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판소리의 의미
Ⅲ. 판소리의 기원
Ⅳ. 판소리의 특성
Ⅴ. 판소리의 작품
1. 다섯 마당(오가)
2. 여섯 마당
3. 열두 마당
Ⅵ. 판소리의 단가
Ⅶ. 판소리의 명창
1. 순조 때 8명창(전기의 8명창)
1) 권삼득
2) 송홍록
3) 염계달
4) 방만춘
5) 고소관
6) 모홍갑
7) 김계철
8) 신만엽
2. 철종 때 8명창(후대의 8명창)
1) 박유전
2) 박만순
3) 김세종
4) 이날치
5) 정춘풍
6) 한송학
7) 김정근
8) 정창업
9) 장자백
3. 근세 때 5명창
1) 김창환
2) 송만갑
3) 이동백
4) 김창룡
5) 정정렬
Ⅷ. 결론
참고문헌
Ⅱ. 판소리의 의미
Ⅲ. 판소리의 기원
Ⅳ. 판소리의 특성
Ⅴ. 판소리의 작품
1. 다섯 마당(오가)
2. 여섯 마당
3. 열두 마당
Ⅵ. 판소리의 단가
Ⅶ. 판소리의 명창
1. 순조 때 8명창(전기의 8명창)
1) 권삼득
2) 송홍록
3) 염계달
4) 방만춘
5) 고소관
6) 모홍갑
7) 김계철
8) 신만엽
2. 철종 때 8명창(후대의 8명창)
1) 박유전
2) 박만순
3) 김세종
4) 이날치
5) 정춘풍
6) 한송학
7) 김정근
8) 정창업
9) 장자백
3. 근세 때 5명창
1) 김창환
2) 송만갑
3) 이동백
4) 김창룡
5) 정정렬
Ⅷ.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걸친 명창으로 전북 고부 출신. 8명창의 한 사람이며 송홍록의 직계 명창이다. 세도가인 김병기의 총애를 받다가 김병기가 실권되자 흥선대원군의 초청에도 응하지 않고 절개를 지킨 것으로 유명하다. 특장은 춘향전의 옥중가이다.
3) 김세종
조선왕조 헌종·철종·고종 등 3조에 걸친 명창으로 전남 담양 출신. 서편제의 거장이다. 박유전의 직계로 성량이 거대하고 기법이 출중하여 당대 제1인자였으며 춘향가로 대원군의 총애를 받았다.
4) 이날치
조선왕조 헌종·철종·고종 등 3조에 걸친 명창으로 전남 동복 출신. 8명창의 한 사람이다. 서편제의 거장이다. 박유전의 직계로 설량이 거대하고 기법이 출중하여 나팔소리와 새소리는 실음 그대로를 방불케 한 것이 특생이다. 서편제 판소리유파에서 반드림제를 개발하였고 특장은 심청가이다.
5) 정춘풍
조선 철종·고종 때의 명창으로 충청도 유가(儒家)의 출신으로 한학에 조예가 깊었고 진사과에도 급제했다. 판소리에서의 특장은 단가였고, 판소리 문장에 개발과 영향을 주었다.
6) 한송학
조선왕조 철종·고종 때의 명창이며 경기도 수원 출신. 당대의 명창이며 판소리 유파에서 중고제를 개발하였다.
7) 김정근
조선왕조 철종·고종 때의 명창으로 충남 강경 출신이다. 진양조를 창시한 김성옥의 사자이며, 근세 5명창의 한 사람인 김창룡의 선친이다. 판소리에서 중고제를 정립하고 특장은 무숙이타령이었다.
8) 정창업
조선왕조 철종·고종 때의 명창. 명창 김창환과 송만갑의 스승이며 특장은 심청가이다.
9) 장자백
조선왕조 철종·고종 때의 명창으로 전북 순창 출신의 동편제 명창이며, 명창 김세종의 직계이다. 미남으로 성대가 풍부하며 특장은 춘향가이다.
3. 근세 때 5명창
고종 말기가 되면 판소리는 내용으로 보나 공연으로 보나 극성기에 이르지만 한편으로는 원각사 이후 창극이 유행하게 되자 판소리가 쇠퇴될 문제를 안기 시작하였다. 판소리 명창들의 이동이 심하여 판소리의 유파적 특징이 뒤섞이게 되어 유파의 특색을 차츰 잃어갔다.
