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 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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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춘수 시 연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며
Ⅱ. 김춘수. 그의 삶과 시
Ⅲ. 의미시에서 무의미시로의 지향
Ⅳ. 김춘수 무의미시 읽기
1. 시 속에 드러나는 무의미의 유형
1) 상황의 무의미
2) 언어의 무의미
3) 범주적 이탈
4) 수수께끼
5) 종합
2. 무의미의 의미생산과 사상적 기초
1) ‘괄호 속 존재’로 표상된 자전적 트라우마
2) 이성, 역사에 대한 비판과 ‘이승의 저울’
Ⅴ. 나오며
<참고문헌>

본문내용

중에 나타나는 이반의 소설 「대심문관」이다. 「대심문관」은 16세기 세빌리아를 배경으로 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을 다루고 있다.
위 시의 구절은 대심문관이 예수를 찾아온 날 밤, 예수가 전부인 어머니, ‘마리아’를 ‘이 여자여!’라고 부르지 말라고 이야기 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윤리적 측면은 ‘이승의 저울’이라는 말로 지칭된다. ‘이승의 저울’은 수식어와 피수식어의 범주가 맞지 않는 ‘은유’의 형태로서의 ‘범주적 이탈’의 무의미이다. ‘이승의 저울’은 이승의 규범, 혹은 인간적인 기준이라 설명 할 수 있다. 김춘수가 ‘대심문관’에 관한 언급에서 ‘예수’와 대립적인 입장이지만 어느 쪽에 대해서도 존중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도 그가 이러한 인간적 규범의 입장에 서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대심문관)는 극적인물이다. 예수와 나란히 세워놓고 보면 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 그는 예수와 아이러니컬한 입장에 선다. 말하자면 예수와 그는 겉으로는 대립적인 입장이다. 그럴수록 어느 쪽도 어느 쪽을 무시 못 한다.’ 김춘수, 「책 뒤에」, 『들림, 도스토예프스키』,p93
대심문관이 인간의 현실적인 고통 문제에 있어서의 대변 격이라면 예수는 정신적인 구원과 관련을 맺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대심문관에게 예수와 거의 동등한 이해의 폭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서 ‘대심문관’은 지상의 빵이 필요한 대다수 사람들에게 선악 선택의 순간을 부여하고 천상의 영혼을 위하여만 살라고 하는 것은 그들에게 너무나 곤혹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하여 인간 세상에서 통용될 수밖에 없는 현세적 가치로서의 ‘이승의 저울’을 강조하는 것이다.
엘리엘리라마사막디니,
그건
당신이 하느님을 찬미한 이승에서의
당신의 마지막 소리였소.
내 울대에서는 그런 소리가 나오지 않아요.
끝내 왜 한마디도 말이 없으시오?
대심문관은 감방으로 다가가더니 감방 문을 한 번 주먹으로 내리친다.
대심문관 그럴 수 있다면
맘대로 하시오.
가고 싶을 때 가고 싶은 곳으로 가시오.
대심문관은 꼿꼿한 자세로 천천히 무대 밖으로 걸어 나간다.
그날 밤 사동은 꿈에서 본다. 어인 산홋빛 나는 애벌레 한 마리가 날개도 없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을, (사동의 이 부분은 슬라이드로 보여주면 되리라.)
-「대심문관」끝부분
‘엘리엘리라마사막다니’는 ‘신이시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뜻으로 예수가 십자가에서 임종하기 직전에 하느님을 찬미한 이승에서의 마지막 말씀이다. 그런데 대심문관이 자기에게는 그런 소리가 나오지 않을 것임을 말하고 있다. ‘산홋빛’은 김춘수가 신성한 것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의미로 주로 사용한 것이다. 여기서 ‘산홋빛 애벌레’는 대심문관의 상징물이다. 이 시에서 묘사된 대심문관은 가치가 전도된 혼란스런 세상을 개척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와 정신을 보여주는 인간상이다. 그의 관점에서 ‘신’이란 대다수 민중의 현실적 고통과 너무도 동떨어져서 존재하는 대상으로만 보인다. 