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요구하는 군 조직에서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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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바람직한 軍事 준비태세는...
1)우리 나라 군조직에서의 리더십
2)올바른 ‘리더십의 회복’ 기대
3)여기가 아닌가벼....
4)미국이 보는 칭기스칸의 리더십

2. 대대장 지휘소고
1)대대장이 고뇌해야 하는 이유
2)무엇을 고뇌하고 실천해야 하는가?
3)군무의 당위성 인식과 정신적 지주 확립
4)고도의 전투태세 유지 및 경계강화
5)건전한 간부 근무자세 확립
6)현재에서 뒤돌아보는 여유를

3.IMF 경제전쟁시대 왜 이순신인가

본문내용

전쟁시대 왜 이순신인가
이순신의 청렴결백과 겸허한 마음가짐. 그리고 유비무환의 자세. 솔선수범과 인간애에 바탕을 둔 리더십, 용기와 결단, 거북선 개발과 같은 창의성, 철저한 기록정신, 뛰어난 정보활용능력과 전략 등은 오늘날 경제전쟁에 꼭 필요한 요소다.
임진왜란에서 이순신에게 참패한 일본인들은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해군을 강화하기 위해 이순신의 업적과 전략을 깊이 연구했으며 그를 존경해 마지않았다. 러시아 발틱함대와 일전을 치르기 위해 출항준비를 하던 일본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함대의 한 함장은 이순신 장군의 영혼에 기원하는 의식을 갖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일본의 대표적 역사소설가 시바 료타로(司馬遠太郞)는 “언덕 위의 구름”이라는 저서에서 일본 해군소장 가와다 이사오(川田功)가 쓴 “포탄을 뚫고”라는 책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가와다가 세계 제일의 해장이라고 말한 이순신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군대가 조선에 침입했을 때 해전에서 이들을 멋지게 무찌른 조선의 명장이다. 이순신은 당시 조선의 문무 관리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너무도 청렴한 인물이었고, 군사 통제와 전술능력, 충성심과 용기가 실로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한 이상적인 군인이었다. 영국의 넬슨 이전에 바다의 명장이라 하면 이순신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인물의 존재는 조선에서는 그후 잊혀져버렸지만 일본인들은 그를 존경하여 메이지 시기 해군이 창설됐을 때 그의 업적과 전술을 연구했다.
진해만으로부터 부산진에 걸친 수역은 이순신이 그 수군을 이끌고 일본 수군을 괴롭혔던 옛 전장인데 우연이지만 도고 함대는 그 근처에서 기원했다. …그들이 옛날 동아시아가 낳은 유일한 바다의 명장인 이순신의 영혼에 승리를 염원하는 기도를 올렸음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이순신 연구 방향성 잃은 측면도 지적해야
러·일전쟁 때 러시아 수군을 무찌른 일본의 해군제독 도고 헤이하치로는 일본의 영웅이 됐다. 그는 자신이 영국의 유명한 해군제독 넬슨에 버금가는 군신(軍神)이라는 말을 듣고 “영국의 넬슨은 그 정도의 인물이 못된다. 해군 역사상 군신이라고 할 제독이 있다면 이순신 한사람뿐이다. 이순신과 비교하면 나는 하사관도 못된다” 라고 말한 바 있다. 사실 도고 함대는 일본 정부가 외국에서 빚을 끌어다 전함을 사들이고 해군을 적극 육성하여 상당한 전력을 보유했다. 이에 비해 이순신은 수군 폐지론이 두번씩이나 거론되고 조정에 불려가 감옥에 갇히는 등 갖은 역경 속에서 아주 빈약한 전력으로 세계 해전사에서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23전 23승의 위대한 승리를 이룩했다.
이순신에게 참패당한 일본 사람들은 이순신을 연구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해전에서 승리했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우리나라를 병합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순신의 업적과 전략을 깊이 연구하거나 본받지 못해 임진왜란이 끝난 지 38년만에 병자호란(丙子胡亂)에 크게 시달리고 한일합방으로 결국 나라까지 일본에 빼앗겼다.
이순신에 대한 우리의 연구가 부진하다고는 할 수 없다. 이미 많은 학자들이 거북선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연구 및 이순신의 전략과 전술에 대한 분석 등을 시도했다. 또한 이순신 전기를 저술해 그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노력해왔다. 그 가운데 과거 군사정권이 자신의 필요성 때문에 이용한 면도 없지 않아 이순신 연구가 오히려 바람직한 방향성을 잃어버렸던 측면도 지적됐다.
그러나 역사를 과거를 통해 현재를 조명하고 미래를 투시하는 거울이라고 한다면, 그 지울 수 없는 역사 속에 여전히 빛나는 이순신을 통해 우리는 분명 우리의 현재를 짚어보고 미래를 향해 나갈 준비를 해야만 한다.
해군 등 군대에서는 물론 정부와 기업·학계 등 각계에서 이순신을 새롭게 배워야 한다. 필자는 경영학을 전공하고 경영전략을 연구하는 사람이지만 이순신에 대한 책을 읽을 때마다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그의 유별난 청렴결백뿐만 아니라 겸허한 마음가짐에 따른 유비무환의 자세, 솔선수범과 인간애에 바탕을 둔 리더십, 용기와 결단, 거북선 개발과 같은 창의성, 철저한 기록정신, 뛰어난 정보활용 능력과 전략 등은 오늘날 우리가 경제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다. 경제전쟁에서 지면 얼마나 비참해지는지는 미국과 소련이 주축이 됐던 동·서냉전의 결과로도 잘 알 수 있다.
미국은 무기를 가지고 소련을 공격하지는 않았지만 경제력에서 낙후한 소련은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다. 소련은 경제전쟁에서 패배해 그 존재가 없어지게 된 셈이다.
무기로 싸우는 전투에서 패한 나라는 패배의 수치를 국민 모두가 뼈저리게 느끼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일치단결, 국가발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과 독일이 짧은 기간에 미국·영국·프랑스 등 승전국들을 압도할 정도의 경제발전을 이룩하여 세계적인 강국으로 다시 부상한 것이 좋은 예다. 이에 반해 경제전쟁은 서서히 진행되는 특성을 가졌기 때문에 국민들은 패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뼈저리게 느끼지 못한다. 때문에 국민적 자각이나 분개심도 적어 상황을 역전시키기가 더욱 어렵다. 마치 만성병이 급성병보다 치료하기 어려운 이치와 같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혹독한 경제전쟁에서 패하여 초라한 처지가 됐다. 국제경쟁력이 취약해 만성적인 무역적자와 막대한 외채에 허덕이다 급기야 IMF의 구제금융을 받게 됐다. 많은 기업이 도산했고 실업자가 급증하고 있다.
경제전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경제에 관한 한 국경의 테두리가 점점 희미해질 것이며,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으로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국가간 존재했던 각종 규제와 장벽이 제거되고 있으며 서로간 차별없는 경쟁이 허용되는 무한경쟁체제로 진입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우리는 무적함대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의 자동차, 전자회사 등 세계적인 기업과도 본격적인 경제전쟁을 국내외에서 치르지 않으면 안된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냉철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에 대비하고 있는가. 이러한 물음에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자세와 전략을 가다듬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면에서 많은 역경에도 불구하고 백전백승한 이순신의 정신과 전략은 우리 모두의 귀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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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08.13
  • 저작시기20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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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01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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