이 시기에 활약한 명창으로는 박기홍,김창환,김채만,송만갑,이동백,유공렬, 전도성, 김창룡, 유성준, 정정렬 등이 있다. 이 중에 다섯을 골라서 근세 오명창이라 부른다.
1) 김창환
조선왕조 고종·순종 때의 명창으로 전남 나주 출신이며 근세 5명창의 한 사람이다. 이날치의 직계로 서편제의 법통을 이어받았으며, 판소리에서 흥부가의 제비 노정기를 작곡하였다. 원각사의 주석이며, 순종의 총애를 받아 의관직을 제수 받았다.
2) 송만갑
조선왕조 고종 때의 명창으로 전남 구례 출신이며 근세 5명창의 한 사람이다. 명창 송홍록의 종손이고 송우룡의 서자로 동편제 명문의 출신이다. 판소리에서 동편제에만 구애받지 않고 경기도 향토음악제인 경제를 많이 활용하였다. 이것이 가문에서 문제가 되어 할명을 당하였다. 원각사의 간부였으며, 조선성악연구회를 창립하였고, 감찰직을 제수받았다. 특장은 춘향가와 흥부가이다.
3) 이동백
충남 비인 출신으로 근세 5명창의 한 사람. 중고제의 명창이던 김정근의 문하생이지만 그는 동편제에 속하였다. 체구가 당당하고 가객으로 품위가 있어서 상류사회에서 인기를 독차지하였으며 고종의 총애를 받아 통정대부직을 제수받았다. 원각사와 조선성악연구회의 간부. 특장은 적벽가이다.
4) 김창룡
조선 고종 때의 명창으로 충남 서천 출신이며 근세 5명창의 한 사람. 명창 김정근의 사자(嗣子)이며 풍부한 성량으로 중고제의 명창이다. 연흥사·조선성악연구회의 간부. 특장은 심청가이다.
5) 정정렬
조선왕조 고종 때의 명창으로 전북 익산 출신으로 근세 5명창의 한 사람이다. 서편제의 명창으로 유명하다. 이날치의 문하생으로 충청도 선곡사에서 10년 동안 연마하였다. 조선성악연구회의 간부이며 판소리 특장은 춘향가이다. 실제인 정원섭은 당대의 명고로 유명하였다.
☞ 근세 5명창 다음 일제 때의 명창들로는 이화중선, 김정문, 공창식, 박녹주, 임방울, 김연수, 장판개, 이선유, 박중근, 강자원 등이 있다. 이들은 조선성악연구회를 중심으로 크게 활약하였으나 창극에 휩쓸리고 서양음악에 밀려, 판소리는 후퇴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 이화중선
여류명창. 부산 출신으로 근세 여류명창의 최고봉을 장식하였다. 5명창의 한 사람인 송만갑에게서 판소리를 공부하여 여류로서 일가를 완성하였다. 그의 고운 목청은 전무후무한 것으로 일세를 풍미하였으며, 수많은 음반이 남겨져 있다. 특장은 적벽가,춘향가이다.
