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초기 기년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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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기년문제의 제기
2. 왕위계보 문제의 해결
3. 기년의 재조정
4. 기년 재조정의 의미
5. 맺음말

본문내용

기사들을 그와 연관지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는 그가 석시 집단 최초의 이사금이었던 점 외에 사로국의 대외발전 과정에서 일정한 관련이 있었던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그의 등장 과정이 주목되는데, 그는 금관국과의 지배권을 놓고 수로왕과 다투다가 대외무역로를 통해 계림의 땅으로 도망했다고 한다. 이는 그의 개인적인 행적이라기보다 사로국이 일시적으로나마 낙동강 하구방면의 대외교역에 참여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것이 설화적으로 표현된 것은 오히려 탈해대 당시의 역사적 사실에 근거했음을 의미한다. 이 사실은 사로국의 대외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분기점으로 전승되었을 가능성이 크고, 이러한 전승을 강조하려는 목적에서 후대의 대외투쟁이나 지방통치 사실이 탈해대부터 편제 된 것이다. 이러한 전승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해당 인물의 업적을 미화하기 위한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해당 왕대의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채 후대사실이 그대로 편입된 기사는 점차 감소해 감을 알 수 있다. 유례(儒禮)대부터는 일부 착오의 경우를 제외하면, 당시의 사실에 후대 사실이 혼입되는 현상은 거의 사라진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초기기사 중 일부는 후대의 사실이 옮겨 편제된 것이다. 이러한 기사들은 주로 사로국의 성장 과정에서 의미 있었던 왕대에 집중되었다. 해당 왕대의 사실과 후대의 사실이 혼입된 경우는 주로 왕족이나 해당 왕대의 두드러진 인물에 한정되었다. 이를 제외하면 초기기사의 전체적인 틀에는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기년을 조정해야만 합리적으로 해석되는 사례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점들이 고려된다면, 신라본기 초기기사는 초기 신라사를 복원하는데 더욱 풍부한 자료를 제공하리라 기대된다.
5. 맺음말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기년문제에 대해선 아직 정확히 밝혀진 것이 없다. 기년문제는 지금 현재 연구자들의 주된 관심에서 벗어나 있고, 이룩한 성과들도 10여년이 다 넘은 것들이다. 지금상황에서 이 문제를 정확히 알 수는 없을 것 같지만, 이것을 해결할만한 사료가 하루빨리 밝혀져서 신라초기 기년문제에 대한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참고문헌>
이부오, “新羅初期 紀年問題에 대한 재고찰”, 한국고대학회, 1999
이희진, “《三國史記》 초기기사에 대한 최근 紀年調整案의 문제점, 역사학회, 1998
강종훈, “≪ 삼국사기 ≫ 신라본기 초기기록의 기년문제 재론, 역사학회, 1999
이부오

키워드

삼국사기,   초기,   기년,   문제,   역사
  • 가격2,000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11.10.07
  • 저작시기2011.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06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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