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많은 신학의 흐름들이, 사회 정의와 과학문명을 흡수 한다는 명목아래 하나님의 창조보다는 진화를 택하고 있으며, 또한 이 모든 것을 심판하실 심판주 하나님을 배제하고 그 자리에 인간을 세워 놓고 있는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엇보다도 창세기 1장 1절의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고백위에서 우리의 모든 신앙고백과 우리의 학문을 펼쳐 나가야 할 것이다. 어거스틴이 그의 도착지점이 하나님이었기에, 그 하나님이 다시 출발하는 전환점이 되어 그의 고백이 나온 것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함에서부터 우리의 모든 신학함을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이다.
셋째, 우리는 항상 찬양과 감사를 하나님께 올려드림으로 신학해야 할 것이다.
어거스틴은 그가 주님을 알지 못하던 어릴 적에 대한 고백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다. 그의 고백 전체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요,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에게 경배를 드린다. 이는 그의 마음 깊은 가운데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마음이 우러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다들 신학은 학문이기에 건조하고 공허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참으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정진의 도구로 신학이 사용 된다면, 우리가 그 신학을 온전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그의 얼굴을 뵙기 위해서 해 나간다면, 우리 가운데 감사와 찬양의 기도와 고백이 흘러 넘쳐 나와야 되지 않을까? 감사함 없이 이 공부를 하였고 찬양 없이 배워온 나 자신의 모습을 주님앞에 참으로 회개한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진정한 감사와 찬양과 경배가 가득한 마음으로 이 학문이 길을 겸손하고 즐겁게 걸어 가야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엇보다도 창세기 1장 1절의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고백위에서 우리의 모든 신앙고백과 우리의 학문을 펼쳐 나가야 할 것이다. 어거스틴이 그의 도착지점이 하나님이었기에, 그 하나님이 다시 출발하는 전환점이 되어 그의 고백이 나온 것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함에서부터 우리의 모든 신학함을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이다.
셋째, 우리는 항상 찬양과 감사를 하나님께 올려드림으로 신학해야 할 것이다.
어거스틴은 그가 주님을 알지 못하던 어릴 적에 대한 고백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다. 그의 고백 전체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요,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에게 경배를 드린다. 이는 그의 마음 깊은 가운데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마음이 우러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다들 신학은 학문이기에 건조하고 공허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참으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정진의 도구로 신학이 사용 된다면, 우리가 그 신학을 온전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그의 얼굴을 뵙기 위해서 해 나간다면, 우리 가운데 감사와 찬양의 기도와 고백이 흘러 넘쳐 나와야 되지 않을까? 감사함 없이 이 공부를 하였고 찬양 없이 배워온 나 자신의 모습을 주님앞에 참으로 회개한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진정한 감사와 찬양과 경배가 가득한 마음으로 이 학문이 길을 겸손하고 즐겁게 걸어 가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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