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신선사상의 본류문제
2. 신선도
3. 신선사상의 조류
4. 신선의 도통의 경지
5. 신선의 신선조화의 경지
6. 도가사상의 현대적 재조명
Ⅲ. 결론
Ⅱ. 본론
1. 신선사상의 본류문제
2. 신선도
3. 신선사상의 조류
4. 신선의 도통의 경지
5. 신선의 신선조화의 경지
6. 도가사상의 현대적 재조명
Ⅲ. 결론
본문내용
하여 인간의 일을 결정하지만, 신인조화의 결과로 인존(人尊)이 실현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인존시대 이전에는 신이 중심이 되어 신의 의지에 따라 인간의 일이 결정되었으나, 인존시대 이후에는 인간이 주체가 되어 인간의 의지에 의해 삼계(三界)의 모든 일이 결정된다. 『전경』에 "천존(天尊)과 지존(地尊)보다 인존(人尊)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人尊時代)라"『전경』, 교법 2장 5절
고 하였다. 천존과 지존이란 신이 하늘과 땅이라는 영역에 머물면서 권능을 행사하고 인간들의 숭배를 받는다는 뜻이고, 인존은 신이 인간의 영역에 거처하면서 권능을 행사한다는 의미로서 인간은 신이 머무는 거처라는 말이다. 신의 주인이 곧 인간인 것이다. 인존이 실현되면 인간은 지혜가 밝아져 과거ㆍ현재ㆍ미래와 삼계를 통달할 수 있으며, 병ㆍ고통ㆍ생사를 초월하여 장생(長生)하는 신선이 될 수 있다. 인존시대에는 인간이 숭배하였던 신이 오히려 인간을 섬기게 된다. 인존시대란 지상신선실현이 된 이상시대인 것이다.
⑥도가사상의 현대적 재조명
도(道), 무위(無爲), 그리고 소요(逍遙)라는 세 개념은 노장사상이란 하나의 체계의 초석 , 기둥 그리고 대들보에 해당된다는 전재해도 무방하다. 이러한 관점은 도와 무위라는 개념이 노장사상을 애기할 때 언제나 거론되어 왔었다는 사실, 그리고 거위 문재가 되지 않았지만 위의 두 개념에서 필연적으로 소요라는 개념이 추출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충분히 뒷받침될 수 있다.
위의 세 가지 핵심적인 이른바 중심개념들 간의 유기적인 관계에서 드러나는 사실은 노장사상 문제, 즉 주제가 자연과 문화와의 관계라는 것, 그리고 그 사상의 궁극적 의미가 인간의 궁극적 문제의 새로운 해결책을 재시 하는데 있다는 사실이다.
그 유명한 道는 존재론, 특히 형이학적 차원에서의 존재론적 개념이다. 그것은 플라톤의 善, 헤겔의 절대정신(絶對精神),하이데거의 존재, 중국의 태극(太極),혹은
힌두교의 브라만과 같은 개념들에 해당 되는 것으로서 궁극적 실체를 지칭한다.
도로서 파악된 실체는 구별 될 수 없는 부동체(不動體)가 아니라 시작과 끝, 앞과뒤, 위와 아래의 분별이 무의미한 유동체(流動體), 마치 길과 같이 언제나 모든 것과의 연속적 관계이다.
우리들은 언어로서 언제나 변하는 사물현상을 개념화하여 관념적으로 고정시킨다. 그리고 그렇게 개념화된 것을 개념화 이전의 사물현상과 혼동, 착각하여 실재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도덕경의 도덕경의 {道可道非道}첫구절
첫 구절은 바로 위와 같은 우리들의 사고의 오류를 지적하는 말로 해석된다.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 자연과 자연에 대한 인간의 생각과의 관계는 자연과 문화 과의 관계로 해석된다. 그냥 있는 사물의 세계가 아니라 그것을 관찰하고 해석한 관념의 세계가 있을 때 비로소 문화가 나타난다. 문화란 다름 아니라 인간의 관념세계를 말함을 지나지 않는다. 인간에 의해서 고찰된, 그리고 만들어진 것인 한에서 인간의 세계, 즉 문화적 세계는 필연적으로 인위적이다. 이와 같은 성질의 자연과 문화와의 관계의 맥락에서 노장사상의 도라는 개념과 나란히 중요한 무위라는 개념의 의미다 밝혀진다. 무위는 실천에 관한 개념이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보다 정확히 말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밝히려는 개념이다. 실천적이라는 점에서 무위는 도덕적인 의미로 해석되기 쉽다. 도덕적인 차원에서 볼 때 실천의 문제는 한 사회 안에서 남들과 관련된 행위의 문제이다. 그러나 노장에 있어서의 무위는 남들과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행위, 행위일반에 관한 입장이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 어떤 경우이든, 어떠한 태도를 취하여야 할 것인가에 대한 주장이다. 무위가 의미하는 것은 가장 근본적인 행동의 원칙이 자연스러운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문제, 모든 삶의 고통은 우리들의 행동이 인위적이라는 것, 자연스럽지 않은 데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반인위적 이라는 뜻에서 무위사상은 반문화적이다. 그리고 문화적이라는 것은 근본적 양식으로의 도에 어긋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무위는 우리들의 관념화에서 기인하는 실체에 대한 착각에서 깨어나 실체를 따라서, 즉 도를 따라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실천적 삶의 태도를 말한다는 뜻에서 무위의 개념은 종교적인 의미를 띤다. 이처럼 존재론적 개념인 도와 실천적 개념으로서의 무위는 서로 떼어 파악될 수 없다. 실체를 알고 행위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태도를 알았다고 해도 무엇을 궁극적으로 찾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남아 있다. 도라는 개념은 그러한 문제에 대한 노장의 해답이다. 삶의 궁극적 가치는 미래에나 과거에 있지 않다. 그것은 살아있는 동안 찾을 수 있는 행복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먼 곳에 있는 천당에 있거나 어떤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주어진 현재의 삶을 주어진 현재의 상황에서 소요하듯 살아가는 자체 속에 있다는 것이다.
