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과제][논문요약(A+)] 삼국사기 열전 분석의 한 시각_온달전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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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대학원과제][논문요약(A+)] 삼국사기 열전 분석의 한 시각_온달전의 경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〇 논문 요약
〇 보충 자료
〇 본 논문의 의의
〇 교정 사항
<글자교정 및 번역수정>
<각주 교정 및 추가>

본문내용

쪽 아래에서 2째 줄: 그 작품 성격이 → 그 작품의 성격이
331쪽 각주 35번:
조수학, 최치원전의 소설성(한국민족어문학 2, 한국민족어문학회, 1975)
임형택, 나말여초의 전기문학(한국한문학연구 5, 한국한문학회, 1981)
김종철, 서사문학에서 본 초기소설의 성립 문제(고소설연구논총, 다곡이수봉선생회갑기념논총 간행위원회, 1988)
박희병, 한국 고전소설의 발생 및 발전 단계를 둘러싼 몇몇 문제에 대하여(관악어문연구 17,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992)
310쪽 각주 7번:
온달의 용모는 구부정하여 비웃을 만하였으나, 그 마음만은 맑고 깨끗하였다. 집은 매우 가난하여 항상 걸식을 하여 부모를 봉양하였고, 헤진 옷에다 뚫어진 신발로 시정간(市井間)을 왔다 갔다 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그를 지목하여 ‘우온달(愚溫達)’이라고 불렀다. →
용모는 꾀죄죄하여 우스웠으나, 그 마음만은 맑고 깨끗하였다. 집이 매우 가난하여 늘 먹을 것을 빌어 어미를 봉양하였고, 해어진 옷에다 찢어진 신발로 시정(市井) 사이를 왔다 갔다 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그를 지목하여 ‘바보온달(愚溫達)’이라 불렀다
<각주 교정 및 추가>
▶ 311쪽 15~19째 줄 각주 추가
* 당초의 약속을 식언하고 온달에게 시집가라는 언약을 파기한 국왕에게 항변하는 모습:
“공주가 대답하였다. ‘대왕께서 늘 말씀하시기를 너는 반드시 온달의 아내가 되리라 하시더니 이제 무슨 까닭으로 앞의 말씀을 고치십니까? 필부(匹夫)도 오히려 식언하고자 않거든 하물며 임금에 있어서이겠습니까? 그런 까닭에 임금은 장난하는 말이 없다고 하니 지금 대왕의 명은 그릇됩니다. 첩이 감히 삼가 따르지 못하겠나이다.[公主對曰: ‘大王常語, 汝必爲溫達之婦, 今何故改前言乎. 匹夫猶不欲食言, 況至尊乎. 故曰王者無戱言, 今大王之命, 謬矣. 妾不敢祗承.’]
* 공주라는 신분을 마다하고 온달과 결합하기 위해 펼치는 대담하고도 치밀한 행동:
“이에 공주가 보물과 팔찌 수십 개를 가지고 팔꿈치 뒤에 매고서 궁궐을 나와 혼자 가다가 길에서 한 사람을 만나 온달의 집을 물었다. 이에 그 집에 이르러 눈먼 늙은 어미를 보고 가까이 앞에 나아가 절하고, 그 아들이 있는 곳을 물었다.[於是, 公主以寶釧數十枚, 繫後, 出宮獨行, 路遇一人, 問溫達之家. 乃行至其家, 見盲老母, 近前拜, 問其子所在.]”
* 온달과 온달모를 설득하는 장면:
“옛 사람이 말하기를 ‘한 말의 곡식도 오히려 방아 찧을 수 있고, 한 자의 베도 오히려 바느질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진실로 마음만 함께 하면 되는 것이지 하필 부귀한 뒤에라야 함께할 수 있겠습니까?’[古人言, 一斗粟, 猶可, 一尺布, 猶可縫, 則苟爲同心, 何必富貴然後, 可共乎.]”
