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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만이 한국사를 바로잡는 방법일 뿐이다. 1.대조영의 출신과 건국집단
-대조영의 출신
-발해의 건국집단
2.발해의 문화적 성격
3.신라와의 관계
4.남북국 시대론의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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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사이에 갈등
⇒ 897년 발해가 신라사신의 윗자리에 앉기를 요구
⇒ 869년부터 873년까지 발해의 오소도와 신라 이동 사이에 빈공과의 수석다툼, 906년 최언위와 오광찬 사이의 등제석차 다툼
→ 신라와 발해의 교류
⇒ 신라는 대조영에게 5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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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인 우월 경쟁(쟁장사건 신라는 당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최치원을 통해 ‘사불허북국거상표’를 지어 바침
, 등제서열 사건(사불허북국거상표) 등)
5기 발해 멸망기
거란이 발해를 멸할 때 신라는 도리어 거란군 지원.
-대립관계 못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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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책이다. 모두 9개 부분으로 나누어 기술했는데, 발해의 종합사서라 할 만하다. 특히 머리말에서 지은이 유득공이 고려 시대에 발해에 대한 체계적 서술을 하지 않은 것을 강하게 비판한 것이라든가, 발해사를 신라사와 더부어 남북극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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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키고 있다. 따라서 중국 동북공정에 따른 한국 고대사(고조선사, 부여사, 고구려사, 발해사 등)의 탈취 움직임이 중국당국의 의도와는 달리 한·중간의 관계 악화와 국경불안정만을 초래할 뿐이라는 것을 중국 당국은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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