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조선시대의 통신과 교통수단, 교통이용의 변화과정
Ⅰ. 조선시대의 통신수단
1. 파발제(擺撥制)
(1) 기발
(2) 보발
2. 봉수제
Ⅱ. 조선시대의 교통수단
Ⅰ. 조선시대의 통신수단
1. 파발제(擺撥制)
(1) 기발
(2) 보발
2. 봉수제
Ⅱ. 조선시대의 교통수단
본문내용
),종2품 이상이 타는 높은 외바퀴 수레인 초헌, 위에 포장 없이 의자처럼 생 긴 남여, 초상에 상주가 타는 사각 가마 등 이 있다. 그런데 민간에서는 흔히 네사람이 메는 사인교를 쓴다.
가 마 초 헌
◀ 인력거
자전거바퀴처럼 생긴 두 개의 차륜 위에 사 람이 앉을자리를 만들고 포장을 씌운 것이다.
인력거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894년(고 종 31)으로 일본인 하나야마(花山帳場)가 10 대를 수입, 서울 시내 및 서울과 인천간에 운 행한 것이 시초이다.
인 력 거
◀ 한강 나룻배
마포는 한강의 중요한 나루터의 하나로 18세 기초부터 많은 객주들과 어물 곡물 등 많은 기타물산들이 몰려들던 지역이며, 한강을 따 라서 많은 배들이 드나들던 곳이다.
마포나루 앞에 있는 밤섬은 조선시대 배 만 드는 기술자들이 정착하여 마을이 형성 되었 다는 기록이 있다.
나 룻 배
조선의 교통 ·통신시설은 개항 이후 크게 변모되었다. 개화기 이전에는 도보, 말, 가마 등 불편하고 빠르지 못하였으며 옛날 귀족이나 양반들이 타고 다니던 것으로, 2인 또는 4인이 손으로 들거나 멜빵에 걸어 메고 운반했다.
그러나 개화기 이후에는 개화기 이후에는 교통 ·통신시설은 근대화의 상징으로서 당시 일반 국민에게는 경외의 존재였다. 서양의 선교사들이 포교 활동을 위하여 들여온 자동차가 다니면서 신작로가 생겨났으며 자동차의 수가 증가하자 나라에서는 길을 넓히고 인도와 차도를 구별하게 되었다.
또한 철교가 개통되어 899년 개통된 노량진과 제물포 간의 경인선이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가 생겨났다. 그 뒤 경부선(1904), 경의선(1905), 경원선(1914)이 각각 완성되었는데, 처음 열차를 타는 사람들은 '쇠수레'라 불렀고, 열차에 오르면서 짚신을 벗어들기도 하였다고 한다.
1889년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에 처음으로 전차를 놓았고, 이어서 서울에 전등을 가설하였다. 조선에는 이런 변화가 있었다. 점차 그 편리함을 알게 되었다.
통신시설은 청나라에 의해서 서울∼인천과 서울∼의주 간에 전신선이 가설되었고, 이어서 정부가 일본과 합작하여 서울∼부산 간에 전신선을 가설하고 전보총국(電報總局)을 설치하여 통신 업무를 기계화하였다. 전화는 처음에 궁중 안에 먼저 가설되었고 이어서 서울∼인천 간에 시외전화가 개통되었고 뒤이어 서울 시내에 일반 전화가 가설되었다. 독립협회에 의해 계몽운동이 전개되면서 일반 국민들은 근대문물에 대한 각성이 높아졌다.
가 마 초 헌
◀ 인력거
자전거바퀴처럼 생긴 두 개의 차륜 위에 사 람이 앉을자리를 만들고 포장을 씌운 것이다.
인력거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894년(고 종 31)으로 일본인 하나야마(花山帳場)가 10 대를 수입, 서울 시내 및 서울과 인천간에 운 행한 것이 시초이다.
인 력 거
◀ 한강 나룻배
마포는 한강의 중요한 나루터의 하나로 18세 기초부터 많은 객주들과 어물 곡물 등 많은 기타물산들이 몰려들던 지역이며, 한강을 따 라서 많은 배들이 드나들던 곳이다.
마포나루 앞에 있는 밤섬은 조선시대 배 만 드는 기술자들이 정착하여 마을이 형성 되었 다는 기록이 있다.
나 룻 배
조선의 교통 ·통신시설은 개항 이후 크게 변모되었다. 개화기 이전에는 도보, 말, 가마 등 불편하고 빠르지 못하였으며 옛날 귀족이나 양반들이 타고 다니던 것으로, 2인 또는 4인이 손으로 들거나 멜빵에 걸어 메고 운반했다.
그러나 개화기 이후에는 개화기 이후에는 교통 ·통신시설은 근대화의 상징으로서 당시 일반 국민에게는 경외의 존재였다. 서양의 선교사들이 포교 활동을 위하여 들여온 자동차가 다니면서 신작로가 생겨났으며 자동차의 수가 증가하자 나라에서는 길을 넓히고 인도와 차도를 구별하게 되었다.
또한 철교가 개통되어 899년 개통된 노량진과 제물포 간의 경인선이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가 생겨났다. 그 뒤 경부선(1904), 경의선(1905), 경원선(1914)이 각각 완성되었는데, 처음 열차를 타는 사람들은 '쇠수레'라 불렀고, 열차에 오르면서 짚신을 벗어들기도 하였다고 한다.
1889년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에 처음으로 전차를 놓았고, 이어서 서울에 전등을 가설하였다. 조선에는 이런 변화가 있었다. 점차 그 편리함을 알게 되었다.
통신시설은 청나라에 의해서 서울∼인천과 서울∼의주 간에 전신선이 가설되었고, 이어서 정부가 일본과 합작하여 서울∼부산 간에 전신선을 가설하고 전보총국(電報總局)을 설치하여 통신 업무를 기계화하였다. 전화는 처음에 궁중 안에 먼저 가설되었고 이어서 서울∼인천 간에 시외전화가 개통되었고 뒤이어 서울 시내에 일반 전화가 가설되었다. 독립협회에 의해 계몽운동이 전개되면서 일반 국민들은 근대문물에 대한 각성이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