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 다른 한편, 우연성이 판을 친다면 사람은 불안해서 살 수가 없을 것이다. 언제 어디에서 무슨 큰 사건이 일어나서 삶을 송두리째 파괴시킬지 모르기 때문이다.
즉, 진리를 논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본 것 외에 다른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 신학적으로 자연계와 역사 세계를 분석해 볼 때, 거기에는 자연법과 우연법 외에 제 3의 법이 있다. 그 법은 자연법과 우연법을 지배하고 통솔함으로써 자연법이 그 기능을 잘 발휘하게 하고 우연법이 인간 존재에 지나친 피해를 주지 못하도록 하는 법이다. 이러한 제 3의 법은 바로 ‘하나님의 섭리’이다. 이종성, 『이야기로 푸는 조직신학(ⅩⅩⅣ)-역사란 무엇인가』, p. 230.
하나님은 절대자요 창조자요 영원자인 동시에 자연과 역사에 직접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것들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서 이탈하지 못하도록 관장하신다. 또한 자연계와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 자신의 창조 목적을 성취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이야 말로 곧 역사의 주관자요 지배자요 통솔자이시다. 즉 하나님만이 역사의 주인공이시다.
지금까지 알아봤던 역사의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 사실이란 걸 말하고 싶다. 즉, 지금 이 세계는 주님께서 창조하셨으며, 언젠가는 예수님의 재림을 통하여 심판을 받고 끝날 세계이다. 또한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역사는 \'God\'s activity in History\'로서 주님의 섭리로 인해 유지 및 운행되고 있다. 우리에게 있어 종교개혁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또한 역사에도 관심이 많았던 마틴 루터는 이것을 숨어계시는 하나님(hidden god)라고 설명하면서 믿음의 눈으로 역사를 보면 하나님의 사역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즉, 계시된 하나님으로 다가오신다.(revealde God) 하나님께서 역사를 인식할 수 있는 감각을 인간에게 주셨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역사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인식하고, 그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금, 세상은 너도 옳고 나도 옳고 모든 것이 옳다고 한다. 그러나 진리는 오직 하나 뿐이다. 그렇게 말하면 세상은 또 나(기독교)보고 배타적인 사상을 가졌다고 하면서 나를 배척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무시당하고 멸시 당하며 인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진리라는 것이 존재한다. 역사 얘기를 하면서 왜 종교 얘기가 나오냐고, 갑자기 종교적 색채가 너무 짙어졌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이것이 어릴 적부터 생각해온 나의 역사관이요, 주님 및 기독교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역사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살펴보았지만 그 관점들은 역사에 대한 어렴풋한 그림자들만을 제시했을 뿐이였다. 그래서 나는 역사에 대해,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진리를 논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역사에 대해, 또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 나는 \'색안경\'을 통해 설명하고 싶다. 같은 사료를 가지고도 다르게 해석하는 한일 간의 학자를 보자. 그들은 다른 색깔의 안경을 끼고 있었던 탓에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르게 보았던 것이다. 나 또한 나만의 색안경을 분명히 착용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관점이라고 부르며, 또한 잘못된 색안경을 낀 사람을 보고 편협한 사고를 가졌다고 말한다. 다만 내 관점이 편협한 사고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또한 편협한 사고를 벗어나고자 노력한 것이 역사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들을 살펴 보는 것이었다.
궁극적으로 나는 \'역사\'란 진리를 추구하는 것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완벽한 존재라면 진리 그 자체 겠지만 그렇지 못하기에 진리에 대한 인식이 미비 하다. 그렇지만 진리란 분명 존재한다. 나 또한 완벽하지 못한, 어떻게 보면 많은 역사가들, 또는 선구자들에 비해 너무나 모자란 인간이다. 때문에 절대적 진리에 대해 설명을 명쾌하고도 정확하게 하지 못한다는 점에 한탄하고,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다짐도 하는 바이다. 나도 \'역사\' 의 길을 걸으려는 한사람의 학생이며, 또한 \'역사\'를 가르치려는 선생이 되고자 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반인들도 정확하고 뚜렷한 역사관을 가져야 한다. \'역사\'를 가르치려는 나는 더욱 더 정확하고 진실된 역사관을 가져야 한다. 또한 역사에 대해 절대적인 역사를 논하는 것은 불가능 하더라고 쳐도 가능하면 객관적인 역사지식을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선생, 또 역사학자가 되어야겠다.
