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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학부모참여(학부모학교교육참여) 의의와 역사, 학부모참여(학부모학교교육참여) 인식, 학부모참여(학부모학교교육참여) 학교급식, 학부모참여(학부모학교교육참여) 사례, 학부모참여(학부모학교교육참여) 방향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학부모참여(학부모학교교육참여)의 의의

Ⅲ. 학부모참여(학부모학교교육참여)의 역사

Ⅳ. 학부모참여(학부모학교교육참여)의 인식

Ⅴ. 학부모참여(학부모학교교육참여)의 학교급식
1. 학교의 급식업무 부담 과중
2. 학부모의 재정적 기여도 높다
3. 어머니의 정성을 담은 학교급식

Ⅵ. 학부모참여(학부모학교교육참여)의 사례

Ⅶ. 향후 학부모참여(학부모학교교육참여)의 방향

Ⅷ.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것을 의미하고, 이는 결국 교육을 황폐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비난을 받을 소지를 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시민사회의 구성주체로서 학부모가 나서는데 있어서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전적으로 사적이익에 의해서만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공동체적 의미로서의 교육과 개인의 사적 이익과의 조화가 관건이 될 것이다.
글로벌화 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국가가 맡고 있는 역할의 일정 부분을 시민사회로 내놓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역사적 흐름이다. 따라서 장차 시민사회의 역할이 확대될 것이고, 이들 시민사회는 소수만을 위한 사회가 될 개연성이 높다. 그래서 우리는 교육을 시민사회에 맡긴다는 것이 오히려 교육을 황폐화시킬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두려워하고 기피하려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교육을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그래서 국가가 하라는 대로, 학교에서 하라는 대로하면서 아이들은 계속 학교에서 일탈자로 규정되는 삶을 살도록 내버려두어야 할 것인가? 이미 앞서도 이야기한 바와 같이 변해 가는 아이들을 수용해주지 못하는 학교는 아이들을 일탈자로 만들고 이는 결국 학교의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변해 가는 아이들을 수용해줄 수 있는 학교를 만드는 일에 나서야 할 때다. 더 이상 학교는 교사나 국가가 프로그램을 일방적으로 공급하는 곳이어서는 안 되며, 학부모들이 이들을 후원하는 외곽조직으로 남아있어서도 안 된다. 비싼 등록금 내고 학교에 다니면서 추가교육비를 또 부담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과외비까지 부담하는 현실을 학부모가 나서서 바로 잡아야 한다. 추가교육비까지 부담해서 교육을 받아야만 하는 부실한 교육체제를 개선하는 일에 학부모가 나서야 한다. 필요할 경우 그들과 협력해야겠지만 교사나 국가는 공급자로서 학부모들의 요구에 능동적으로 반응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순응하는 존재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그들을 살리는 길이고 우리 모두가 더불어 사는 삶이지 않을까? 아이들이 원하지 않는 교육을 교육적이고 이름으로 자행하고 있는 학교는 아이들의 인권을 말살하는 곳이고, 학부모들의 자녀에 대한 교육권을 무시하는 곳이지는 않는가?
학교는 아이들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리고 아이들이 돌아오는 길은 학교가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켜 줄 때만 가능하다. 그리고 그 일에 이제 학부모들이 나서야 한다. 아이들이 오고 싶은 학교, 가방과 신발을 사놓고 학교 간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새내기의 설렘이 있는 학교, 아이들의 꿈과 희망이 있는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학부모들의 몫인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부모로서의 의무이고, 학교에 납입금을 내는 소비자로서의 권리이기도 하다. 변하지 않는 학교는 머지않아 선생님들마저 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들을 교단에서 계속 살아 숨쉴 수 있게 해주는 것도 학부모들의 몫이다. 이제 한발 앞으로 내밀자. 그리고 학교를 바꾸자.
Ⅷ. 결론
이론이 있고 실제가 있다. 지난 80년대까지 우리 사회는 이론과 실제의 차이를 실감나게 겪어왔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민주주의는 현실에서 만나는 민주주의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모두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라고 알고 있고 그렇게 배워왔지만, 실제 삶에서 자유는 없었고 민주주의도 없었다. 박정희라는 독재자는 그것을 ‘한국식 민주주의’라고 이름 붙여 자기 합리의 근거로 삼기까지 했다.
대학에서 교육학 시간에 교육의 주체가 누구냐고 묻는 문제가 나오면, 거기에는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라고 써야 한다. 대한민국 어느 교육학 교실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오랫동안 우리네 학교에서는 교사도 학생도 학부모도 교육의 주체이지 않았다. 오직 위에서 떨어지는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무표정한 꼭두각시 인형이었다. 무표정하기에 우울한 그 인형은, 팔과 다리와 목에 매달린 실을 누군가 잡아당기고 늘어뜨리고 하는 신호에 따라, 몸을 움직이면 그만이었다.
아무도 주체로 자리 잡지 못한 상태에서, 학교는 욕망이라는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조각배와 같았다. 교사는 출세할 수 있는 학생을 길러내면 무난했고, 학부모는 자기 자식만 챙기도록 압력을 행사하고서 만족하고, 학생은 성적만 높게 챙기는 데에 급급했다. 지난날 교사의 다른 이름은 ‘감독관’이고, 학부모의 다른 이름은 ‘치맛바람’이었으며, 학생의 다른 이름은 ‘수험생’이었다. 이렇게 돌아가는 모양을 보고, 그 위에서 누군가가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굳은 체제라도 금이 가고 일탈하는 소수가 생기는 법, 그리고 그 소수가 자신의 정당성을 전체 구성원에게 어느 정도 동의를 얻어내면, 그때부터 현실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오랜 침묵 끝에, 1989년, 뜻있는 교사들이 ‘우리가 교육의 주체’라고 외쳤다. 그러자 돌아온 것은 해직통고서 천육백 장이었다. 이 순간 겪은 패배는 10년이 지나서 전교조 합법화라는 승리로 되돌아온다. 그 뒤로 학부모들도 ‘어머니회-육성회’라는 사적 이익 집단을 벗어나서 새롭게 활동할 공공의 영역을 마련하는 데 힘썼다. ‘학교운영위원회’가 공식적으로 마련되고, 학부모운동단체들이 생겨나서 우리 교육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학생들은 학교 안팎에 여러 갈래로 자치모임을 만들고 학생회도 직선제로 개편되는 성과를 이루었다. 우리 교육은 계속 국가가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형편이지만, 과거와 달라진 점은 변화의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글의 관심은 바로 그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계기에 있다.
참고문헌
▷ 강상철·정용하(1997), 학부모의 교육 참여에 관한연구, 충남대학교교육발전연구소
▷ 경상북도 교육 과학 연구원(1999), 진로 교육자료
▷ (사)대한영양사협회·(사)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2002), 건강 지향적인 식문화 정착과 학교급식의 나아갈 방향에 관한 토론회 자료집
▷ 서울특별시교육청(2001), 학부모의 학교공동체 참여 우수사례집, 정필사
▷ 유은호(1993), 학부모의 사회계층에 따른 교육관에 관한 연구, 한성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 학위논문
▷ 이순형 (2004), 학부모와 함께하는 교육, 제주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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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6.26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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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686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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