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학의 한국전파와 퇴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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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주자학의 한국전파와 퇴계학

본문내용

그 규모가 지극히 크지만 그 知로써 말하면 사물에 취하여 궁리·격물하는 것을 말했고 그 行으로써 말하면 성의·정심·수신으로 말미암아 미루어서 家國에 미치고 천하에까지 통달한다. 그 가르침이 순서 있고 배움이 實을 힘쓰는 것이 이와 같다. 그 治를 논함도 存心과 出治의 本을 말할 뿐이요 夫子가 顔淵에게 고한 것 같은 그런 제도·문장의 類에는 미치지 않았다. 무슨 까닭인가. 四代에 損益하여 百王의 大法을 삼은 것은 顔淵만이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학으로 말하면 그것은 천하를 위하여 通法을 세운 것인데 聖人이 어찌 천하의 英材를 거짓으로 속여 모두 爲學初에 等해서 일러 주겠는가?…… 대저 儒者의 學은 마치 높은데 오르는데 낮은 곳으로부터하고 먼 데 가는데 가까운 곳으로부터 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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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곳으로부터 하고 가까운 곳으로부터 하는 것이 迂緩한 것 같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를 버리고 또 어디로부터 높고 먼데로 갈 수 있겠는가? 노력하여 점진한 나머지 이른바 높고 먼 것이 낮고 가까운 것에 떠나지 않으면서 얻어지는 여기에 釋老의 學과 다른 점이 있는 것이다. 이제 한 발자국도 떼지 않고 문득 끝없이 높은 곳으로 오르기를 責하고 發도 아니하고 급히 끝없이 먼 곳으로 나아감을 期하니 천하에 이런 이치가 어디 있겠는가? 또 자세한 것을 다 캐보지도 못하고 한갖 그 一言半句의 말만 믿어 얻음이 있고저 한다면 이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함부로 제멋대로 상상 억측하여 큰소리로 속이고 놀래워 마침내 하늘을 속이고 성인을 속이는 罪에 빠지게 하는 것이니 그 해됨이 어찌 소소한 文義의 差誤만에 限하랴?
라고 말하고 있다. 이상 인용한 두 조항에 의하여 보면 퇴계가 학문하는 방법과 그 가르치는 방법은 이른바 「가르침이 순서있고 배움이 實을 힘쓴다」는 그러한 類의 것임이 이미 명백히 드러났으니 더 지적하여 증명할 필요가 없다. 또 文集 권19 「重答黃仲擧」란 글에는 이런 말이 있다.
至善과 一貫은 비록 두 가지 이치는 아니지만 그러나 「至善」은 事事物物이 제각기 가지는 알맞춤하게 잘 맞는 도리를 가리켜 말한 것이요 「一貫」은 大原·大本으로부터 천차만별한 것에 이르기까지 일제히 꿰뚫어진 것을 말하는 것이다. 성인의 마음은 渾然한 「하나의 이치(一理)」이면서 두루 응하여 제가끔 들어맞는 것이 각각 다르다. 가리키는 곳이 같지 않고 立言의 취지도 다르므로 理가 같다 해서 아무렇게나 혼동해서 하나로 간주해 말할 수 없다. 하물며 至善에다가 「止」字를 더해 놓았으니 正히 曾子가 그 「用」에 있어서 일에 따라 정밀하게 관찰하고 힘써 행하는 일을 말한 것이다. 어찌 衆理가 한군데 모였다 해서 「一貫」과 그 뜻을 같이해서 되겠는가? 矩의 用은 비록 지극히 광범하지만 그러나 다만 「마음을 가지고 사물을 헤아려 그 均齊·方正을 얻는다」( 矩의 朱子해석)는 점에 취하여 말한 것이요, 制度文章을 말한 것은 본디 아니다. 당시에 顔淵이 물은 것은 천하 다스리는 방법을 물은 것이요 學을 논한 것은 아니다. 大學으로 말하면 사람에게 「修己·治人」의 방법을 가르치는 것인데 「存心·出治의 本」을 버리고 문득 이런 [制度같은 것을] 언급한다면 이는 순서를 거꾸로 하는 것이 아니겠으며 수용에 緊切치 않은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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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항에서 至善과 一貫이 같은 뜻이 아님을 변별하였다. 대학에서는 制度文章에 언급하지 아니하여 논어의 「顔淵問爲邦」章과 다르다고 하였다. 대저 퇴계는 자신이 학문함에 있어서나 남을 가르침에 있어서나 반드시 먼저 前者의 항목(즉 存心·出治의 本)을 注重하고 점차로 後者의 항목(즉 制度文章)에까지 따라 미치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퇴계가 여기서 반드시 분석을 가하는 요지의 소재이다 그는 또 말하기를