마지막으로 질문을 하나 하면서 마치려고 한다.
먼저, 일어났던 과거가 있다. 이는 \"사람들이 행한 것\"이라는 의미에서의 역사이다. 다음으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과거가 있다. 이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기억하도록 우리에게 남겨준 것\"이라는 의미에서의 역사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이해하려고한 과거가 있다. 이는 \"그들이 행했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으로 정의되는 역사이다. \"기록 없이 역사는 없다.\"라는 말이 이치에 맞듯이 \"사고 없이 역사는 없다.\"라는 말 역시 이치에 맞다. W.T.K 뉴젠트 저, 권태경, 고재백 공역, 『창조적인 역사학을 위하여』,(서울 : 솔로몬, 1994) p. 21.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역사\'란 무엇인가?
※ 참고 문헌
Ⅰ. 국내 도서.
W.T.K 뉴젠트 저, 권태경, 고재백 공역, 『창조적인 역사학을 위하여』, 솔로몬, 1994
고려대학교 사학과 교수실, 『역사란 무엇인가』, 고려대학교 출판부, 1979
김기봉, 『‘역사란 무엇인가\'를 넘어서』, 푸른역사, 2004
김호연, 『역사란 무엇인가』, 울산대학교 출판부, 2002
로이 스완스트롬 저, 홍치모 역, 『역사란 무엇인가: 기독교적 관점에서』, 성광문화사, 1982.
박성수, 『새로운 역사학-역사는 진실인가』, 삼영사, 2006
이상신, 『역사학 개론』, 신서원, 1994
임희완, 『역사학의 이해』, 건국대학교 출판부, 2000
카알 뢰비트 저, 이석우 역, 『역사의 의미』, 탐구당, 1990
Ⅱ. 국내 논문.
김현식, 『역사란 무엇인가』, 漢城史學
박이문, 『역사란 무엇인가-역사의 실상과 허상』, 철학에세이
윤경로, 『역사란 무엇인가』, 한국기독교 역사연구소 소식 제 30호
이종성, 『역사란 무엇인가』, 이야기로 푸는 조직신학 (ⅩⅩⅣ)
즉, 진리를 논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본 것 외에 다른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 신학적으로 자연계와 역사 세계를 분석해 볼 때, 거기에는 자연법과 우연법 외에 제 3의 법이 있다. 그 법은 자연법과 우연법을 지배하고 통솔함으로써 자연법이 그 기능을 잘 발휘하게 하고 우연법이 인간 존재에 지나친 피해를 주지 못하도록 하는 법이다. 이러한 제 3의 법은 바로 ‘하나님의 섭리’이다. 이종성, 『이야기로 푸는 조직신학(ⅩⅩⅣ)-역사란 무엇인가』, p. 230.
하나님은 절대자요 창조자요 영원자인 동시에 자연과 역사에 직접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것들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서 이탈하지 못하도록 관장하신다. 또한 자연계와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 자신의 창조 목적을 성취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이야 말로 곧 역사의 주관자요 지배자요 통솔자이시다. 즉 하나님만이 역사의 주인공이시다.
