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뒤뷔페의 반문화 예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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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 론

Ⅱ. 반문화 예술의 개념형성
1. 반문화 예술의 전제-뒤뷔페의 서구문화론
2. 반문화 예술의 전형으로 제시된 아르 브뤼뜨

Ⅲ. 반문화 예술의 조형 표현

Ⅳ. 뒤뷔페의 반문화 예술론에 대한 문제 제기

Ⅴ. 결 론

본문내용

obbe-Grillet), 이오네스코(Ionesco), 베케트(Samuel Beckette), 싸로뜨(Nathalie Sarraute) 등의 반문학 작품과 뒤뷔페의 반회화 작품을 예술가들의 실존적 자아확인이라는 관점에서 그 동등성과 상응성, 일치성을 밝히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전쟁 직후에는 까페 라이프를 통해 미술가와 문인들간의 화합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었고, 그 둘 간의 교류와 정신적 영향력이란 매우 지대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뒤뷔페의 경우, 특히 막스 자콥(Max Jacob)과 프랑시스 퐁주(Francis Ponge) 등의 시인과 막역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예를 들어 M. 자콥이 동음이의어를 사용하면서 익살과 파격어법, 거친 언어를 "미발달 단계의 불완전하고 거친 다이아몬드원석"이라 하여 추구한 것이라든지, 현대시의 주류로부터 벗어나 있던 F. 퐁주가 정확한 언어확대경을 이용하여 자연의 요소들-대지, 식물, 곤충생활-을 형상화한 것 등은 단순성에 대한 뒤뷔페의 관심과 근본적인 대지회귀 철학, 보편적 인간형상에 대한 애정, 특히 원료를 분기시키는 초인적인 노력 등과 밀접히 연결된다.
이상을 통해 우리는 뒤뷔페의 '반문화' 사상이 수정을 요하는 독특한 문화 인식에서 유래한 것이며, 더 넓게는 서구문화에 내재해 있던 반이성주의와 전후의 시대적 요청에 의한 하나의 징표였음을 인식하게 된다.
Ⅴ. 결 론
본문을 통해 살펴본 바와 같이 장 뒤뷔페의 반문화적 예술론은 비록 재고의 여지가 있는 문화 영역 내의 개념이었으나, 그의 서구문화에 대한 반성적 견해와 무관심의 영역이었던 아르 브뤼뜨(Art Brut)에 대한 새로운 인식 및 평가는 문화의 영역을 확대시킨 결과를 낳았으며, 마띠에르 탐구를 통하여 조형적으로도 커다란 공헌을 하였으므로, 뒤뷔페가 미술사에 끼친 영향력은 정당한 평가가 있어야 한다.
먼저 형상 및 재료 활용 면에서 뒤뷔페의 이념은 코브라(Cobra) 그룹에 영향을 미쳤다. 코브라는 유럽대륙에서 초현실주의 이후, 즉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가장 먼저 일어난 단체운동으로서, 비록 1948년~50년으로 단명하였으나 전쟁 전의 표현주의적 성향으로부터 이후 앵포르멜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성격을 보이고 있어, 이들의 위치는 자못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그들의 생성은 당시 프랑스 미술계와의 상당한 교류 이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특히 거의 스캔들에 가까왔던 뒤뷔페의 작가적 성공이 그들의 결성 계기로서 작용하였다는 것이 지적되고 있다. 특히 구상적 상징주의를 그룹의 특성으로 파악한 도어 애슈톤(Dore Ashton)은 형상의 기이함과 재료의 물질성 자체를 형태와 동일한 수준으로 끌어올린 뒤뷔페가 그들의 고유성을 강화하는 데 큰 영감을 주었다고 단정하였다. 그들은 동화적 주제나 아동화 기법, 그리고 원시적 경향의 안료사용 등으로 뒤뷔페의 사상적, 조형적 특성을 수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두번째로 재료를 통한 반문화 사상의 표현과 특히 1945년~1946년 사이에 발표한 일련의 오뜨 빠뜨(Hautes P'tes) 작품들은 1951년 미셸 따삐에(Michel Tapi3)에 의해 주도된 앵포르멜 운동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고 평가될 수 있다. 1950년대에 미술 분야에서는 새로운 미술에 대한 방향 모색이 시도되었으며, 이는 평론가인 따삐에를 통해 앵포르멜(Informel)의 형식으로 구체화된다. 철저한 반근대주의 사상 위에 위상기하학(Topology)이나 집합론, 양자역학, 신비적 그리스도교, 노장사상까지를 결합시켜 이 운동의 토대를 만든 따삐에는 1951년의「격정의 대결」전 및 1952년의「앵포르멜의 의미」전을 통해 이 운동을 완성하였다. 미지의 것, 초월적인 것, 포착될 수 없는 비정형의 마띠에르를 중심요소로 모색하였던 그는 뒤뷔페, 포트리에, 볼스, 마띠유 등을 이 운동의 선각자로 꼽고 있다. 이처럼 재료의 표현력을 강조한 뒤뷔페의 그림은 이후 이태리의 뷰리(Alberto Burri), 스페인의 따삐에스(Antonio Tapi9s), 독일의 슐체(Schultze) 등에 계승되어 물질주의 회화의 융성을 맞이하게 된다.
세번째로, 지식층 문화에 대한 반성적 견해는 팝아트(Pop Art) 문화에 자양분을 마련해 주었다. 뒤뷔페는 1951년 11월부터 1952년 4월에 걸쳐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회고전을 개최하고,「반문화적 입장(Position Anticulturelle)」이란 강연을 한 바 있는데, 이는 특히 1950년에서 1956년 사이 시카고에 거주했던 클레스 올덴버그(Claes Oldenberg)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올덴버그는 "장 뒤뷔페에 대한 나의 찬미는 나로 하여금 가장 원시적인 측면, 빈민가의 거리풍경 시기에 도달케 하였는데, 이는 형상화의 열쇠가 정신성의 연구로부터 도래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 또한 올덴버그는 의미없는 상부 구조를 파괴하기 위하여 언어유희를 감행하였는데, 이 또한 쓰여진 언어 대신 입소리를 반문화의 특성으로 본 뒤뷔페의 사상에서 연유한 것이다.
넷째로, 비조형적인 재료의 활용과 일상생활의 폐물을 찬양했던 뒤뷔페의 마띠에르 탐구방법은 60년대의 신사실주의(Nouveau Realisme), 네오 다다(Neo-Dada) 등과 같은「폐품 문화(Junk Culture)」의 도래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예술품에 비예술적 재료를 도입하는 일은 큐비즘의 꼴라주를 시조로, 미래주의자들에 의해 하나의 이념으로 제안된 바 있으며, 다다주의자들의 신랄한 시도들과 특히 슈비터스(Kurt Schwitters)의 진지한 작업을 통해 20세기 전반에 이미 실현된 바 있다. 60년대에 다시 도래한 폐품문화는 현대의 대량소비사회의 폐기물을 예술에 재활용한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인데, 뒤뷔페가 재료들에게 보인 각별한 애정과 특히 폐품을 활용한 3차원의 조각들은 이들에게 직간접적인 모범을 보인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장 뒤뷔페의 반문화 예술론은 현실 속에서 새로운 문화에 영입되는 결과를 맞이하긴 하였으나, 아르 브뤼뜨를 관심의 영역으로 끌어올리고, 그 조형적 가능성을 실험하여 미술사의 지평을 넓혔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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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3.11.19
  • 저작시기2003.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33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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