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사] 흙속의 진주 - 1930년대 후반~ 1940년대 초반 시대개관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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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현대문학사] 흙속의 진주 - 1930년대 후반~ 1940년대 초반 시대개관과 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1930년대 후반~1940년대 초반 시대개관
1. 시대적 상황
1) 민족말살정책과 각종 경제적 수탈
2) 식민지적 근대화

2. 문학 환경과 시단의 분위기
1) 시단의 암흑기
2) 시단의 재편성 -다양성 지향
3) 전통지향성과 근대지향성의 공존

3. 고전의 재인식 양상
1) 고전부흥운동
2) 고전부흥 전반
3) 조선어 재인식
4) 고전 재인식의 의의

Ⅲ. 1930년대 후반~1940년대 초반의 시
1. 순수와 기법인식 : 시문학파의 시
1) 문학적 방향
2) 시적 특질

2. 실험주의 시 : 모더니즘의 갈래
1) 주지주의계 모더니즘
2) 초현실계 모더니즘

3. 주체의식의 확립
1) 생의 본바탕 탐구의 시
2) 제 뿌리에 새 호흡 담기의 시

4. 민족 저항정신

Ⅳ.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그러나 이런 일에 급급한 나머지 우리 시에는 하나의 빈 공간이 생기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은 영혼과 육체의 치열한 갈등을 수반한 우리 자신의 생 자체에 대해 치열하게 파고드는 시가 나타나지 못한 점이다. 그런데 193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詩人部落』의 동인 출신인 서정주, 오장환과 『靑馬詩抄』의 시인 유치환이 나타났다.
30년대 후반 서정주는「자화상」,「문둥이」와 같은 시에서 토속적인 샤머니즘과 서구의 탐미주의를 통해 인간의 근원에 대한 추구를 깊이 있게 보여주었다. 유태수,『한국현대문학의 이해』, 청문각, 1996,p.21.
서정주와 다른 방향에서 인간 존재의 탐구를 꾀한 시인으로 유치환이 있다. 그는「생명의 서」,「깃발」 등을 통해 생명 의지에 대한 강안 의식을 표현하면서 또한 이상 세계에 대한 열망을 휴머니즘적으로 그려내고 있다.「생명의 서」에서 \'원시본연의 자태\' 의 배움은 곧 생명의 근원에 대한 물음이며 대결의 의지인 것이다. 또한 유치환은 단단한 어감을 주는 한자어를 즐겨 사용하며 경구 진리나 삶에 대한 느낌이나 사상을 간결하고 날카롭게 표현한 말.
풍의 문장 구조를 빈번히 보여준다. 이것은 그의 시정신과 어울려 여성주의와 구별되는 남성주의의 한 차원을 열어주고 있다는 점에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서정주의 시가 출발 초부터 다분히 실험적인 입장에서 쓰인 것임에 반해 오장환의 것들은 약간 다른 단면을 띠고 있다. 오장환은 1937년『城壁』을 내고, 2년 후『獻詞』를 선보이는데, 후자 쪽이 좀 더 격이 갖춰져 있다고 평가된다.
한편,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은 관조의 대상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인간에게 친화적이고 인간과 교감하는 세계인 자연을 공통으로 다루었다. 그 친화와 교감의 태도에 따라 각각 개성적인 시를 만들어내고 있는데, 박목월은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동반한 동양화적인 기법과 향토적 서정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박두진은 시대적 수난과 절망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식으로서 자연을 노래했다. 조지훈은 사라져 가는 옛 것, 민족 정서 등의 대체물로 자연이 등장한다. 위의 책 p22-23 참고, 정리.
2) 제 뿌리에 새 호흡 담기의 시