지금까지 알아봤던 역사의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 사실이란 걸 말하고 싶다. 즉, 지금 이 세계는 주님께서 창조하셨으며, 언젠가는 예수님의 재림을 통하여 심판을 받고 끝날 세계이다. 또한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역사는 \'God\'s activity in History\'로서 주님의 섭리로 인해 유지 및 운행되고 있다. 우리에게 있어 종교개혁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또한 역사에도 관심이 많았던 마틴 루터는 이것을 숨어계시는 하나님(hidden god)라고 설명하면서 믿음의 눈으로 역사를 보면 하나님의 사역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즉, 계시된 하나님으로 다가오신다.(revealde God) 하나님께서 역사를 인식할 수 있는 감각을 인간에게 주셨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역사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인식하고, 그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금, 세상은 너도 옳고 나도 옳고 모든 것이 옳다고 한다. 그러나 진리는 오직 하나 뿐이다. 그렇게 말하면 세상은 또 나(기독교)보고 배타적인 사상을 가졌다고 하면서 나를 배척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무시당하고 멸시 당하며 인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진리라는 것이 존재한다. 역사 얘기를 하면서 왜 종교 얘기가 나오냐고, 갑자기 종교적 색채가 너무 짙어졌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이것이 어릴 적부터 생각해온 나의 역사관이요, 주님 및 기독교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역사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살펴보았지만 그 관점들은 역사에 대한 어렴풋한 그림자들만을 제시했을 뿐이였다. 그래서 나는 역사에 대해,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진리를 논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역사에 대해, 또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 나는 \'색안경\'을 통해 설명하고 싶다. 같은 사료를 가지고도 다르게 해석하는 한일 간의 학자를 보자. 그들은 다른 색깔의 안경을 끼고 있었던 탓에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르게 보았던 것이다. 나 또한 나만의 색안경을 분명히 착용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관점이라고 부르며, 또한 잘못된 색안경을 낀 사람을 보고 편협한 사고를 가졌다고 말한다. 다만 내 관점이 편협한 사고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또한 편협한 사고를 벗어나고자 노력한 것이 역사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들을 살펴 보는 것이었다.
궁극적으로 나는 \'역사\'란 진리를 추구하는 것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완벽한 존재라면 진리 그 자체 겠지만 그렇지 못하기에 진리에 대한 인식이 미비 하다. 그렇지만 진리란 분명 존재한다. 나 또한 완벽하지 못한, 어떻게 보면 많은 역사가들, 또는 선구자들에 비해 너무나 모자란 인간이다. 때문에 절대적 진리에 대해 설명을 명쾌하고도 정확하게 하지 못한다는 점에 한탄하고,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다짐도 하는 바이다. 나도 \'역사\' 의 길을 걸으려는 한사람의 학생이며, 또한 \'역사\'를 가르치려는 선생이 되고자 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반인들도 정확하고 뚜렷한 역사관을 가져야 한다. \'역사\'를 가르치려는 나는 더욱 더 정확하고 진실된 역사관을 가져야 한다. 또한 역사에 대해 절대적인 역사를 논하는 것은 불가능 하더라고 쳐도 가능하면 객관적인 역사지식을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선생, 또 역사학자가 되어야겠다.
마지막으로 질문을 하나 하면서 마치려고 한다.
먼저, 일어났던 과거가 있다. 이는 \"사람들이 행한 것\"이라는 의미에서의 역사이다. 다음으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과거가 있다. 이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기억하도록 우리에게 남겨준 것\"이라는 의미에서의 역사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이해하려고한 과거가 있다. 이는 \"그들이 행했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으로 정의되는 역사이다. \"기록 없이 역사는 없다.\"라는 말이 이치에 맞듯이 \"사고 없이 역사는 없다.\"라는 말 역시 이치에 맞다. W.T.K 뉴젠트 저, 권태경, 고재백 공역, 『창조적인 역사학을 위하여』,(서울 : 솔로몬, 1994) p. 21.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역사\'란 무엇인가?
※ 참고 문헌
Ⅰ. 국내 도서.
W.T.K 뉴젠트 저, 권태경, 고재백 공역, 『창조적인 역사학을 위하여』, 솔로몬, 1994
고려대학교 사학과 교수실, 『역사란 무엇인가』, 고려대학교 출판부, 1979
김기봉, 『‘역사란 무엇인가\'를 넘어서』, 푸른역사, 2004
김호연, 『역사란 무엇인가』, 울산대학교 출판부, 2002
로이 스완스트롬 저, 홍치모 역, 『역사란 무엇인가: 기독교적 관점에서』, 성광문화사, 1982.
박성수, 『새로운 역사학-역사는 진실인가』, 삼영사, 2006
이상신, 『역사학 개론』, 신서원, 1994
임희완, 『역사학의 이해』, 건국대학교 출판부, 2000
카알 뢰비트 저, 이석우 역, 『역사의 의미』, 탐구당, 1990
Ⅱ. 국내 논문.
김현식, 『역사란 무엇인가』, 漢城史學
박이문, 『역사란 무엇인가-역사의 실상과 허상』, 철학에세이
윤경로, 『역사란 무엇인가』, 한국기독교 역사연구소 소식 제 30호
이종성, 『역사란 무엇인가』, 이야기로 푸는 조직신학 (ⅩⅩ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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