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 및 고려의 유교윤리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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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유교에 대한 이해

2. 한국 유교 사상 개관 (삼국시대~고려 말)

3. 삼국시대 유교 사상

4. 고려 시대의 유학 사상

5. 참고문헌

※ 참고자료 <천인심성합일지도(天人心性合一之圖)>

본문내용

고려조의 기반 자체가 무너질 수 있었고, 새로운 나라의 건설을 필연적인 사실로 여겨져 혁명파의 주장에 따르게 되는 것이었다. 개혁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고려 자체가 망하는 것은 용인할 수 없었다.
·우현보·이림·변안렬 등은 이에 반대하였고, 정도전·조준·윤소종 등은 찬성하였다.
그러나 정도전과 조준을 중심으로 한 혁명파의 줄기찬 노력으로 드디어 공사전적(公私田籍)을 모두 불사르게 되었다. 이로써 권문세족은 토지 지배의 근거를 박탈당하게 되었고 이와 같은 전제 혁신은 고려 귀족을 비롯한 구세력의 경제적 토대를 뒤흔든 획기적인 일로서 새 질서를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다.
③ 대표적인 학자
정몽주(鄭夢周)
그는 친명파의 대표적 인물로서 학문과 덕행의 양면에서 여말 고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유교적 신념에 투철했던 그는 이성계 등 혁명 세력과 맞서 싸우다가 마침내 무참히 희생되고 말았다. 이색(李穡)은 정몽주를 가리켜 ‘동방이학지조(東方理學之祖)’라 하였는데, 이는 당대에 이미 높은 평가를 받았음을 말해준다.
당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정몽주는 자신의 책임을 저버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고려 정신의 계승을 스스로 자임하였다. 혼란한 세상에 처하여 진퇴(進退)와 출처(出處)를 떳떳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직분이 정한 바에 따른 것이다. 당시 정몽주는 이미 고려조와 사직(社稷)의 위기를 인식하고 이를 짊어지겠다는 현실적 사명의식(使命意識)을 드러내었다. 이와 같이 정몽주의 사상의 밑바닥에는 유가(儒家)의 정명사상(正名思想)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한편 정몽주는 유학에서 말하는 인의예지(仁義禮智)와 오륜(五倫)의 실천적 도(道)로서 일상생활의 구체적이고 실천윤리적인 도를 지향하고 있다. 원래 유학에서 추구하는 도(道)는 가공적인 것이 아니라 평상적인 인간의 현실 생활의 도이다.
길재(吉再)
길재는 정몽주와 더불어 고려에 대한 충절과 의리를 지킨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나 고학으로 학문을 터득하고, 유교적 효와 충을 실현하고자 힘썼다. 그러나 그의 소박한 꿈은 고려 왕조의 멸망으로 무너지게 되었고, 그는 새로운 왕조에 협력하여 유학의 도를 현실에 실천하는 길과 은둔하여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키는 길 중에 후자를 택하여 고려의 마지막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명리(名利)와 권세를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길재의 불사이군의 충의(忠義) 윤리는 현대인의 사표가 되고 귀감이 되기에 족하다.
그리고 성리학의 입장에서는 포은의 학통을 계승하고 이를 다시 강호 김숙자에게 전함으로써, 조선조 유학의 정맥이 관학이 아닌 사림 유학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포은과 함께 의리를 중시하는 한국 성리학의 특색을 장식했다. 유승국, 앞의 책, p.180
정도전(鄭道傳)
정도전은 조선 왕조 개국의 산파역을 맡았던 학자요 경세가이다. 그는 한편으로는 경(經), 법(法)의 학식과 경륜을 갖춘 대경세가로서 현실적으로 유교 입국의 뜻을 실천해 본 인물로 평가되기도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고려 왕조를 배반한 변절자로서 낙인찍혀 한국 유학사에서 냉대되고 과소평가되기도 한다. 그의 대표적 저술이라고 할 수 있는 『불씨잡변』이나 『심기이변』은 불교를 이론적으로 비판하여 배척하기 위한 배불(排佛)론의 입장에서 쓰인 글들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주리(主理)의 입장에서 도·불을 비판한 것으로서, 유교가 도가나 불교보다 사상적으로 우월하다는 이론적 근거를 이(理)에 두었다.
권근(權近)
권근은 여말 선초의 대표적 학자로서 이론 성리학의 선구적 위치에 있다. 그의 철학 사상은 『입학도설(入學圖說)』에 잘 나타나 있는데, 『입학도설』은 1390년 유배지에서 초학자를 위해 주렴계의 『태극도설(太極圖說)』을 근본으로 하고 『대학』,『중용』장구의 주자 해석을 참고하여 도식화한 저술이다. 김충렬, 앞의 책, p.227 ; 유승국, 앞의 책, p.175
『입학도설』은 무려 35개의 도설로 되어 있는데, 제1도인 「천인심성합일지도(天人心性合一之圖)」는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것은 인간 심성에 있어서 이기(理氣)와 선악의 차이를 분석하여 성리학의 본령(本領)을 드러낸 것이다.
권근은 순수 성리학의 연구라는 관점에서 볼 때, 정도전이 정치와 관련된 시각에서 성리학을 함으로써 성리학의 관학화에 힘을 기울인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그리고 그의 『입학도설』은 이후 성리설을 도식화하는 데 모범이 되었으며, 사단을 성발(性發)에 속한다고 한 내용은 퇴계 호발(互發) 이론의 단서가 되기도 했다.
5. 참고문헌
단행본
김충렬, 『고려 유학사』, 고려대 출판부, 1987
유승국, 『한국의 유교』, 세종대왕 기념 사업회, 1980
신창호·서은숙, 『한국 사상과 교육 윤리』, 서현사, 2003
한국철학사연구회, 『한국철학사상사』, 심산, 2003
황의동, 『한국의 유학 사상』, 서광사, 1995
사이트
야후! 백과사전 : http://kr.dic.yahoo.com
한국학 중앙연구원 : http://www.koreandb.net
※ 참고자료 <천인심성합일지도(天人心性合一之圖)>
전체를 사람 모습으로 놓고 머리 부분에는 태극, 천명, 음양, 오행권을 설정하여 인간의 심성을 연역해 내고 있다. 가운데 가슴 부분에는 理의 근원과 氣의 근원을 대립적으로 배열하고, 理로부터 순선무악(純善無惡)의 사단(四端)을 연역하고, 氣로부터 유선유악(有善有惡)의 정(情)을 연역하였는데 선하고 악하게 되는 계기를 의(意)의 기미(幾微)에 두고 있다.
또한 아랫부분에서는 사단 밑에 성(誠)의 권을, 칠정 밑에 경(敬)의 권을, 악기(惡幾) 밑에는 욕(欲)의 권을 각기 배열하여 성인과 중인의 갈림길을 예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양촌은 중인도 기질을 변화시키고 경(敬)으로서 존양성찰(存養省察)의 노력을 부지런히 한다면, 군자가 되어 천지의 조화에 동참하고 화육(化育)을 기리는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하였다. 아울러 인간은 형질적인 기(氣)와 본래적인 리(理)를 함께 갖추고 있는 바, 리(理)로서 동물적인 욕구와 욕망을 다스리고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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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1.11
  • 저작시기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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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14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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