* 온달을 입신양명으로 만드는 모습:
“이에 금팔찌를 팔아서 밭과 집, 노비, 소와 말, 그릇 따위를 사서 자용(資用)이 두루 갖추어졌다.[乃賣金釧, 買得田宅奴婢牛馬器物, 資用完具.]” 라는 구문과 “공주가 기르고 먹이기를 몹시 부지런히 하니 말이 살찌고 또한 튼튼해졌다.[公主養飼甚勤, 馬日肥且壯.]” 라는 두 구문에서 온달을 입신양명으로 만드는 공주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 그리고 온달의 죽음에서 보여주는 대담한 모습:
“공주가 와서 관을 어루만지며 말하였다. ‘죽고 사는 것은 결정이 났으니 아아! 돌아가시지 요.’[公主來, 撫棺曰: ‘死生決矣, 於乎歸矣.’]”
▶ 312쪽 6~7, 9~10째 줄 각주 추가
* 그녀는 공주의 손을 만지고, 향기를 맡고서 귀한 사람임을 인식할 뿐 아니라:
“노모가 대답하였다. ‘…… 지금 그대의 내음을 맡으니 향기가 보통과 다르고, 그대의 손을 잡으니 부드럽고 매끄럽기가 솜과 같으니 반드시 천하의 귀인일 것입니다.’[老母對曰: ‘…… 今聞子之臭, 芬馥異常, 接子之手, 柔滑如綿, 必天下之貴人也.’]”
* 뿐만 아니라 그녀는 재차 찾아온 공주와 공주의 설득에 머뭇거리는 온달에게 앞서와 같은 논리를 펼치면서:
“온달의 어머니는 ‘내 자식은 지극히 비루하여 귀인(貴人)의 배필이 되기에 부족하고 우리 집은 너무 가난하여 진실로 귀인이 살기에 마땅치 않습니다.’[其母曰: ‘吾息至陋, 不是爲貴人匹, 吾家至, 固不宜貴人居.’]”
▶320쪽 각주 19번 번역추가
『삼국사기(三國史記)』 권43, 「열전(列傳)」, 「김유신(金庾信)」의 “유신의 현손(玄孫)으로 신라의 집사랑(執事郞)인 장청(長淸)이 행록(行錄) 10권을 지어 세상에 내놓았는데, 만들어 넣은 말(釀辭)이 자못 많으므로 산락(刪落)하고 그 중에서 기록할만한 것을 취하여 전을 삼는다.[庾信玄孫, 新羅執事郞長淸, 作行錄十券, 行於世. 頗多釀辭, 故刪落之, 取其可書者爲之傳.]” 라는 이 부분과 권46 「열전(列傳)」, 「강수(强首)」의 “신라고기(新羅古記)에 ‘문장은 강수(强首) · 제문(帝文) · 수진(守眞) · 양도(良圖) · 풍훈(風訓) · 골번(骨番) 이라.’ 하였는데 제문(帝文) 이하는 사적이 유실되어 전(傳)을 세울 수 없다.[新羅古記曰, ‘文章則强首·帝文·守眞·良圖·風訓·骨番.’ 帝文已下, 事逸, 不得立傳.]” 라는 이 부분, 그리고 권46 「열전(列傳)」, 「김대문(金大問)」의 “박인범(朴仁範) · 원걸(元傑) · 거인(巨仁) · 김운경(金雲卿) · 김수훈(金垂訓) 등은 문자가 겨우 전하는 것이 있지만 사책(史冊)에 사적이 누실되었기 때문에 전(傳)을 세우지 못한다.[朴仁範·元傑·巨仁·金雲卿·金垂訓輩, 雖僅有文字傳者, 而史失行事, 不得立傳]” 라는 부분 등에서 잘 알 수 있다.
▶ 321쪽 7~9째 줄 각주 추가
* 전쟁 출정식에 앞서 군사들에게 행한 맹세의 장면이라던가:
“출병함에 임하여 맹세하기를, ‘계립현(鷄立峴)과 죽령(竹嶺)의 서쪽이 내게로 귀속되지 않는다면 돌아오지 않으리라.’[臨行, 誓曰: ‘鷄立峴竹嶺以西, 不歸於我, 則不返也.’/ 溫達臨行, 誓曰: ‘鷄立峴竹嶺已西, 不歸於我, 則不返也.’(『교정삼국사기(校正三國史記)』 권45, 「열전(列傳)」 제5 참조)]”
* 그리고 장렬히 전사한 뒤 공주와 온달이 생사를 초월하여 영혼으로 대화하는 것:
“‘죽고 사는 것은 결정이 났으니 아아! 돌아가시지요.’[‘死生決矣, 於乎歸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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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23.02.06
  • 저작시기2022.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194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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