그리고 ‘신성’과 욕망어린 존재와의 사이에서 내적으로 갈등한다. 위 시에서 대심문관은 인간적인 이들의 고뇌를 인정하고 이를 옹호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와 같이 민중의 현실적인 고통과 동떨어져 존재하는 ‘초월적인 신’보다 민중의 고통을 대변하는 ‘대심문관’에 대한 옹호는 무의미시의 저변에 나타나는 김춘수의 의식과 관련을 지닌다. 그런데 그의 「대심문관」극시가 ‘신’과 ‘대심문관’의 팽팽한 긴장과 그 양자의 인정 속에서 끝을 맺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그는 ‘신’을 부정하지는 않으나 민중의 고통과 동떨어진 ‘신’에 대해서는 비판을 가하는 입장인 것이다. 여기서 김춘수의 「처용단장」,「이중섭」,「예수시편」,「도스토예프스키」등의 대표적 무의미시 연작에 나타난 주제적 공통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그것은 현실, 민중과 동떨어진 ‘신’, ‘역사’, ‘이성’, ‘권력’ 등에 대한 우회적 비판이다. 그리고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그가 과거 고통을 통해 깨달았던 ‘이승의 저울’ 즉 ‘인간적 모럴’이다. 최라영『김춘수 무의미시연구』새미, 2004 p.156
Ⅴ. 나오며
우리는 지금까지 김춘수의 무의미시에 대해서 분석해 보았다. 김춘수는 초기에는 의미시를 쓰며 ‘무한’, ‘본질’, ‘이데아’, ‘존재’에 대해서 ‘시’, ‘언어’, ‘이름 부르기’로 추구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곧 언어의 한계성에 부딪히고 이미지 그 자체로의 감상을 중시하는 서술적 이미지에 관심을 두고 무의미시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무의미시에서 나타나는 유형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가 되었는데 첫 번째는 ‘상황의 무의미’였다. 이는 상황에 기대되지 않는 구절이 반복되거나 상황적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을 때 생기는 무의미였다. 두 번째는 ‘언어의 무의미’인데 단어를 낯설게 느껴지게 하거나 음을 하나하나 뜯어 놓고 구문론적으로 어색한 문장을 만듦으로써 발생시키는 무의미이다. 세 번째는 ‘범주적 이탈’이다. 이는 구문론적으론 옳은데 말의 앞뒤가 맞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주어와 서술어를 맞지 않게 쓴다던가 해서 무의미를 창조해 낸다. 네 번째는 ‘수수께끼’이다. 이는 수수께끼를 풀듯이 제목과 내용을 연결시켜 제목이 답이 되거나 힌트가 되게 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런 무의미의 유형들은 결국 무의미 속에서 또 다른 시적 분위기나 느낌을 만들게 되어 의미를 창조해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그의 무의미시의 사상적 기초도 살펴보았는데, 전쟁을 겪으면서의 역사적 고통이 그의 시에는 곳곳에 베어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한 바탕에서 민중과의 고통에서 동떨어진 것에 대해서는 비판을 했으며, 역사적 피해의식으로 숨고 싶어 하고, 약하기만 한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그는 여든 두해를 살면서 많은 시작을 하였고, 그것의 변천과 경향을 알고 다루기위해서는 그의 생애를 전반적으로까지 살펴봐야 했다. 그래서 무의미시에 대한 분류와 함께 그의 시작배경이 되는 사상까지도 알아보았다.
그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났지만, 긴 삶 동안의 빛나는 작품들로 하여금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에게 회자 될 것이다.
<참고문헌>
최라영, <김춘수 무의미시연구>, 2004
엄국현, <무의미시의 방법적 이해>, 2007

키워드

김춘수,   현대시,   무의미시,   ,   문학
  • 가격1,5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16.05.03
  • 저작시기2016.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01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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