대저 천하만물을 통하여 다만 이 하나의 理일 뿐이므로 義理의 말이란 두루 모아 합해서 말하면 같지 않은 것이 없고 하나 하나 지적해 말하면 서로 근사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하겠으나 당초 성현의 立言한 본의가 그렇지 아니함을 어찌하랴? [그런데 그것을 합해서 말한다면] 經訓을 發明할 수 없고 도리어 반대로 진리를 어둡게 하고 實見을 어지럽히는 것이니 이것이 학자의 通弊이다. 옛 사람이 종신토록 講學해도 언제나 부족함을 느끼는 까닭은 다름아니라 의리의 隱微하고 정밀한 곳이 이처럼 틀리기 쉽고 알기 어렵고 또 착수해서 실천하기도 용이치 아니하여 그만둘래야 그만둘 수도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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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도 퇴계의 학문을 논함은 여전히 성현의 經訓과 先儒의 遺言에 대하여 愼密히 會하고 독실히 실천하는데 중점을 두고 廣博하게 끌어다가 두루 합쳐서 학설을 내세우고 空談·高論을 요란스레 버려 놓는 것을 가장 경계한다. 평일에 친구들과 理氣를 해석하고 心性을 辯說함에 있어서 무릇 드러내 밝힌 바가 대개 모두 이와 같다. 다만 만년에 奇明彦과 四端七情의 異同을 토론하면서 往復四五回에 걸쳐 이 문제에 대한 끊임없는 변론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이 편에서 상술하지 않고 다음 율곡편에서 附帶하여 언급하겠다. 요컨대 사색을 일부러 일으키고 이론을 내세워 주장하는 것은 퇴계의 학문하는 정신의 所在가 아닌것 같다. 그러므로 우연히 미처 알지 못한 곳이 있다 하더라고 그것으로써 퇴계의 결점으로 볼 수는 없다.
한국의 先儒로서 朱子를 깊이 연구한 사람은 퇴계이후로 이이 율곡이 있고 또 그 다음으로 송시열 尤菴이 있다. 尤菴은 말하기를 「이황의 珥에 대한 愛重·許與는 그 문집을 상고해 보면 알 수 있다.」고 하였고 또 「이황이 學을 논함에 있어서 珥의 說을 쫓은 것도 많다. 聖學十圖·中庸小註 같은데서 볼 수 있다.」고 하였다.(宋子大全百六十二浦渚趙公神道碑銘序) 퇴계가 卒한 뒤 율곡이 謚을 청하여 이르되 「이황은 性理에 沈潛하여 옛 名賢도 이에 지나갈 사람이 없다.」(宋子大全拾遺卷八栗谷墓誌銘) 하였고 또 그를 위해 문묘에 종사할 것을 청하였다.(宋尤菴의 浦渚趙公神道碑銘) 이것으로 보면 율곡은 퇴계에 대하여 본래 그 정신이 일관되었고 학파를 이어 받았던 것이다. 비록 몇 개의 字義解釋에 있어서 諍論한 바 있었지만 율곡의 퇴계에 대한 崇仰과 존중의 심정에는 조금도 감소된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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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 은 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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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22페이지
  • 등록일2002.02.15
  • 저작시기2002.0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9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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