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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돈에 거쳐 넘어지리라 (호14:9,참조,호2:14-16,6:1-4,8,9,14:4-8)"
의심할 바 없이 이 말씀은 호세아 자신에 의해 쓰여진 선지서의 결어이다. 유다 왕국에서의 그의 사역 기간은 70년 이상이다. 본서를 통해 우리는 그의 사역 기간 동안에 행했던 많은 설교의 집대성을 대할 수 있다. 호세아는 본서를 완결지으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
이 결어는 본서가 16선지서 중 그러한 결어를 갖는 유일한 선지서는 사실 때문에 훨씬 더 돋보인다. 선지자의 의도가 주목할 만한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이 말씀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가 지혜가 있느냐?" 그리고 "누가 총명이 있느냐?"는 것은 이 글이 어떤 조건하에서 고찰되어야 하는지를 나타내고 있다.
지혜와 총명이라는 말들은 간당하면서도 깊은 뜻을 지닌 말들이다. 하지만 선지자가 사용했을 때 그 말들에는 보다 깊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지혜는 참 빛을 소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 총명은 빛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받은 자가 알 것이다. 이 조건을 제시하는 질문 다음에는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라는 인상적인 선언이 따른다. "도"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길, 즉 행위의 과정을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의 탄탄 대로를 일컫는 말이다. 선지자는 이 길이 정직하다고 선언하였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는 자신이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해석하고 예언하였던 하나님의 통치와 활동의 모든 결과를 생각하고 있었다.
의심할 바 없이 이 말씀은 호세아 자신에 의해 쓰여진 선지서의 결어이다. 유다 왕국에서의 그의 사역 기간은 70년 이상이다. 본서를 통해 우리는 그의 사역 기간 동안에 행했던 많은 설교의 집대성을 대할 수 있다. 호세아는 본서를 완결지으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
이 결어는 본서가 16선지서 중 그러한 결어를 갖는 유일한 선지서는 사실 때문에 훨씬 더 돋보인다. 선지자의 의도가 주목할 만한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이 말씀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가 지혜가 있느냐?" 그리고 "누가 총명이 있느냐?"는 것은 이 글이 어떤 조건하에서 고찰되어야 하는지를 나타내고 있다.
지혜와 총명이라는 말들은 간당하면서도 깊은 뜻을 지닌 말들이다. 하지만 선지자가 사용했을 때 그 말들에는 보다 깊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지혜는 참 빛을 소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 총명은 빛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받은 자가 알 것이다. 이 조건을 제시하는 질문 다음에는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라는 인상적인 선언이 따른다. "도"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길, 즉 행위의 과정을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의 탄탄 대로를 일컫는 말이다. 선지자는 이 길이 정직하다고 선언하였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는 자신이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해석하고 예언하였던 하나님의 통치와 활동의 모든 결과를 생각하고 있었다.
본문내용
의 연인들이 그녀를 버렸고, 그녀는 종으로 전락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때 호세아는 그녀를 찾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되찾기 위해 그녀를 노예로서 사야만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아골 골짜기에 있는 그녀에게 소망의 문을 열어 주었다. 아골이라는 단어는 고통을 의미한다. 따라서 고통의 골짜기에서 소망의 문이 열렸던 것이다. 이 개인적인 뼈 아픈 경험을 통해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영적인 간음과 매음의 죄를 범한 민족에게 그가 무엇을 준비하고 계신가를 보이셨다. 고통의 골짜기에 소망의 문이 열렸다. 이는 모든 인간의 지각을 뛰어 넘는 사랑의 노래이다. 오직 호세아만이 그가 순종하는 가운데 자신에게 명해진 일을 수행함으로써 그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이 사랑의 메시지를 다음의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나니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이 큰 외침은 자기 백성의 반역으로 인해 고통하는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극도의 경멸 속에 처해 있던 에브라임은 뒤집지 않은 떡, 즉 설 구워져 흐물거리는 떡, 한 쪽은 덜 익었고, 다른 한쪽은 재가 되어 버린 떡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중심의 외침을 듣는다.
우리는 이 사랑의 메시지를 다음의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나니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이 큰 외침은 자기 백성의 반역으로 인해 고통하는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극도의 경멸 속에 처해 있던 에브라임은 뒤집지 않은 떡, 즉 설 구워져 흐물거리는 떡, 한 쪽은 덜 익었고, 다른 한쪽은 재가 되어 버린 떡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중심의 외침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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