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문제 및 독도영유권 분쟁 사례 및 입장비교분석과 독도분쟁 대응방안제시 및 개인적인의견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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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도문제 및 독도영유권 분쟁 사례 및 입장비교분석과 독도분쟁 대응방안제시 및 개인적인의견 정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독도 소개

2. 일본의 독도영유권주장 목적

3. 독도분쟁에 대한 우리정부의 입장

4. 독도영유권의 중요성

5. 독도분쟁 각국의 입장
(1) 한국의 주장
(2) 일본의 주장

6. 일본주장에 대한 반박

7. 독도분쟁 대응방안 제시

8. 결론 및 개인적인 의견

<참고자료>

본문내용

1618년에 ‘죽도도해면허’를 받고, 이어서 1661년에 ‘송도도해면허’를 받은 것을 마치 죽도(울릉도)와 송도(독도)의 섬 자체를 하사받은 것 같은 인상을 주면서, 이 두 섬을 1695년까지 독점적으로 경영했으므로 이것은 독도가 일본고유영토라는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조선조정은 1592~1596년의 임진왜란 때에 일본군의 침략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여 많은 국토를 한때 일본군에게 점령당하였다. 임진왜란때에 울릉도도 왜구에게 노략질을 당하였다. 부산에 상륙한 일본군이 함경도까지 침입해도 막지 못한 형편이었으니, 울릉도,독도를 방어할 수 있는 상황은 더더욱 아니었다. 따라서 왜세의 침략을 막기 쉬운 큰 섬이나 내륙으로 사람들을 모두 대피시키고 방어에 힘쓰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공도정책이고 이로 인해 울릉도를 비워놓게 된 것이다.
임진왜란 직후에 일본 요나고에서 회선업을 하고있던 오타니는 에치고라는 곳으로부터 돌아오다가 우연히 울릉도에 표착하여 섬을 답사해본 결과, 사람은 살고있지 않지만 천혜의 보고임을 알게 되었다. 이에 오타니는 이 섬에 건너가서 고기잡이를 하고자 하였는데 울릉도에 비록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지만 다른 나라인 조선의 영토이므로 울릉도에 가서 고기잡이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막부의 허가가 필요하였다. 울릉도가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 외국의 영토였고, 당시 막부는 엄격히 쇄국정책을 강화하여 외국에 가는 것은 반드시 사전에 막부의 허가를 받도록 규제하고 있었으므로, 외국에 월경하여 고기잡이를 해도 처벌받지 않도록 공식허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어 오타니와 무라가와 가문은 40여년 이후인 1661년견 송도도해면허를 막부로부터 받는 데 성공하였다.
이러한 도해면서의 사례로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임을 증명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조선의 영토임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나하면 조선의 영토였기 때문에, 고기잡이를 위해 외국에 월경하여 들어가는 데 대한 허가장인 ‘도해면서’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만일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영토였다면, 그러한 중앙정부의 도해면허가 필요치 않았던 것임은 당연한 일이다.
7. 독도분쟁 대응방안 제시
일본이 궁극적으로는 독도를 자기 영토로 만드는데 목적이 있고, 그 방법에는 전쟁과 같은 무력을 쓰는 방법이 있고 또한 무력 이외의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지금까지 일본이 해왔던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보았을 때, 독도를 차지하기 위해 무력 이외의 방법을 사용하여 독도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일본은 국제사법법원에 제소를 우리 정부에 제의하였으나 우리 정부는 한국이 독도의 실 소유권을 가지고 있고, 그 권리는 증명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들어 거부한 적도 있었다. 독도는 앞에서 보았듯이 지리적,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의 영토였고, 여러 가지 사실을 비추어 보았을때도 우리의 영토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사항일수록 더욱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한일 영유권 문제는 갈등 해결 방안을 임시적으로 찾기보다는 실질적인 갈등 해소 방안을 모색하는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영유권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한일 간의 접근 방법과 역사 인식이 서로 상이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제정하여서 우리도 똑같이 ‘대마도의 날’을 지정하는 것은 그냥 감정적인 대응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물론 대마도가 우리의 영토라고 밝혀지는 문서가 있긴 하지만 지금은 일본의 영토로서 인정되어왔고, ‘대마도의 날’이라고 제정한 의도에는 우리의 원래 영토를 되찾기 위한 것보다는 ‘다케시마의 날’에 직접적으로 맞서기 위한 대응이라고 밖에는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본이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려는 것은 독도가 갖는 지리적, 경제적, 군사적 중요성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독도에 대한 중요성을 재인식하면서 독도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일본의 망언에 대한 대응도 논리적, 체계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정부차원에서 행정적인 대응으로는 해양부재산으로 등재, 천연기념물 지정, 특정도서 및 자연환경 보전지역으로 지정, 등대 설치, 우표발행, 독도개발 등이 있을 것이고, 외국문헌과 외국지도의 독도 명칭 표기에 대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국제사법법원의 제소에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논리적인 대응이 필요할 것이며, 일본의 부당한 주장에 대해 강력한 항의를 할수 있는 외교적 능력도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독도 방어훈련과 같은 군사적인 측면도 무시해서는 안된다. 독도는 우리의 영토이다. 영토수호는 우리의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 가치이고 만약에 발생할 수 있는 일본의 어떤 도발에도 강력한 대응으로 맞서야 할 것이다. 민간차원에서는 독도문제의 심층적인 연구와 국제적인 여론 조성을 위한 민간차원에서의 홍보, 독도방문 활성화와 같은 다양한 관점에서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8. 결론 및 개인적인 의견
독도는 우리의 대한민국의 땅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구호만 외칠 뿐 마땅히 해결책을 못 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독도는 경제적, 지질학적, 군사적, 과학적, 환경적으로 무한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우리나라의 지리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풍부한 수산물을 얻을 수 있으며, 기름 한 방울 나오지 않는다는 말은 어렸을 때부터 귀가 닮도록 들어왔을 것이다. 그런 우리나라에 희망의 빛이 조금 보이 기시작한 것이 바로 독도 이다. 천연가스 층이 발견되고 수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했을 것이다. 과거 삼국사기에 신라본기 이사부조, 고려 무신정권의 우산국 개척시도, 조선왕조 기록들을 보면 독도는 고려왕조, 조선왕조를 이어온 반 만년 역사를 이어온 한국인의 삶의 공간인 것이다. 우리는 그 가치를 충분히 알고 불순한 무리들의 억지를 물리치고 우리의 삶의 터전이자 밥그릇을 지켜야할 것이다. 나또한 독도가 우리의 삶에서 독도가 이처럼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이라고는이번 레포트를 통해 알게 되었다.
<참고자료>
독도 영유권 분쟁에 관한 연구, 이시영
독도 분쟁의 국제법적 이해, 이석우
독도영유권에 대한 국제법적 쟁점, 이환규
  • 가격3,9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21.05.11
  • 저작시기2021.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149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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