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학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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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소학언해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소학언해
중국의 ≪소학 小學≫을 읽기 쉽게 하기 위하여 한글로 토를 달고 번역한 책. 6권 4책. 활자본. ≪소학언해≫는 선조의 명(命)으로 교정청에서 번역, 간행한 책이다. 현재 내사본 완질이 도산서원에 간직되어 있다.
책 첫머리에 범례가 있고, 끝에 이산해의 발문과 간행에 관여한 관원의 명단이 붙어 있어 이 책의 편찬 간행에 관한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있다. 발문은 1587년(선조 20) 4월로 되어 있고, 내사기(內賜記)는 이듬해 1월로 되어 있다. 이 교정청본의 복각본(覆刻本)이 임진 전후에 몇 차례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소학’의 번역본〕
≪소학≫의 번역은 중종 때의 ≪번역소학 潼譯小學≫이 처음이었으나, 이 번역이 너무나 의역에 흘러 선조 때에 이를 비판하고 직역을 원칙으로 한 것이 바로 ≪소학언해≫다.
≪소학≫의 이 두 번역은 우리나라에서 번역의 원칙과 방법문제가 논의된 중요한 사례로서도 주목된다. ≪소학≫은 영조 때에 와서 다시 한 번 새로 번역되어 ≪어제소학언해 御製小學諺解≫의 이름으로 간행되었다.
〔국어학적 특징 및 가치〕
≪소학언해≫는 교정청에서 간행된 다른 언해본들과 함께 16세기 말엽의 국어 자료로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종래 이런 자료를 보지 못함으로 해서 임진왜란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생각하였던 변화가 실은 그 이전에 이미 일어났음이 증명된 것이 적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戇’을 들 수 있다. 이 자음은 임진왜란을 계기로 없어졌다는 것이 통설이었으나, ≪소학언해≫는 이 책이 간행된 시기에 이미 완전히 소실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서 ‘戇’의 용례는 “복죄悧여坮”, “치운 후에坮” 등 이른바 강세의 ‘坮’에 국한되어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그런데 이 책에는 이 ‘坮’가 때로는 “고텨지라 悧여坮”, “모톤 후에아”에서와 같이 ‘坮, 아’로도 나타남을 볼 수 있다. 이 강세의 조사 이외에도 ‘戇’의 예가 더러 있으나 ‘戇’은 사실상 그 당시의 국어에서 이미 소실되었다고 결론을 내릴 수가 있다.
한편, ≪소학언해≫는 방점 표기에 있어 심한 혼란을 보여준다. 이 밖에도 중세국어와 근대국어의 중요한 차이를 이루는 여러 음운변화, 문법변화가 이 때에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점에서 ≪소학언해≫는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사실은 부동사 어미 ‘-며’가 이 책에서 간혹 ‘-먀’로 나타난다. 그리고 ‘톄(體)’의 사용이 확대되어 조격조사가 붙은 ‘톄로’의 예가 이 책에서 발견된다. 이 ‘톄로’가 ‘텨로→쳐로→처럼’과 같은 경로를 거쳐 오늘날에 이른 것이다.
〔소학의 뜻풀이〕
小 작을 소
學 배울 학
諺 속담 언
解 풀 해
언해 : 한문을 한글로 풀이함 또는 그 책
소학언해 : 소학을 한글로 풀이한 책
〔소학언해 1~4 원문 자료〕
. 무인(戊寅)년 애 사이 수이 알과댜야 (字) 밧긔 주(註)엣 말을 아오로 드려 사겨시모로 번거코 영잡 곧이 이심을 면(免)티

키워드

소학,   언해,   풀이,   ,   특징,   가치,   원문,   자료
  • 가격3,000
  • 페이지수28페이지
  • 등록일2006.09.30
  • 저작시기2006.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65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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