도를 알 때 우리들은 사물현상을 올바로 보게 되고, 무위의 원칙에 살아갈 때 문제가 해소되고, 삶의 가치를 발견 할 때 우리는 구원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볼 때 노장사상은 우리들이 갖고 있는 진리에 대한 기존적 생각을 수정해 주고, 인위의 결과로 볼 수 있는 문화를 비판하고, 그런 상황에서 헛된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 인류적 역사, 더 가까이 현대의 가치관을 비판하게 된다.
Ⅲ. 결론
인간이면 누구나 영생(永生)을 바란다. 이러한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예로부터 인간들은 무수한 장생술과 건강법을 고안해 왔으며, 오늘날에도 이 문제는 생명과학의 과제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신선(神仙)은 불로장생의 존재이다. 고대의 한국이나 중국 사람들은 신선(神仙)이 되면, 천지와 더불어 오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신선은 인간 초월적인 존재로서, 인간이 신선도를 배우거나 신선이 가지고 있는 신약을 찾아 복용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어 무병장수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이것이 도교적인 신선사상의 중심 내용이다. 우리의 삶에 너무나 익숙하고 정신적 환상에 빠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 할 것이다. 공간적이든 시간적이든 우리는 아마도 신선을 꿈꾸며 그것의 현대적 되풀이를 할 것이다.
인존시대 이전에는 신이 중심이 되어 신의 의지에 따라 인간의 일이 결정되었으나, 인존시대 이후에는 인간이 주체가 되어 인간의 의지에 의해 삼계(三界)의 모든 일이 결정된다. 『전경』에 "천존(天尊)과 지존(地尊)보다 인존(人尊)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人尊時代)라"『전경』, 교법 2장 5절
고 하였다. 천존과 지존이란 신이 하늘과 땅이라는 영역에 머물면서 권능을 행사하고 인간들의 숭배를 받는다는 뜻이고, 인존은 신이 인간의 영역에 거처하면서 권능을 행사한다는 의미로서 인간은 신이 머무는 거처라는 말이다. 신의 주인이 곧 인간인 것이다. 인존이 실현되면 인간은 지혜가 밝아져 과거ㆍ현재ㆍ미래와 삼계를 통달할 수 있으며, 병ㆍ고통ㆍ생사를 초월하여 장생(長生)하는 신선이 될 수 있다. 인존시대에는 인간이 숭배하였던 신이 오히려 인간을 섬기게 된다. 인존시대란 지상신선실현이 된 이상시대인 것이다.
⑥도가사상의 현대적 재조명
도(道), 무위(無爲), 그리고 소요(逍遙)라는 세 개념은 노장사상이란 하나의 체계의 초석 , 기둥 그리고 대들보에 해당된다는 전재해도 무방하다. 이러한 관점은 도와 무위라는 개념이 노장사상을 애기할 때 언제나 거론되어 왔었다는 사실, 그리고 거위 문재가 되지 않았지만 위의 두 개념에서 필연적으로 소요라는 개념이 추출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충분히 뒷받침될 수 있다.
위의 세 가지 핵심적인 이른바 중심개념들 간의 유기적인 관계에서 드러나는 사실은 노장사상 문제, 즉 주제가 자연과 문화와의 관계라는 것, 그리고 그 사상의 궁극적 의미가 인간의 궁극적 문제의 새로운 해결책을 재시 하는데 있다는 사실이다.
