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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므로 하늘의 은혜를 두텁게 입고 그 덕이 멀리까지 빛났던 것이다. 정원(貞元) 2년 병인(丙寅; 786) 10월 11일에 일본왕 문경이 군사를 일으켜 신라를 치려다가 신라에 만파식적이 있다는 말을 듣고 군사를 물리고 (중략) -왕은-그 피리를 내황전(內黃殿)에 간수해 두었다 삼국유사 제2 기이편 원성대왕 p.245-248
원성왕은 본래 왕이 될 사람이 아니었는데, 어떤 꿈을 꾸게 되고 그 꿈의 도움으로, 새 왕의 즉위식 날에 왕이 될 김주원이 갑자기 물이 불어난 강을 건너지 못하고 이를 기회로 먼저 왕궁에 도착한 원성왕이 왕위를 잇게 되었다. 효소왕 이후 등장하지 않던 만파식적은 이 때 원성왕에게 전달된다. 왜 이때 만파식적이 등장하는가는 원성왕이 본래 왕이 될 사람이 아니었지만 단지 즉위식 날에 김주원보다 빨리 왕궁에 들어가 왕이 됨으로써 명분 없이 오른 불안한 자신의 왕위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상징하는 신기(神器)로써, 그리고 원성왕은 바로 앞의 선덕왕과 함께 혜공왕을 주살한 장본인으로써 무열왕의 직계의 마지막 혈통이었던 혜공왕을 죽인 것에 대한 뭇사람들로부터의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서 무열왕직계손이 대대로 이어오던 만파식적을 이어 받았다고 생각한다.
원성왕은 본래 왕이 될 사람이 아니었는데, 어떤 꿈을 꾸게 되고 그 꿈의 도움으로, 새 왕의 즉위식 날에 왕이 될 김주원이 갑자기 물이 불어난 강을 건너지 못하고 이를 기회로 먼저 왕궁에 도착한 원성왕이 왕위를 잇게 되었다. 효소왕 이후 등장하지 않던 만파식적은 이 때 원성왕에게 전달된다. 왜 이때 만파식적이 등장하는가는 원성왕이 본래 왕이 될 사람이 아니었지만 단지 즉위식 날에 김주원보다 빨리 왕궁에 들어가 왕이 됨으로써 명분 없이 오른 불안한 자신의 왕위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상징하는 신기(神器)로써, 그리고 원성왕은 바로 앞의 선덕왕과 함께 혜공왕을 주살한 장본인으로써 무열왕의 직계의 마지막 혈통이었던 혜공왕을 죽인 것에 대한 뭇사람들로부터의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서 무열왕직계손이 대대로 이어오던 만파식적을 이어 받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