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각될 때를 걱정해서이다. 그리고 부정행위를 하는 목적이 시험을 좀더 잘 보기 위함이었는데 구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아도 시험을 잘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A의 행동을 통해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라는 목적을 위해 친구인 B와 도덕준칙에 어긋나는 부정행위를 시도를 수단화 시켰음을 알 수 있다.
⒞ 위 사례에서 A와 B가 갖추지 못한 도덕적 준칙은 무엇인가?
A와 B는 ‘시험을 볼 때는 그 어떤 상황에서든 부정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라는 도덕적 준칙을 갖추지 못 한 것 같다.
A의 경우 첫 번째는 스스럼없이 부정행위를 했으며 단 선생님한테 발각될 것을 우려해 B에게 도움을 줄 때는 주저했다. 그리고 두 번째 시험에서도 도덕적 준칙에 의해 소극적으로 대답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욕구와 선생님한테 발각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관계없이 자신의 도덕준칙에 의해 행동 하는 것이었더라면 첫 번째 시험으로 미안한 마음이 있었더라도 당당하게 부정행위를 하지 말자고 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B의 경우 두 번씩 먼저 부정행위를 제안한 학생으로 부정행위에 대한 조금의 두려움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단지 어떤 방법을 써서든 그 방법이 보편적으로 옳은 방법이든 아니든 이성과 도덕적으로 판단했을 때 이에 위배가 되든 안 되든 그런 것에 상관없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는 부정행위를 해도 발각되지만 않으면 괜찮다.’라는 주관적인 준칙을 세워두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두 학생에게 개개인의 주관적인 준칙은 세울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준칙은 보편성에 위배되어서는 안 되며 또한 의무에 따라야 하는 준칙으로 때로는 강제될 수도 있는 것임을 인식 시켜야 할 것이다.
중학교 시절 우리 반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때 A와 B를 보면서 나 역시 부정행위에 대한 도덕적 준칙이 형성되지 않은 때여서 부정행위에 대한 비판 보다는 선생님한테 발각되어 어찌하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아마 나도 기회가 닿았다면 아님 더 용기가 있었다면 부정행위를 시도 했을 지도 모른다. 그때는 고민 하는 A를 보면서 비록 처음에는 부정행위를 했다 해도 두 번째에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A가 참으로 억울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그때의 일이 떠올라 칸트의 도덕 법칙을 공부 하고 난 뒤 나의 생각은 많이 바뀐 것 같다. 현재 나의 행동에 대한 결과가 어떻든 간에 나에게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준칙이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고 나아가 내가 앞으로 가르쳐야 할 아이들이 어떤 행위를 할 때 아니면 하지 않을 때 어떤 생각으로 하지 않는 것인지 혹시 중학교 때의 나와 친구들처럼 하지 못해서 또는 선생님한테 혼나는 것이 두려워서 그러는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만일 중학교 때의 나처럼 도덕적 의식이 형성되지 않아 나와 같은 이유로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하지 않고 있을 때 어떤 방법으로 갖추어야 할 준칙들을 갖추도록 도와 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Ⅳ 도덕교육에서의 활용방안
칸트의 도덕법칙은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법칙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오랜 시간동안 여러 차례 접해 왔고 또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 한번 접하게 됐지만 여전히 내 머릿속에 명료화 되지 못해있고 이제야 어렴풋이 그림이 그려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도덕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목적의 왕국’이라는 칸트 윤리학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고등학교 때부터 인식되어진 ‘칸트는 절대론적 윤리설, 결과보다는 동기를 중요시 하는 철학자’라는 단순한 인식은 이제 지워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왜 나는 칸트 윤리학에 대해 이런 식으로 밖에 배우지 못했을 까하는 의문이 들면서 너무 어려운 나머지 학생들을 이해시키기 복잡하고 심오한 철학을 단순화시켜서 가르쳤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면 칸트의 도덕법칙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것일까? 칸트의 도덕법칙을 통해 윤리교육이 가능한 것일까? 그리고 이렇게 어려운 도덕법칙을 이용해 초등학생들에게 윤리교육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지만 점차 뚜렷해지는 것은 칸트의 정언명법의 핵심인 보편법칙 “너의 준칙이 보편적인 법칙이 되도록 네가 동시에 의욕 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러한 준칙에 따라서만 행위하라.” 쉽게 말해 누구든지 나와 동일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 항상 그 행동을 해야 한다. 라는 이 명법을 기초로 윤리교육을 하면 이기주의와 도덕의식 결여에 대한 문제점을 해결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많은 아이들이 내가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은 옳지만 나와 유사한 상황에 있는 다른 사람이 동일한 행위를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고 또한 위의 사례에서처럼 어떤 행위를 할 때 준칙에 의해 형성된 의식이나 의지가 아닌 외부의 것에 의한 복종에 의해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윤리교육을 떠나 자율적 행동을 통해 스스로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행동하는 습관을 통해 자주적인 인간으로 성장하는데 장애가 될 수 있는 현상이고 또한 나에게는 허용되는 행위가 타인이 했을 경우 허용되지 못하는 행위가 늘어감에 따라 이기적인 인간으로 성장 할 가능성이 높은 현상이다.