Ⅷ. 결론
우리가 지금 민중예술이라 말하고 있는 것은 애초부터 예술적 개념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놀이의 장으로부터 시작, 발전되어 왔음은 역사가 보여 주고 있다. 기원설에서도 언급했지만, 제의적 의식, 혹은 놀이문화로부터 뻗어 나온 것이 하나의 장르로 거듭나고 전문적으로 민중예술을 하는 광대나 사당패가 생겨나는 과정은, 민중예술이라는 것이 시기별 형식적 의례만이 아닌, 민중의 삶 속에 정착되어 가고 있음을 증명한다. 이렇게 민중예술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집단에서는 대사나 장단, 리듬의 기교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며 예술적 경지로의 승화를 꿈꾼다. 이는 민중 예술을 벌이는 이들과 민중이라는 관계가 관객과 배우, 관객과 창자의 약속을 기반으로 하여 민중 예술극 속에서 벌어지는 정황과 사건들이 민중을 대표하고, 민중의식을 대변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예술적 가치로 승화하게 되었음을 뜻한다. 즉, 신문고 제도가 민중예술에 포함되지 않는 것과 판소리와 가면극이 민중예술에 속하는 것의 차이는 민중예술이 단순히 민중의 의식을 대변하는 차원만이 아닌, 그 속에 기교를 더하고 유희를 더하여 민중의 삶이 예술적으로 투영된 또 하나의 패러다임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강동원(1990) : 단가 사설집, 광주 : 백제 출판사
박봉술(1993) : 창본 춘향가, 판소리연구4, 판소리학회
박관수(1996) : 한국 판소리 사설 형성 연구, 국학자료원
이보형(1991) : 고음반에 제시된 판소리 명창제 더늠, 한국음반학, 창간호, 서울 : 고음반연구회
전신재 : 판소리의 장르적 성격
정양최동현 엮음(1986) : 판소리의 바탕과 아름다움, 전주 : 인동
판소리학회(2000) : 판소리의 세계, 문학과 지성사
3) 김세종
조선왕조 헌종·철종·고종 등 3조에 걸친 명창으로 전남 담양 출신. 서편제의 거장이다. 박유전의 직계로 성량이 거대하고 기법이 출중하여 당대 제1인자였으며 춘향가로 대원군의 총애를 받았다.
4) 이날치
조선왕조 헌종·철종·고종 등 3조에 걸친 명창으로 전남 동복 출신. 8명창의 한 사람이다. 서편제의 거장이다. 박유전의 직계로 설량이 거대하고 기법이 출중하여 나팔소리와 새소리는 실음 그대로를 방불케 한 것이 특생이다. 서편제 판소리유파에서 반드림제를 개발하였고 특장은 심청가이다.
5) 정춘풍
조선 철종·고종 때의 명창으로 충청도 유가(儒家)의 출신으로 한학에 조예가 깊었고 진사과에도 급제했다. 판소리에서의 특장은 단가였고, 판소리 문장에 개발과 영향을 주었다.
6) 한송학
조선왕조 철종·고종 때의 명창이며 경기도 수원 출신. 당대의 명창이며 판소리 유파에서 중고제를 개발하였다.
7) 김정근
조선왕조 철종·고종 때의 명창으로 충남 강경 출신이다. 진양조를 창시한 김성옥의 사자이며, 근세 5명창의 한 사람인 김창룡의 선친이다. 판소리에서 중고제를 정립하고 특장은 무숙이타령이었다.
8) 정창업
조선왕조 철종·고종 때의 명창. 명창 김창환과 송만갑의 스승이며 특장은 심청가이다.
9) 장자백
조선왕조 철종·고종 때의 명창으로 전북 순창 출신의 동편제 명창이며, 명창 김세종의 직계이다. 미남으로 성대가 풍부하며 특장은 춘향가이다.
3. 근세 때 5명창
고종 말기가 되면 판소리는 내용으로 보나 공연으로 보나 극성기에 이르지만 한편으로는 원각사 이후 창극이 유행하게 되자 판소리가 쇠퇴될 문제를 안기 시작하였다. 판소리 명창들의 이동이 심하여 판소리의 유파적 특징이 뒤섞이게 되어 유파의 특색을 차츰 잃어갔다.
이 시기에 활약한 명창으로는 박기홍,김창환,김채만,송만갑,이동백,유공렬, 전도성, 김창룡, 유성준, 정정렬 등이 있다. 이 중에 다섯을 골라서 근세 오명창이라 부른다.
1) 김창환
조선왕조 고종·순종 때의 명창으로 전남 나주 출신이며 근세 5명창의 한 사람이다. 이날치의 직계로 서편제의 법통을 이어받았으며, 판소리에서 흥부가의 제비 노정기를 작곡하였다. 원각사의 주석이며, 순종의 총애를 받아 의관직을 제수 받았다.
