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의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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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진행과정

Ⅱ. 경제위기의 원인
1. 현상적인 원인
1) 대내적인 원인
2) 대외적인 원인
4) 한국 신용 등급의 단기간내 과도한 하락
2. 근본적ㆍ구조적 원인
1) 경제 발전 전략 측면
2) 생산성 측면
3) 정치ㆍ역사적 측면
4) 문화적 측면

본문내용

것이다.
한국 경제의 성장은 노동력과 실물 자본의 축적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왔으며 생산성의 향상은 규모의 경제에 크게 의존함으로써, 이들 요인들이 약화될 때 크게 위축되는 취약한 성장 구조를 보이고 있다. 특히 경제 성장을 위해 투자를 증가시킬 경우 핵심 부품 등 원자재와 자본재의 수입이 증가하고 이로 인해 경상 수지를 악화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제거하지 않은 한 장기적으로 외환 위기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를 회피하기 위해서는 자본 투자를 확대하는 데 중점을 두기보다는 자본 투자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고 설비 투자의 효율을 높이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 개발이나 자동화 투자가 중요하며 지금까지의 무계획적인 설비 확장이나 업체간 중복 투자를 지양해야 할 것이다.
3) 政治ㆍ歷史的 側面
한국 경제가 금융 위기를 경험하게 된 원인은 비단 경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측면에 기인한 바가 크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 경제에 커다한 완충 역할을 했던 것 중의 하나가 냉전이었다. 한국에서 어떤 중요한 경제적 위기가 발생했을 때 그것은 곧 안보에 위험이 되는 것으로 간주되어 미국이나 일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1989년 이전에는 서울은 언제든 워싱턴과 도쿄 양측이 개입해서 도와 주기를 기대할 수 있었다. 1980년대 초의 경제 위기 때를 가장 좋은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은 국제통화기금(IMF)과 같은 기구를 통하여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다자주의 즉 다자간 공동 정책에 의존하는 것을 훨씬 선호하고 있다. 이것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정치 경제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반세기의 식민지와 6ㆍ25 전쟁을 통해 완전한 빈곤을 경험하였고 중국과 소련, 일본과 미국 등 열강들 사이의 냉전 대립의 중앙에 놓이게 되었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이러한 지정학적인 위치를 경제적으로 활용하면서 1950년대에 엄청난 양의 해외 원조를 얻을 수 있었고 그후에도 해외에서 상당한 액수의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한국이 경제 성장을 촉진하고 어려운 경제 여건을 지탱할 수 있었던 요체는 금융 정책이었다. 정부는 은행을 통하여 국내 자본은 물론 해외 자본 대부분을 저금리로 수출 산업과 수출 기업에 할당하였다. 한국에서 중화학 공업 발전 전략은 안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화학 공업의 발전은 안보를 증진시키기 때문에 수년 동안 미국이 만족해하는 전략이었고 한국을 수출 지향 발전 모델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발전 과정에서 현대와 삼성 같은 거대한 재벌이 탄생되었으며 이들 기업들은 엄청난 양의 정치 자금 상납을 통해 집권당의 후견자가 되어 왔다. 재벌에게 있어서 이것이야말로 과도한 부채나 부실 투자 등으로 인한 기업 부도를 막는 최선의 보험 수단이었다. 기업 규모가 엄청나게 커서 기업 부도시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망할 수 없다는 대마불사의 사고는 기업 부도를 막는 이차적인 보험 수단이었다.
대기업들은 항상 엄청난 차입에 의존했고 따라서 부채-자기 자본 비율이 매우 높았으며 반면에 수익률은 중소 기업보다 낮았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새로운 현금의 주입을 필요로 하였다.
1980년대 초 이래로 한국은 금융 자유화, 은행 민영화, 금융 시장 국제화, 금융 가격 규제 완화 그리고 주식 시장을 은행 대출에 대한 대체 수단으로 발전시키는 데 노력했으나, 여전히 정부의 금융 기관 경영에 대한 개입은 사라지지 않았고 금융 시스템의 취약성은 지속되었다. 특히 재벌은 한국이 1차 부채 위기를 경험한 1969년 때나 고인플레이션기에 완전한 보조금이라고 볼 수 있는 정책 대출의 수혜자가 되었던 1970년대와 같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차입 경영을 해왔다.
따라서 은행의 부실 대출 문제는 완화되지 않았고 과거 30년 동안 그러한 상태를 지속해 왔다. 금융 자유화 속도는 느렸으며 금융 부문이 큰 변화를 초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금융 시스템의 취약성은 제거되지 못했는데 이는 재벌과 정치가들 사이의 유착 관계에 기인한 바가 크다.
4) 文化的 側面
경제 개발을 추진하기 시작한 1960년대 초부터 한국의 경제 조직 형태를 규정하는 문화로는 다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강성 조직과 강한 지도력을 요구하는 문화이고 다른 하나는 온정적 위계 질서 문화이다.(전택수 1998, pp104∼107)
정부 및 기업의 강력한 조직과 지도력은 취약한 국내 경제 및 기업에 대한 외국의 신뢰를 제고시키고, 신속한 의사 결정 및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통하여 그간의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상명하달식의 이러한 조직은 장기적으로 창의성을 저하시켜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또한 한국은 기본적으로 혈연 및 지역 중심의 공동체 관리를 바탕으로 하는 온정적인 문화의 특성으로 인해 보상이 개별적인 업적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로 인해 유인 동기의 힘이 약해져 노동 생산성에 악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경제 조직을 운영함에 있어서도 법치보다는 덕치를 중시하여 일처리가 상황에 따라 적당주의로 발전할 수 있고, 조직 운영에서는 연고 주의로 진행될 수 있으며, 때로는 경제 활동에서 법이나 주어진 규칙을 의도적으로 경시하는 퐁조로 변질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모험주의 문화가 존재하여 국가나 기업을 경영함에 있어서 지식이나 주변 환경의 분석 등과 같은 이지적 요인에 기초하기보다는 지도자의 개성, 의지 등과 같은 가치적 요인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그러나 법치주의가 확립되지 않은 사회에서의 모험주의적 문화는 시장 경제의 경쟁 규칙을 무시하여, 정상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어떠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목표를 달성하도록 조장되어 사회적인 갈등과 분열을 초래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인 특성이 과거에는 한국의 경제 발전에 기여한 측면이 있으나 정경 유착과 경영의 불투명성, 정부와 재벌 기업주의 독단성으로 인해 중복 투자, 신용 편중, 차입에 의한 과다투자, 생산성 증대의 한계 등 많은 부작용을 초래하였고 오늘날 경제 위기를 초래하는 문화적 측면에서의 원인이 되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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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12.15
  • 저작시기2003.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38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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