그러므로 나는 칸트의 도덕법칙을 통해 윤리교육도 윤리교육이지만 보편적 원칙에 모순 되지 않고 스스로 준칙을 선택해 나갈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시키고 싶다. 그래서 칸트의 도덕법칙을 이론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특정 상황을 주고 아이들이 스스로 고민하고 행위를 선택하고 그 선택의 이유를 이야기 하는 연습을 자주 시키려고 한다. 선택의 이유가 보편적 법칙에 어긋남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존중해주면서 아이의 의지를 보편성에 모순 되지 않는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것이다.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이러한 연습을 자주 하다보면 상황에 따른 우선순위의 가치가 무엇인지, 보편적으로 가져야할 가치가 무엇인지, 나는 어떤 의식에 의해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될 것이고 나아가서는 도덕적 판단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궁극적으로 아이들은 각자 형성된 준칙을 타인의 입장서서 다른 사람의 행위 원리로써도 공평하고 적합한 것인지에 대한 평가를 하려는 시도를 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A의 행동을 통해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라는 목적을 위해 친구인 B와 도덕준칙에 어긋나는 부정행위를 시도를 수단화 시켰음을 알 수 있다.
⒞ 위 사례에서 A와 B가 갖추지 못한 도덕적 준칙은 무엇인가?
A와 B는 ‘시험을 볼 때는 그 어떤 상황에서든 부정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라는 도덕적 준칙을 갖추지 못 한 것 같다.
A의 경우 첫 번째는 스스럼없이 부정행위를 했으며 단 선생님한테 발각될 것을 우려해 B에게 도움을 줄 때는 주저했다. 그리고 두 번째 시험에서도 도덕적 준칙에 의해 소극적으로 대답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욕구와 선생님한테 발각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관계없이 자신의 도덕준칙에 의해 행동 하는 것이었더라면 첫 번째 시험으로 미안한 마음이 있었더라도 당당하게 부정행위를 하지 말자고 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B의 경우 두 번씩 먼저 부정행위를 제안한 학생으로 부정행위에 대한 조금의 두려움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단지 어떤 방법을 써서든 그 방법이 보편적으로 옳은 방법이든 아니든 이성과 도덕적으로 판단했을 때 이에 위배가 되든 안 되든 그런 것에 상관없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는 부정행위를 해도 발각되지만 않으면 괜찮다.’라는 주관적인 준칙을 세워두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두 학생에게 개개인의 주관적인 준칙은 세울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준칙은 보편성에 위배되어서는 안 되며 또한 의무에 따라야 하는 준칙으로 때로는 강제될 수도 있는 것임을 인식 시켜야 할 것이다.
