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대 중간과제 철학의 이해 C형 2 알키비아데스 I.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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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방통대 중간과제 철학의 이해 C형 2 알키비아데스 I. II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목차

서론

본론: 요약 및 추가 설명

1, 에로스란 무엇인가?
2, 네 자신을 알라!
3, 신에게 섣불리 빌면 안 되는 이유

결론: 감상 및 평가

참고문헌

본문내용

논의를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방식’의 문제에 초점 을 맞추면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얻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어떤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수단을 시용하곤 한다.
인간은 좋은 것을 구하기 위해 신에게 기도하지만 때때로 자신에게 나쁜 것을 빌 수도 있다. 앎과 무지, 무지는 무조건 나쁜 것인가? 온전히 알지 못할 바에야 무지한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온전한 앎을 갖지 못했다면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를 논의한 뒤, 차라리 신의 판단에 맡기고 신과 인간에게 취할 태도를 배우자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결론: 감상 및 평가
알키비아데스(기원전 450-404)는 클레니아스의 아들로서 기원전 450년에 출생하였다. 아버지가 일찍 전사한 까닭으로 페리클레스가 그 후견인이 되었다. 알키비아데스는 막강한 정치적 후광을 갖고 자란 것이다. 잘 생긴 외모에 출중한 운동 실력에 올림피아 경기(416년)의 전차 경주에서 1, 2, 3, 4등을 전부 휩쓸었고, 연설 솜씨까지 갖추고 있었다. 가히 아테네의 차세대 지도자로 이미 내정된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그가 가진 정열 중에서 가장 강했던 것은 경쟁심과 명예욕이었다. 알키비아데스는 정치와 웅변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인 반면, 정신적으로는 나약한 태도를 보였다. 사치스러운 잔치를 벌여 돈을 흥청망청 쓰는가 하면 여자들처럼 빨간 망토를 입고 공회당을 활보했다. 그의 안하무인격인 태도는 독재자와 마찬가지였다. 아테네 사람들은 페리클레스가 살아 있을 대부터 시칠리아를 탐내고 있었으며, 그가 죽은 다음에도 이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 그들의 이러한 야망을 부채질하면서 하루빨리 함대를 보내어 시칠리아를 손에 넣자고 주장한 사람이 알키비아데스였다. 그는 타고난 선동가였다.
그는 일을 일으킨다면 일거에 대 함대를 편성해 정복해야 한다고 시민들에게 주장했다. 이 주장은 아테네 사람의 야망을 더욱 자극했으며, 알키비아데스 자신의 가슴에는 그보다 더 큰 야망이 불타고 있었다. 알키비아데스는 시칠리아를 넘어 멀리 카르타고와 리비아까지 정복할 것을 꿈꾸었다. 이어 이탈리아와 펠로폰네소스를 손에 넣을 계획을 세웠다. 그는 신중한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제자보다, 야심가가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기원전 416년 알키비아데스는 20척의 아테네 함대를 이끌고 멜로스 섬을 포위, 압박하고 있었다. 알키비아데스 휘하의 장군들이 멜로스 섬의 대표들을 만나 전달한 회담 내용을 투키디데스는 그의 전쟁사에서 꼼꼼하게 옮겨 놓았다. 오랫동안 아테네인들은 힘이 가져다주는 댓가를 즐겨왔다.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다.
소크라테스를 통해 자신의 무지를 자각한 것처럼 보이던 알키비아데스는 결국 소크라테스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야망대로 정치에 입문한다. 그는 스파르타와 아테네를 오가며 민중들의 환호를 받기도 하고, 정치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며 독재자의 야망을 키워가지만 결국 기원전 404년 프뤼기아의 태수 파르나바조스에 의해 비참하게 살해당하며 생을 마쳤다.
참고문헌
<알키비아데스 I. II> 이제이북스
  • 가격3,000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17.09.21
  • 저작시기2017.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34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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