그 유명한 道는 존재론, 특히 형이학적 차원에서의 존재론적 개념이다. 그것은 플라톤의 善, 헤겔의 절대정신(絶對精神),하이데거의 존재, 중국의 태극(太極),혹은
힌두교의 브라만과 같은 개념들에 해당 되는 것으로서 궁극적 실체를 지칭한다.
도로서 파악된 실체는 구별 될 수 없는 부동체(不動體)가 아니라 시작과 끝, 앞과뒤, 위와 아래의 분별이 무의미한 유동체(流動體), 마치 길과 같이 언제나 모든 것과의 연속적 관계이다.
우리들은 언어로서 언제나 변하는 사물현상을 개념화하여 관념적으로 고정시킨다. 그리고 그렇게 개념화된 것을 개념화 이전의 사물현상과 혼동, 착각하여 실재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도덕경의 도덕경의 {道可道非道}첫구절
첫 구절은 바로 위와 같은 우리들의 사고의 오류를 지적하는 말로 해석된다.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 자연과 자연에 대한 인간의 생각과의 관계는 자연과 문화 과의 관계로 해석된다. 그냥 있는 사물의 세계가 아니라 그것을 관찰하고 해석한 관념의 세계가 있을 때 비로소 문화가 나타난다. 문화란 다름 아니라 인간의 관념세계를 말함을 지나지 않는다. 인간에 의해서 고찰된, 그리고 만들어진 것인 한에서 인간의 세계, 즉 문화적 세계는 필연적으로 인위적이다. 이와 같은 성질의 자연과 문화와의 관계의 맥락에서 노장사상의 도라는 개념과 나란히 중요한 무위라는 개념의 의미다 밝혀진다. 무위는 실천에 관한 개념이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보다 정확히 말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밝히려는 개념이다. 실천적이라는 점에서 무위는 도덕적인 의미로 해석되기 쉽다. 도덕적인 차원에서 볼 때 실천의 문제는 한 사회 안에서 남들과 관련된 행위의 문제이다. 그러나 노장에 있어서의 무위는 남들과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행위, 행위일반에 관한 입장이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 어떤 경우이든, 어떠한 태도를 취하여야 할 것인가에 대한 주장이다. 무위가 의미하는 것은 가장 근본적인 행동의 원칙이 자연스러운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문제, 모든 삶의 고통은 우리들의 행동이 인위적이라는 것, 자연스럽지 않은 데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반인위적 이라는 뜻에서 무위사상은 반문화적이다. 그리고 문화적이라는 것은 근본적 양식으로의 도에 어긋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무위는 우리들의 관념화에서 기인하는 실체에 대한 착각에서 깨어나 실체를 따라서, 즉 도를 따라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실천적 삶의 태도를 말한다는 뜻에서 무위의 개념은 종교적인 의미를 띤다. 이처럼 존재론적 개념인 도와 실천적 개념으로서의 무위는 서로 떼어 파악될 수 없다. 실체를 알고 행위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태도를 알았다고 해도 무엇을 궁극적으로 찾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남아 있다. 도라는 개념은 그러한 문제에 대한 노장의 해답이다. 삶의 궁극적 가치는 미래에나 과거에 있지 않다. 그것은 살아있는 동안 찾을 수 있는 행복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먼 곳에 있는 천당에 있거나 어떤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주어진 현재의 삶을 주어진 현재의 상황에서 소요하듯 살아가는 자체 속에 있다는 것이다.
도를 알 때 우리들은 사물현상을 올바로 보게 되고, 무위의 원칙에 살아갈 때 문제가 해소되고, 삶의 가치를 발견 할 때 우리는 구원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볼 때 노장사상은 우리들이 갖고 있는 진리에 대한 기존적 생각을 수정해 주고, 인위의 결과로 볼 수 있는 문화를 비판하고, 그런 상황에서 헛된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 인류적 역사, 더 가까이 현대의 가치관을 비판하게 된다.
Ⅲ. 결론
인간이면 누구나 영생(永生)을 바란다. 이러한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예로부터 인간들은 무수한 장생술과 건강법을 고안해 왔으며, 오늘날에도 이 문제는 생명과학의 과제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신선(神仙)은 불로장생의 존재이다. 고대의 한국이나 중국 사람들은 신선(神仙)이 되면, 천지와 더불어 오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신선은 인간 초월적인 존재로서, 인간이 신선도를 배우거나 신선이 가지고 있는 신약을 찾아 복용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어 무병장수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이것이 도교적인 신선사상의 중심 내용이다. 우리의 삶에 너무나 익숙하고 정신적 환상에 빠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 할 것이다. 공간적이든 시간적이든 우리는 아마도 신선을 꿈꾸며 그것의 현대적 되풀이를 할 것이다.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