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료윤리- 죽음에 붙여진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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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몸 말 : 죽음에 대한 개념 이해

본문내용

-119
.
Ⅲ. 나가는 말
) 홍인태저, pp.116-119
"맨 나중에 멸망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고린도전서 15:26)"
"만일 우리가 죽음이라고 불리우는 원수와 투쟁중에 있다면, 나는 마땅히 우리가 죽어가는 그 순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 죽음에 대해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이 원수와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 알 필요가 있으며, 또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친구들의 피할 수 없는 죽음에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알 필요가 있는 것이다."라고 빌리 그레함 목사는 그의 책 『죽음이란 무엇인가』의 첫 장에서 말했다.
과학과 무신론자들은 영적 특성과 내세사상을 부정하기 위해 죽음은 이 세상 삶의 끝이며 단절로 이해하며 오로지 현실의 삶만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는 유물론적 이해를 견지한다. 그러나 죽음이 생물학적 소멸로서만 이해되어 버린다면 그러한 삶은 의미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이러한 삶은 현세적 삶에로 더욱 집착된 삶을 추구하게 되어 삶 자체에서 허무만 더 쌓이게 되고, 또한 죽음을 기피하게 만들고, 죽음 속에 있는 깊은 의미를 깨닫지 못하게 할 뿐이다.
정신병리학자 로스는 임종의 단계에서 부인, 분노, 절망, 타협 그리고 수용의 다섯 단계로 구분하면서 "죽어 가는 사람에게 반드시 그 죽음에 대한 의미를 깨닫도록 준비할 시간과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가 삶의 우선 순위를 정해야 하는 필요성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죽는 것을 아는 인간의 본성이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애초에 하나님께서 넣어준 원형(original image)의 회복에 대한 갈망이다. 이 문제를 바르게 가르치는 복음은 - 죽음은 비밀과 구원을 인내하는 말씀 - 죽는 이의 유용한 지침서로서 가치가 있다. 어쨌든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으로 안내를 받지 않고서는 죽음의 수수께끼를 이해하기 위한 시작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모든 종교는 이 수수께끼를 푼다는 미명하에 등장했고 지금도 작위적인 종교집단은 인간의 본성인 종교적 심성을 자극해 미로에서 고귀하고 성스런 생애를 탕진하게 한다. 에덴 동산의 그 사단은 지금도 끊임없이 인간을 속이는 일의 임무를 진행하고 있다. 사단의 실체는 절묘하므로 종교, 철학, 자선 등의 허울 좋은 가면을 쓰고 다가온다. 그러므로 이 땅에 죽음이 계속되는 한 종교의 극성과 그 덫의 위기는 더해 갈 것이다.
죽음은 인생항로의 끝이며 생의 중단 혹은 종결로 아는데 인생항로의 끝이라는 것은 죽음을 완성으로 보자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죽음은 인간이 영적 인격으로써 감행하는 결단의 완성이다. 죽음이 없다면 만사는 시들하게 되어 삶은 지극히 권태로울 것이고 삶은 무의미하게 될 것이다. 또한 죽음이 없다면 삶은 피상적이 되고 삶의 방향조차 확립되지 못할 것이며 책임의식 또한 상실되고 말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죽음의 불가피성은 필요성이 된다고 하겠고 죽음이 있기에 삶은 의미와 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실패한 인간을 위하여 부활이라는 새로운 미래를 열어주심으로써 믿음과 희망과 사랑가운데 살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다. 그러므로 인간은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 하나님께 등을 돌림으로써 죄를 짓고 - 불신앙 가운데 죄의 상태에서 - 죄로 말미암아 무의미하게 죽느냐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십자가의 확신을 믿고 죽느냐는 것이다. 후자의 죽음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죽음이다. 죽음은 무상한 종결이 아니며 성취이며 자아완성의 행위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죽음의 이해를 종합해보면 죽음은 가장 민주적인 법칙으로 만인에게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번의 상황을 직면케 했다는데 하나님의 공의가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죽음은 삶에 과정 속에 공존하는 한 부분으로써 죽음의 삶의 가치와 의미를 갖게 하는 완성의 행위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에게 부여된 생명의 기간동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답게 삶을 완성시켜야 한다.
여기서 목회자는 죽음의 현실 앞에서 죽음이 무서워서 괴로워하는 사람, 오래 동안 함께 살고 싶었지만 불의로 죽음을 맞은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슬퍼하는 사람을 돕는 일을 사명감을 갖고 해야한다. 실로 죽음은 불가사의 영역이다. 그러나 목회자는 항상 그 죽음 너머에 대한 대답을 탐구하는 실천철학자들이다. 죽어 가는 사람에게 그가 죽어간다는 사실을 반드시 밝혀주어 그들이 평화롭게 죽음을 수용하고 완성된 죽음을 준비하도록 돕는 것은 마땅히 목회자가 수행해야 될 일이다. 그리고 목회자들은 실천신학적 측면에서 인간의 많은 신비를 함축하고 있는 죽음에 대한 성서적 이해와 접근이 있어야 하겠다.
죽음을 두려워 함
희망
나로 하여금 위험을 벗어나 피하고자 축원을 올리게 마옵시고, 위험을 당하여도 두려움 없기를 축원케 하옵소서.
나로 하여금 고통을 억제하기를 비는 것이 아니라 용기로써 고통을 이기도록 빌게 하옵소서.
인생의 싸움터에서 동지들을 찾을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힘을 찾도록 하여 주소서. 고생스런 두려움 속에서 구원을 받고자 허덕이는 것이 아니라 끈기로써 내 자유를 이겨 찾도록 희망하게 하여 주소서.
나로 하여금 겁쟁이가 되어 내 성공에서만 당신의 자비를 느끼는 일이 없게 하여 주시고, 내가 실패를 당할 때 당신의 손이 나를 잡는 것을 발견하게 하여주소서.
필사의 희망을 걸고 나는 그니를 찾아 온 방안 구석구석을 돌았나이다.
그러나 그니를 찾지 못했나이다. 내 집은 작아서 한번 헤어진 것이 다시는 회복될 길이 없나이다.
하지만 임의 저택은 영원하옵기, 주여, 내 그니를 찾아 임의 문 앞에 왔나이다.
나는 임의 저녁 황금지붕 밑에서 안타까운 눈을 들어 임의 얼굴을 우러러보나이다.
나는 아무것도 사라질 리 없는 영원의 언저리에 왔나이다-희망도 행복도 또 환상의 얼굴도 눈물을 통해 보이지 않나이다.
오, 허무한 이 내 인생을 원대하고 충만한 저 대양 속에 담가 넣으소서. 한 번만이라도 이 몸으로 하여금 저 누리의 총체속에서 잃어버린 따뜻한 손길을 느끼게 하소서.
끝으로 라빈드라나드 타골의 두 편의 시
) 커블러로스저, p. 13, p.179
를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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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5페이지
  • 등록일2002.10.11
  • 저작시기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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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06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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