중학교 시절 우리 반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때 A와 B를 보면서 나 역시 부정행위에 대한 도덕적 준칙이 형성되지 않은 때여서 부정행위에 대한 비판 보다는 선생님한테 발각되어 어찌하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아마 나도 기회가 닿았다면 아님 더 용기가 있었다면 부정행위를 시도 했을 지도 모른다. 그때는 고민 하는 A를 보면서 비록 처음에는 부정행위를 했다 해도 두 번째에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A가 참으로 억울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그때의 일이 떠올라 칸트의 도덕 법칙을 공부 하고 난 뒤 나의 생각은 많이 바뀐 것 같다. 현재 나의 행동에 대한 결과가 어떻든 간에 나에게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준칙이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고 나아가 내가 앞으로 가르쳐야 할 아이들이 어떤 행위를 할 때 아니면 하지 않을 때 어떤 생각으로 하지 않는 것인지 혹시 중학교 때의 나와 친구들처럼 하지 못해서 또는 선생님한테 혼나는 것이 두려워서 그러는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만일 중학교 때의 나처럼 도덕적 의식이 형성되지 않아 나와 같은 이유로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하지 않고 있을 때 어떤 방법으로 갖추어야 할 준칙들을 갖추도록 도와 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Ⅳ 도덕교육에서의 활용방안
칸트의 도덕법칙은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법칙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오랜 시간동안 여러 차례 접해 왔고 또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 한번 접하게 됐지만 여전히 내 머릿속에 명료화 되지 못해있고 이제야 어렴풋이 그림이 그려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도덕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목적의 왕국’이라는 칸트 윤리학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고등학교 때부터 인식되어진 ‘칸트는 절대론적 윤리설, 결과보다는 동기를 중요시 하는 철학자’라는 단순한 인식은 이제 지워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왜 나는 칸트 윤리학에 대해 이런 식으로 밖에 배우지 못했을 까하는 의문이 들면서 너무 어려운 나머지 학생들을 이해시키기 복잡하고 심오한 철학을 단순화시켜서 가르쳤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면 칸트의 도덕법칙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것일까? 칸트의 도덕법칙을 통해 윤리교육이 가능한 것일까? 그리고 이렇게 어려운 도덕법칙을 이용해 초등학생들에게 윤리교육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지만 점차 뚜렷해지는 것은 칸트의 정언명법의 핵심인 보편법칙 “너의 준칙이 보편적인 법칙이 되도록 네가 동시에 의욕 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러한 준칙에 따라서만 행위하라.” 쉽게 말해 누구든지 나와 동일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 항상 그 행동을 해야 한다. 라는 이 명법을 기초로 윤리교육을 하면 이기주의와 도덕의식 결여에 대한 문제점을 해결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많은 아이들이 내가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은 옳지만 나와 유사한 상황에 있는 다른 사람이 동일한 행위를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고 또한 위의 사례에서처럼 어떤 행위를 할 때 준칙에 의해 형성된 의식이나 의지가 아닌 외부의 것에 의한 복종에 의해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윤리교육을 떠나 자율적 행동을 통해 스스로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행동하는 습관을 통해 자주적인 인간으로 성장하는데 장애가 될 수 있는 현상이고 또한 나에게는 허용되는 행위가 타인이 했을 경우 허용되지 못하는 행위가 늘어감에 따라 이기적인 인간으로 성장 할 가능성이 높은 현상이다.
그러므로 나는 칸트의 도덕법칙을 통해 윤리교육도 윤리교육이지만 보편적 원칙에 모순 되지 않고 스스로 준칙을 선택해 나갈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시키고 싶다. 그래서 칸트의 도덕법칙을 이론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특정 상황을 주고 아이들이 스스로 고민하고 행위를 선택하고 그 선택의 이유를 이야기 하는 연습을 자주 시키려고 한다. 선택의 이유가 보편적 법칙에 어긋남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존중해주면서 아이의 의지를 보편성에 모순 되지 않는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것이다.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이러한 연습을 자주 하다보면 상황에 따른 우선순위의 가치가 무엇인지, 보편적으로 가져야할 가치가 무엇인지, 나는 어떤 의식에 의해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될 것이고 나아가서는 도덕적 판단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궁극적으로 아이들은 각자 형성된 준칙을 타인의 입장서서 다른 사람의 행위 원리로써도 공평하고 적합한 것인지에 대한 평가를 하려는 시도를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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