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사의 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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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조국을 건지려고 생명을 바친 수많은 선연들 가운데서도 가장 대표적인 민족정기의 발양자야말로 안중근의사다. 의사의 본관은 순흥이요 문성공 안유의 이십대손으로 1879년 9월2일에 황해도 해주읍에서 탄생하시니 조부는 진해 현감을 지낸 인수공으로 덕망이 높은 이였고, 부친은 성균진사 태훈공이었으며 모친은 백천조씨인데 의사는 나면서부터 가슴과 배에 검은 점 일곱개가 박혀 있어 북두칠성에 응한 것이라 하여 이름을 안응칠이라 불렀다.
그 뒤 집을 신천군 두라면으로 옮겨 산수 풍경이 아름다운 천봉산 밑 청계동에서 살게 되니 의사의 여섯살적 일이었고 어려서 글을 배워 문사의 앞날도 기약되더니 일곱살부터 말라타기 활쏘기를 익혀 무사의 기질을 엿볼수 가 있었다. 16세때 동학혁명을 빙자한 지방 무리들이 일어나자 부친이 모집한 장별들을 이끌고나가 그들을 진압했었고 김홍섭공의 따님 아려양과 결혼한뒤 천주교에 입교하여 영세를 받고 또 이어 도마라는 믿음의 이름을 얻은 동시에 홍석구 신부에게서 프랑스말과 새로운 지식을 배웠다.
10년이 지나 27세때 을사조약이 체결된 소식을 듣고 일본의 불법침략을 세계에 알리고자 상해로 건너갔다가 돌아와 부친상을
당하여 고향에 안장한 뒤 이듬해에 집을 진남포로 옮기고 재산을 기울여 돈의학교와 삼흥학교를 세워 구구인재를 양성하기에 전력을 다하다가 가슴에 끓는 피를 누를 길이 없어 29세에 블라디보스톡으로 나가 대한의군 참모중장겸 특파독립대장의 이름을 띠고서 무력에 의한 치열한 항일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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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12.18
  • 저작시기2003.12
  • 파일형식파워포인트(ppt)
  • 자료번호#239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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