모든 문학 작품은 독자에게 수용되기 위해서는 공감대의 형성과 특수성의 확보가 필요하다. 1930년대 후반기에는 이에 대해서도 기능적으로 대처한 시들이 나타났다. 그 제작자들이 신석초 등 일부『詩學』의 동인들과 백석, 이용악 등이다. 백석은 우리 주변의 토속적인 것을 수용한 점에서는 신석초와 같았지만, 그 토속성 자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신석초가 전통적인 것에서 제재를 택했을 때 그것을 대개 상층 지배계층의 목소리로 노래했다면, 백석은 철저하게 서민의 입장을 취했다. 그의 시집『사슴』에 실린 <여우난골族>,<가즈랑집>등의 시는 사설조 쓰여, 제재만 토속적인 것이 아니라 가락까지 서민적이다. 이용악은 백석과 같이 뿌리에 대한 감각을 지녔음에도, 백석이 다룬 서민생활에는 빈궁의식이 개입하지 않지만, 이용악의 시에는 그와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식민지적 궁핍상이 담겨있다.
4. 민족 저항정신
1930년대가 저물면서 상황과 여건은 악화일로로 치닫기 시작한다. 이미 일제는 이 무렵 조선문인보국회 일본 제국주의 황도문학(皇道文學)의 수립을 목적으로 결성한 반민족적 친일문학단체. 회장에 야나베[矢鍋永三郞], 이사장 카라시마[辛島驍], 상무이사 테라다[寺田瑛], 사토[佐藤武雄], 유진오(兪鎭午), 테라모토[寺本喜一], 이사 이광수(李光洙), 유치진(柳致眞), 최재서(崔載瑞), 사이토[齋藤淸衛], 니시무라[西村公鳳], 사무국장 테라다[寺田瑛], 총무국장 박영희(朴英熙), 출판부장 기쿠치[菊池武夫], 사업부장 토키우[道久良], 심사부장 히로야마[白山靑樹], 소설·희곡부 회장 유치진, 평론·수필부 회장 최재서(崔載瑞), 시부 회장 주요한(朱耀翰) 등으로 구성되었다.
를 만들어 우리 시인. 작가들을 침략전쟁의 앞잡이가 되도록 강요했다. 그리고 끝내는 일체의 작품 일본어로 써지도록 강요되었다.
1930년대 후반기는 민족의 생존 위기에 직면하여 문학인들이 민족의식 및 민족어의 수호를 선험적으로 인식해야만 하는 시기였다. 붓을 꺾거나 변절한 시인들도 적지 않았지만 몇몇 시인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민족적 정서, 민족어 수호의 길을 걸었다. 위의 책, p.20.
일제말의 마지막 양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시인으로 이육사와 윤동주는 강한 저항 의지와 성실한 시적 자세를 보여준다. 이육사는 <絶頂>에서 시적 공간의 광활함 그리고 남성적인 면에서 우리 시사에서 특이한 면모를 보여준다. \'부끄러움\'으로 현실을 인식하고 있는 윤동주는 <序詩>에서 두 개의 내적 세계 사이에서 자아의 성찰을 성실하게 보여준다. 식민지 치하에서, 그리고 존재론적인 입장에서 인간 및 민족의 근원을 탐구하는 있는 그는 그 근원에 대한 영원한 향수와 동경을 보여주고 있다.
Ⅳ. 결론
1930년대는 식민치하 중에서도 가장 심한 일제로부터의 압박이 심했을 때이고, 그만큼 문단도 암흑기였다. 그러나 근대화와 시단의 재편성을 통해 순수시, 모더니즘계의 시 등 현대시가 형성되는 시기이기도 하고, 새로운 신인이 대거 등장하면서 창작 계층이 확대되기도 하였다. 또한, 1930년대 중반에 전통론과 고전론이 제기되면서 국민문학파의 전통주의적 시 창작을 내면적으로 계승하려는 움직임이 등장하였고, 본격적으로 고전부흥론을 주장하는 자들이 생겨나는 등 전통인식도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다. 일제의 강압정책에 저항하는 민족정신 발현의 시도 나타난다. 일제의 식민지배라는 흙탕 속에서 우리 문단은 진주 같은 문학의 세계를 열어나갔던 것이다.
※ 참고 문헌
강만길, 『고쳐 쓴 한국현대사』, (주)창비, 2007.
김용직, 『한국현대문학사』, 현대문학, 2009.
김윤식 외, 『한국현대문학사』, 현대문학, 2008.
김윤식, 수정판『한국현대문학사』,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8.
문혜원, 『한국 근현대 시론사』, 도서출판 역락, 2007.
여지선, 『한국근대문학의 전통론사』, 이회문화사, 2006.
오세영 외, 『한국현대시사』, (주)민음사, 2007.
유승우, 『한국 현대 시인 연구』, 국학자료원,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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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7.07.15
  • 저작시기20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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