2) 송만갑
조선왕조 고종 때의 명창으로 전남 구례 출신이며 근세 5명창의 한 사람이다. 명창 송홍록의 종손이고 송우룡의 서자로 동편제 명문의 출신이다. 판소리에서 동편제에만 구애받지 않고 경기도 향토음악제인 경제를 많이 활용하였다. 이것이 가문에서 문제가 되어 할명을 당하였다. 원각사의 간부였으며, 조선성악연구회를 창립하였고, 감찰직을 제수받았다. 특장은 춘향가와 흥부가이다.
3) 이동백
충남 비인 출신으로 근세 5명창의 한 사람. 중고제의 명창이던 김정근의 문하생이지만 그는 동편제에 속하였다. 체구가 당당하고 가객으로 품위가 있어서 상류사회에서 인기를 독차지하였으며 고종의 총애를 받아 통정대부직을 제수받았다. 원각사와 조선성악연구회의 간부. 특장은 적벽가이다.
4) 김창룡
조선 고종 때의 명창으로 충남 서천 출신이며 근세 5명창의 한 사람. 명창 김정근의 사자(嗣子)이며 풍부한 성량으로 중고제의 명창이다. 연흥사·조선성악연구회의 간부. 특장은 심청가이다.
5) 정정렬
조선왕조 고종 때의 명창으로 전북 익산 출신으로 근세 5명창의 한 사람이다. 서편제의 명창으로 유명하다. 이날치의 문하생으로 충청도 선곡사에서 10년 동안 연마하였다. 조선성악연구회의 간부이며 판소리 특장은 춘향가이다. 실제인 정원섭은 당대의 명고로 유명하였다.
☞ 근세 5명창 다음 일제 때의 명창들로는 이화중선, 김정문, 공창식, 박녹주, 임방울, 김연수, 장판개, 이선유, 박중근, 강자원 등이 있다. 이들은 조선성악연구회를 중심으로 크게 활약하였으나 창극에 휩쓸리고 서양음악에 밀려, 판소리는 후퇴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 이화중선
여류명창. 부산 출신으로 근세 여류명창의 최고봉을 장식하였다. 5명창의 한 사람인 송만갑에게서 판소리를 공부하여 여류로서 일가를 완성하였다. 그의 고운 목청은 전무후무한 것으로 일세를 풍미하였으며, 수많은 음반이 남겨져 있다. 특장은 적벽가,춘향가이다.
Ⅷ. 결론
우리가 지금 민중예술이라 말하고 있는 것은 애초부터 예술적 개념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놀이의 장으로부터 시작, 발전되어 왔음은 역사가 보여 주고 있다. 기원설에서도 언급했지만, 제의적 의식, 혹은 놀이문화로부터 뻗어 나온 것이 하나의 장르로 거듭나고 전문적으로 민중예술을 하는 광대나 사당패가 생겨나는 과정은, 민중예술이라는 것이 시기별 형식적 의례만이 아닌, 민중의 삶 속에 정착되어 가고 있음을 증명한다. 이렇게 민중예술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집단에서는 대사나 장단, 리듬의 기교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며 예술적 경지로의 승화를 꿈꾼다. 이는 민중 예술을 벌이는 이들과 민중이라는 관계가 관객과 배우, 관객과 창자의 약속을 기반으로 하여 민중 예술극 속에서 벌어지는 정황과 사건들이 민중을 대표하고, 민중의식을 대변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예술적 가치로 승화하게 되었음을 뜻한다. 즉, 신문고 제도가 민중예술에 포함되지 않는 것과 판소리와 가면극이 민중예술에 속하는 것의 차이는 민중예술이 단순히 민중의 의식을 대변하는 차원만이 아닌, 그 속에 기교를 더하고 유희를 더하여 민중의 삶이 예술적으로 투영된 또 하나의 패러다임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강동원(1990) : 단가 사설집, 광주 : 백제 출판사
박봉술(1993) : 창본 춘향가, 판소리연구4, 판소리학회
박관수(1996) : 한국 판소리 사설 형성 연구, 국학자료원
이보형(1991) : 고음반에 제시된 판소리 명창제 더늠, 한국음반학, 창간호, 서울 : 고음반연구회
전신재 : 판소리의 장르적 성격
정양최동현 엮음(1986) : 판소리의 바탕과 아름다움, 전주 : 인동
판소리학회(2000) : 판소리의 세계,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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