배를 주다가 일어서서 가슴에 대고 ‘탕’ 쏴버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발로 툭 걷어차버립니다. 왜 죽였냐고 물어봤죠. ‘아, 베트콩 자식인데 나중에 애비 애미 원수갚겠다고 덤벼들지도 모르잖아요’ 그럽니다. 사람 죽여보고 묻어본 사람이라면 사람 죽이는 걸 예사로 아는 법입니다.”
전쟁에서 인간의 목숨은 얼마만한 가치를 가지는 것일까. 전쟁을 치르지 않은 사람은 전쟁을 모른다고 한다. 그렇다면 전쟁이라는 상황이 모든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일까. 이제는 ‘과거’이기에 역사에 조용히 묻어버려야 하는 것일까.
-한겨레21 3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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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2.04
  • 저작시기2006.0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36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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