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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나지 못했음은 이들 역시 국가교회를 세웠다는 것을 보아서 알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돌아오셔서 천년왕국을 통치하시기까지는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카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분명히 구분하셨다. 그런데도 콘스탄틴이 국가교회를 세운 이래 로마 카톨릭에 의해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국가교회가 개혁자들에 의해서도 버젓이 세워지고 말았다(독일 스웨덴 등지의 루터 교회, 스코틀랜드 화란 등지의 개혁교회, 혹은 장로교회, 칼빈에 의한 스위스 제네바의 신정통치, 영국의 성공회 등).
교회사를 통해 볼 때 루터, 칼빈, 쯔빙글리 등은 정치적, 종교적 대적들을 다루는데 있어 믿음으로 살려고 하지 않았다(롬 1:17). 그들 모두 정부의 주도 하에 군대의 보호를 받음으로써 "징세"를 면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분명한 믿음의 고백이 없이 태어나면 자동적으로 국가 교회의 회원이 되는 제도하에서는 믿지 않는 자들과의 성별이 있을 수 없게 되며(고전 6장) 이로써 교회의 순수성은 사라지고 말았다. 미국은 국가와 종교와의 엄격한 분리라는 침례교 원칙에 입각하여 세워진 역사상 유일한 나라로서, 종교의 자유는 물론 교회의 순수성을 지킬 수 있었던 모범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유아세례와 국가교회라는 두 가지 사악한 교리는 시프리안과 어거스틴이 심어놓은 것으로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 로마 카톨릭의 교리를 완전히 내버리지 못한 성도들의 삶에 늘쌍 썩은 열매를 맺어오고 있다. 반면 노바티안, 도나티스트, 폴리시안, 보고밀, 알비겐스, 왈덴시안들을 선조로 두고 있었던 침례교도들은 로마 카톨릭과의 단절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이들은 처음부터 믿음을 고백하는 성인들에 대한 침수에 의한 침례와 교회와 국가의 엄격한 분리라고 하는 독립침례교회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침례교도들과 재침례교도들에 가해진 가혹행위(칼빈은 세르베투스가 자신의 교리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그를 화형에 처하도록 했다. 쯔빙글리 역시 칼빈에 동조했다.), 농민혁명 및 과격한 폭동 등과 같이 성경적으로 합당하지 못한 부작용들이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4. 종교개혁의 결과 및 평가.
(1) 로마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중세적 - 로마가톨릭
종교개혁적 - 프로테스탄트
인의론
다른 교리 중의 하나
(토마스 아퀴나스)
그리스도적 삶과 신앙의 중심
신론
독존적 하나님
(헬레니즘적 존재이해)
우리를 위한 하나님
(십자가의 모순 속에서 경험하는 하나님)
인간이해
집단적
(신앙의 집단성이 모든
것을 지배)
개인적
(개인이 교회를 위한 예언자적 주체)
교회와 사회
교회제도와 정치제도의
불분명한 혼합
세상통치와 영적인 것 구별
(율법과 복음 구별)

● 프로테스탄티즘
독일 철학의 연원(淵源)은 멀리 중세 말기의 M.에크하르트를 대표로 하는 독일 신비주의자들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것은 형식화된 스콜라 철학의 사변에 대하여 신(神)과 직접 합체(合體)하는 영혼의 풍부한 내면성을 획득하고, 그리스도교에 다시 생명을 불어 넣으려고 하는 운동이었다. 여기에 자리잡게 되는 풍부한 독일적 내면성의 원형(原型)은 16세기의 종교개혁자 M.루터에 이르러 완전히 꽃을 피운다. 로마 가톨릭 교회 지배에 반기를 들고, 오로지 신앙 원리에 의해 직접 신 앞에서는 내면적 ·자율적인 인격을 확립했다.
(2) 기독교세계의 통일을 파괴 즉, 기독교세계의 분열을 초래.
(3) 일부 프로테스탄티즘(특히 Calvinism)으로 인해 근대직업윤리와 새로운 금욕적인 생활윤리가 탄생
1 칼뱅주의의 ‘예정설(豫定說)’은 인간은 최초에 신의 뜻에 따라 구원 또는 영벌(永罰)의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
2 신자들이 자신도 선택된 자들 가운데 들어 있는가의 확인의 문제이다.
3 이에 대한 일반 신도들의 해답은 기독교적 소명(召命)에 따른 직업 활동으로 경쟁에서 이기고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바로 하느님에 의해 선택된 자가 되는 현세적 징후라고 생각하였다.
4 칼뱅주의 윤리관에는 근면, 검소, 성실 등 ‘세속적 금욕주의’를 강조하였다. 따라서, 이윤을 저축하고 생산 활동에 재투자하여 부를 축적함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더욱 굳어졌다. 이것이 서구인의 직업 의식과 자본주의 정신의 합리화 원인이 되었다.
5. 종교개혁의 역사적 의의
종교개혁은 루터의 ‘하느님의 뜻의 발견’에서 비롯되는 그리스도교의 혁신운동이었으나,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도 세계적으로 크게 영향을 미쳤다. 이로써 근대 세계와 근대인이 탄생하였다. 종교개혁 후에는 계몽주의(啓蒙主義)가 일어나, 언뜻 비종교적 합리주의가 근대사회의 특징이 된 것 같이 보였지만, 근대인을 ‘마술’에서 진정으로 해방시킨 것은 단순히 자연과학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합리적 ·과학적 태도를 표출한 종교개혁의 정신이었다.
루터와 칼빈으로 대변되는 종교개혁은 많은 사람이 지적한 대로 아무것도 개혁하지 못한 채 혁명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하나님이나 성경에 의해서도 개혁되지 못했으며 끊임없는 개혁의 요구에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 종교개혁자들의 "업적"은 신약교회를 초대 교회의 원래 모습으로 회복시켰다던가 이 교회로 영적 기능을 다하도록 만들었다기 보다는 올바른 성경의 선택과(루터, 칼빈, 쯔빙글리, 베자 등을 비롯한 모든 개혁자들은 카톨릭 성서를 버리고 표준원문을 택하는 분별력을 갖고 있었다.) 이 성경을 읽고 사용하는 모범을 보임으로써 성경공부를 활성화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종교개혁이 이루어낸 가장 중요한 업적은 로마 교회를 분열시켜 국가교회를 만든 것도 아니고 성도들의 제사장 직분을 강조한 것도 아니고 공공교육과 자본주의를 고무시킨 것도 아니다. (앞서 지적했듯이 이 모두가 종교개혁의 성과임은 물론이다.).
종교개혁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신약 지역교회들이 전세계적으로 표준원문을 사용하도록 만든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종교개혁과 더불어 사탄의 신부가 쓰던 성서는 전세계적으로 내팽개쳐졌다. 이 부패한 성서가 버려지자 암흑시대는 끝났고 참된 그리스도의 신부(솔 6:9)는 강렬하게 빛나기 시작했다(창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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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07.17
  • 저작시기2002.0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98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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